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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환점에 선 '대덕밸리'] (하) 외국 연구소 끌어올 '매력'이 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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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6면

한국과학기술원(KAIST) 김종득 교수는 창업지원단장을 맡았던 2000년을 생각하면 여전히 아쉬움이 크다. 당시 대덕연구단지가 국내 최고의 연구메카라는 명성에 걸맞게 의욕적으로 추진했던 사업이 외국기업 연구소의 유치였다. 유치대상 1순위로 미국의 3M사를 꼽았다.

국내에 공장을 갖고 있어 가능성은 충분하다는 판단에서였다. 3M도 아시아권에 연구소를 설립할 계획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결과는 허사였다. 3M은 다각도로 검토한 끝에 결국 말레이시아에 둥지를 틀었다.

김교수는 "3M이 새로운 아이템으로 느낄 만한 기술이 없었다"고 말했다. 곧바로 사업화 검토가 가능할 만큼의 '상큼한' 기술이 없었다는 의미다. 게다가 인건비나 세제 혜택 등 다른 아시아 국가와 차별될 정도의 유인책이 없었다는 것이 김교수의 한탄이다.

조성되기 시작된 지 30년이 지났지만 대덕연구단지엔 외국기업이나 연구소가 하나도 없다. 비슷한 성격과 규모의 쓰쿠바연구학원도시(일본)와 신죽과학산업단지(대만)에 각각 32개와 50개의 외국기업이 들어선 것에 비하면 상당히 뒤처진 셈이다.

이에 따라 연구기관과 벤처단지를 아우르는 대덕밸리는 한마디로 '우물 안 개구리'라는 자성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대덕의 연구개발 잠재력은 충분하다는 분석이다. 천문.지질.미생물 등과 같은 기초분야에서부터 항공우주.정보통신.바이오.나노 등 첨단분야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전문가가 한 지역에 모여 연구하며 생활하고 있다. 부호분할다중접속(CDMA) 상용화.아리랑위성.한국형 원자로 등의 업적을 쌓은 정부출연연구소와 함께 국내 최초 신약을 개발한 LG생명과학 같은 대기업 소속 연구소, KAIST 같은 과학영재 학교, 연구원 출신들이 만든 벤처기업 등 외형은 화려하다는 것이 자체 평가다.

대덕넷 이석봉 대표는 "삼성전자 박사 수가 1천5백명인 데 비해 대덕에는 4천명 이상이 일할 정도로 차고 넘친다"며 "그러나 다양한 기관을 연결하는 네트워크가 부족하고 네트워크를 형성하려는 의지가 약하다 보니 시너지 창출에 허점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과학정책연구원(STEPI) 민철구 혁신시스템팀장은 "정부출연연구소 등 공공조직의 폐쇄성을 깨야 한다"고 지적했다. 프로젝트를 따내 인건비를 조달해야 하는 PBS 제도에 지나치게 집착하다 보니 협동연구 과제는 10%, 국제 협동연구는 5%에도 못 미친다는 것. 민팀장은 "주변 기업체.대학 등과 인력교류를 더욱 확대, 개방적인 조직으로 재편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삼성경제연구소 복득규 수석연구원은 "연구소와 대학.기업이 물리적인 결합을 뛰어넘어 원천기술은 물론 사업화가 가능한 기술을 함께 만들어내는 것이 우선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덕밸리의 세계화에 또 다른 걸림돌은 외국인 편의시설이다. 주변에 유흥업소는 즐비하지만 외국인학교와 외국인 전용 거주지가 없고 문화시설 등이 부족하다.

1997년 발족한 세계백신연구소(IVI)는 입주할 부지로 국제공항.외국인학교.유명대학 등과 가까운 지역 등 다섯 가지 조건을 내걸어 결국 서울대를 선택했다. 파스퇴르 연구소도 대덕보다는 프랑스인 학교가 있는 서울을 고집, 홍릉의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내 입주가 유력하다.

이에 따라 영국 캐빈디시 연구소의 대덕 내 분원 유치 계획은 매우 조심스럽게 추진 중이다. 캐빈디시 유치를 맡고 있는 KAIST 신성철(물리학과)교수는 "캐빈디시가 분원을 세운 경우는 세계적으로 전무한 상태여서 섣불리 유치계획을 밀어붙이기는 힘든 실정"이라며 "서로 협력할 수 있는 연구과제를 도출, 연구원을 단기간 교류하면서 분원 유치의 필요성을 절로 깨닫는 전략을 추진 중"이라고 밝혔다.

심재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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