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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단 안맞는 「총체적 난국」/이규진 정치부기자(취재일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현 시국이 「총체적 난국」이냐,아니냐를 두고 대통령과 민자당수뇌부가 불과 열흘만에 각기 다른 해석을 붙이고 나와 국민을 어리둥절하게 하고 있다.
지난 1일 고위당정회의를 마치고 민자당대변인이 발표한 「총체적 난국」이란 회의결론을 10일 노태우대통령이 그렇지 않다고 부인해 버리더니 김영삼대표최고위원은 11일 회견에서 다시 「총체적 난국에 총체적 개혁」을 들고 나왔기 때문이다.
노대통령이 『현시국이 어려운 것은 사실이나 일부서 표현하듯 총체적 난국은 아니다』고 한데 대해 이수정청와대대변인은 『시국대처의 올바른 방향을 밝히고 시각교정을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대변인의 말인즉 『만약 정부의 시각이 「총체적 난국」이었다면 이에 걸맞는 경제비상조치가 나왔어야 했을 것이며 「총체적 난국」이란 말은 당정회의의 결정사항이 아니라 당대변인이 기자들의 질문에 답변하는 과정에서 표현된 용어일 뿐』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당쪽 설명에 따르면 당정회의에서 총체적 위기란 말을 처음 꺼낸 사람은 이승윤부총리란 것이다. 이부총리가 영어로 「토틀 크라이시스」(total crisis)라고 한 것을 김종필최고위원등 당수뇌부가 공감하자 박희태대변인이 좀 어감을 약화시켜 「전반적 위기」대신 「총체적 난국」으로 표현했다는 얘기다.
물론 대통령이 그 말을 부인한데는 나름대로 고충이 있었을 것이다. 한국정부가 「불순한 목적」으로 위기상황을 부추겼다는 외신보도도 있고,우리 스스로 「총체적 난국」이라고 떠들었을때 오는 나라밖의 압력과 충격도 고려했음직 하다. 또 대통령말대로 스스로 극복할 수 있는 상황을 마냥 비관적으로 보는 것도 꼭 옳은 것은 아닐지 모른다.
그러나 표현이야 어떻든 실질적인 「경제계엄조치」의 극약처방을 연일 내놓고 있고 다수 국민들이 위기를 느끼며 대처하고 있는때에 하필이면 대통령과 민자당수뇌가 개념의 혼선을 야기하는 것은 국민을 당혹·불안케할 소지가 있다. 바로 이런 점이 현정권과 정치에 불신을 가중시키는 요인이 아닌가하는 생각과 함께 정부·여당이 좀더 치밀하고 조직적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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