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없는길(155)-내 마음의 왕국(56)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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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어머니와의 결별을 선언하는 내 말을 어머니는 아무런 표정없이 듣고만 있있다. 어머니는 묵묵히 화투패를 뒤집어 하루의 재수점을 보고 나서 말하였다.
『네가 대학에 들어가면 내 곁을 떠날 줄 알았다. 허기야 장원급제한 어사님께서 술청에서 기생 어머니와 함께 지내실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네가 먼저 말하지 않더라도 내가 너를 떠나보려고 생각은 해두었다. 엔제든 나가거라. 널 붙들지는 않겠다.』
그것이 어머니와의 이별이었다.
그 다음날로 나는 학교 근처에 하숙을 얻어 집을 나왔으며 그 이후로는 영영 어머니의 곁으로 돌아가지 않게 되었다. 처음에 집을 나올 때는 그렇게도 오랫동안의 영원한 이별이 되어버릴지 나는 생각지 않았었다. 그저 한때의 이별이겠거니 생각하였을 뿐이었다. 대학생활 때까지만 따로 떨어져 있으려니 생각하였었는데 그것이 어머니와 자식간의 인연까지 끊는 영원한 이별이 되어버린 것이었다.
그렇게 절연의 계기를 만들어 준 것은 내 쪽이 아니라 어머니 쪽이었다.
나는 어머니의 유골함을 들고 아카시아 나무숲 사이로 난 좁은 오솔길을 따라 걸으면서 나의 삼십년이 넘은 오래전, 그때의 일을 회상하여 보았다. 상복을 입은 아내는 걸음이 빠른 내 발걸음을 총총걸음으로 따라오고 있었다.
『아직도 멀었어요?』
아내는 숲길을 돌아 나가면서 내게 소리쳐 물었다.
『이제 다 왔어. 조금만 더 가면 돼.』
어머니.
대학에 합격하였음을 경축하는 술좌석에서 가장 어리고 가장 예쁜 기생을 내 잠자리에 들여보내 수청을 들게한 내 어머니. 그 어머니의 뼛가루가 내 손에 들려 있다. 삼십년 전에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아니 이해하기보다 차라리 화가 나고 분노하게 만들어 그 길로 집을 뛰쳐나오게 한 어머니의 철없는 행동을 이제 나는 이해할 수 있다. 어머니는 내 잠자리에 어린 기생을 들여보냄으로써 자신의 곁을 떠나려는 아들을 묶어두려 함이었다.
그때 내가 어머니의 원대로 그 어린 기생의 몸을 받아들이고, 그 어린 기생에게 내 동정을 빼앗길 수 있었다면 나는 어머니를 좀더 빨리 이해하고 어머니와 같은 공범자가 되었을 것이다. 어머니는 아들을 자기와 같은 공범자로 만들기 위해 내게 그런 상상할 수 없는 행동을 하였을 것이다.
어머니.
나는 아버지의 무덤에 이르는 숲길을 돌아 나가면서 중얼거렸다.
그때 나는 어머니의 소원대로 그 어린 기생과 몸을 섞었어야 옳았을 것입니다. 그렇게 되었더라면 나는 어머니의 곁을 떠나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최인호 이우절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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