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總理마저 대통령 탓하는 정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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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내각과 청와대 참모진에 대한 대대적 인적 쇄신이 불가피할 것 같다. 총리마저 나서서 대통령 탓을 하는 판이니 말이다. 장관은 대통령 주재 대책회의의 합의사항을 뒤집고, 청와대 참모들은 대통령의 외국 방문 중에 이라크 파병 결정을 놓고 공개적으로 충돌했다. 갈 데까지 간 정부라고 할 수밖에 없다. 정권 핵심부의 불협화음을 더 이상 방치하는 것은 직무유기다.

고건 총리가 국회 답변을 통해 지금의 국정불안은 "대통령과 측근과 정부의 책임"이라고 한 것은 뜻밖이다. 현 정부 출범 후 8개월이 지나도록 '총리가 보이지 않는다'는 비판이 자주 제기됐던 게 사실이기 때문이다. 평소 말을 극히 아꼈던 총리가 뒤늦게나마 청와대와 내각의 책임론을 제기한 것은 평가할 만하다. 총리의 발언에 대한 정치적 배경을 따지기에 앞서 정권 차원의 깊은 자성이 요구된다.

高총리도 결코 이 문제에서 자유롭지 않다. 헌법상 총리는 대통령을 보좌하고 내각을 통할하게 돼 있다. 과연 그는 노무현 대통령의 국정운영 방향을 바로잡기 위해 제대로 보좌했는지 등이 궁금하다. 국정혼란의 책임이 정부에도 있다면 내각을 통할하는 총리는 그 책임의 중심에 서 있는 것이 아닌가.

이라크 추가 파병을 둘러싼 청와대 내부의 갈등도 꼴불견이다. 일부 참모는 "전투병을 파병하면 사퇴하겠다"며 강경한 입장이라고 한다. 대통령이 이 문제에 함구령을 내렸는데도 정부 내 외교.국방 라인은 전투병 파병을 기정사실화하는 발언을 흘리고 있고, 국민참여수석은 방송에 출연해 이들을 비판하고 있다. 참모들 간에 이견이 있을 수도, 토론을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문제에 관해 국민의 의견이 첨예하게 갈라져 있는 상황에서 참모들의 갈등이 공개적으로 표출되는 것은 국론분열을 부채질할 뿐이다.

'정신적 여당'이라는 통합신당마저 연일 인적 쇄신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런 내각과 청와대 참모진으로는 안 된다는 것이 여권 내에서도 공감대를 형성했다. 대통령의 결단만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