걸어내려온 농성근로자들(촛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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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6일이나 계속된 단식으로 탈진한데디 피부병까지 번진 동료들의 참상을 차마 더 이상 바라볼수가 없었습니다.』
10일 오후2시30분쯤 현대중공업 골리앗 크레인 아래 지상에서 13일만에 농성을 풀고 동료 49명과 함께 내려온 이갑용 현대중공업 노조비대위의장의 첫 마디.
더 이상 서서 버틸 힘도없어 농성 근로자들은 마지막계단을 내려서자마자 땅바닥에 털썩 주저앉는다.
퀭한 눈에 초췌한 얼룩,흐트러진 머리카락과 더부룩한 수염,구겨지고 땀에 찌든 옷가지등의 모습은 치열한 전투를 치르고 힘겹게 살아 돌아온 병사의 참담한 모습을 연상케 했다.
『이대로는 절대로 내려갈 수 없다는 주장도 많았습니다. 그러나 극한상황에 몰린 동료들이 투신등 더 불행한 일을 저지를 수도 있다는 생각이 언뜻 스쳐 내려 갈것을 강권했습니다.』
갑론을박의 대토론을 거쳐 농성 해제를 결의한 근로자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편안하게 내려갈 수 있는 엘리베이터를 외면하고 후들거리는 다리에 마지막 힘을 모은채 수백개의 계단을 걸어 내려왔다.
농성 근로자들의 걸음걸음마다 원망과 회한ㆍ통한의 감정이 착잡히 교차되는 순간의 연속이었음을 충혈된 눈망울들에서 여실히 읽을수 있었다.
『회사측과 합의된 것은 아무것도 없지만 우리는 내려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투쟁이 결코 끝난 것은 아닙니다.』
쓰러질듯 돌아서는 농성 근로자들의 모습에서 노사는 결코 대립되어서는 안될,화합해 함께 살아가야하는 두 주체임을 절감했다.【울산=강진권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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