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사법질서 흔든 대법원장 발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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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이용훈 대법원장의 발언이 검찰과 변호사단체 등 법조계의 거센 반발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대한변호사협회는 어제 성명을 내고 "대법원장은 부적절한 발언으로 사법 전체의 불신을 초래해온 데 대해 책임을 지고 자진 사퇴할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정상명 검찰총장도 대검 공보관을 통해 유감의 뜻을 표명했다.

전국 법원을 순시 중인 이 대법원장은 대법원장답지 않은 발언을 쏟아냈다. 그는 "검사가 작성한 수사기록을 던져 버려라"고 했다. 또 "왜 판사가 밀실에서 검사가 조사한, 아무도 보지 않은 비공개된 장소에서 조사한 진술을 공개된 법정에서 한 진술보다 우위에 놓고 재판하느냐"고 판사들을 꾸짖었다. 이러한 발언은 이 나라 검찰의 필요성을 전적으로 부인하는 발언이다. 특히 밀실조사 운운은 마치 검찰을 범죄집단으로 몰아가는 느낌을 받게 한다. 물론 이는 억울한 피고인이 없도록 공판중심주의 도입에 맞춰 재판을 엄정하게 하라는 뜻일 것으로 보고 싶다. 그렇다고 검찰 수사기록을 휴지조각처럼 격하하고, 검찰 수사를 밀실 수사로 규정한 것은 지나친 비약을 넘어 사법체계의 파괴다.

법조 3륜(법원.검찰.변호사단체) 관계에 대한 이 대법원장의 인식도 문제다. 그는 "사법의 중추는 법원이고 검찰과 변호사단체는 보조하는 기관"이라고 말했다. 심지어 "변호사들이 내는 자료라는 게 상대방을 속이려는 문서가 대부분"이라고까지 깎아내렸다. 이 정도라면 대법원장의 양식을 의심케 만든다. 이 나라 제도까지 무시하는 법관의 오만이 어른거린다.

대법원장 자리는 법치의 상징이다. 그런 만큼 그 언행에는 품격과 권위가 있어야 한다. 정치적 오해를 불러일으킬 발언은 더더욱 금물이다. 그는 취임 후 '국민의 이름으로 재판을 하라'는 등의 발언으로 정권과의 코드 맞추기가 아니냐는 지적을 받았었다. 사법부 수장으로서 법조계 전체의 존경을 받아야 할 마당에 퇴진 요구를 받았다는 것 자체가 불행한 사태다. 법조계에도 분열과 갈등이 아닌 통합의 리더십이 필요한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