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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데이] 이라크에 가는 이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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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김영희
김영희 기자 중앙일보 고문

파병 논쟁이 잘못된 방향으로 표류하고 있다. 다분히 관념적으로 흐른다. 마치 찬성 쪽의 국익론과 반대 쪽의 명분론이 상호 배타적인 것처럼 팽팽히 맞섰다. 노무현(盧武鉉)대통령은 행여 젊은 지지층이 반발할까 걱정하고, 한나라당을 포함한 찬성 쪽은 표를 잃을까봐 할 말을 제대로 못하고 엉거주춤한다. 파병 논쟁은 이라크 사정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바탕으로 실증적으로 해야 한다.

이라크 파병은 국익만을 위한 것도 아니고 파병의 명분이 약한 것도 아니다. 이라크 사정을 보자. 일반 이라크인, 다수의 이라크인은 일단 전후의 생활이 짜증스럽다. 사담 후세인이 축출되고 종전이 선언된 지 반년이 지났건만 전기와 먹을 물이 없고, 치안이 불안하고, 일자리가 없어 살길이 막막하다. 바그다드가 함락되던 날 후세인의 동상을 끌어내린 바로 그 이라크인들의 입에서 "이게 뭐야!" "미국은 해방군이 아니라 점령군 행세만 하고 있지 않은가!"라는 불만의 소리가 쏟아져 나온다.

이라크인의 그런 불만을 후세인 잔당이 보고만 있을 리 없다. 백성의 불만이 강물이라면 게릴라는 물고기다. 거기에다 알카에다 훈련소 출신의 테러 분자들과 이라크 군대 해산으로 졸지에 갈 곳을 잃은 40만 이라크군의 일부 후세인파 장교가 있다. 그리고 도시마다, 고을마다 이해를 달리하는 부족들이 있고, 다양한 이슬람 종파 간의 권력.이해 싸움이 문제를 복잡하게 만든다. 그러나 그들 불만.저항 세력을 하나로 묶는 상부 조직 같은 게 없어 테러는 비조직적이고 산발적이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대답은 분명하다. 전기와 수돗물이 들어오고, 신변에 위협이 없고, 일자리가 생겨 이라크인의 생활이 안정되면 게릴라와 테러리스트들이 설 땅을 잃게 된다는 것이다. 바로 여기, 이라크에 주둔할 한국군의 역할이 있다. 끊어진 다리를 놓고, 파괴된 학교를 고치고, 길을 닦고, 전신주를 세우고, 상하수도를 놓아주는 것이다. 미국의 부도덕한 침략전쟁의 설거지를 위해서가 아니라 이라크인을 위해 전쟁이 초래한 역경을 덜어 주러 한국군이 가는 것이다.

이라크 요소 요소에 안정지대를 늘려 가는 것이 다국적군들이 맡을 임무다. 그래서 한국군이 파견될 지역의 문화적.종교적.인종적.부족적 특성에 대해 철저한 사전 조사와 학습이 필요하다. 폴란드형 사단의 지리멸렬을 타산지석(他山之石)으로 삼아야 한다. 적게는 30명을 보낸 나라까지 포함한 21개국으로 구성된 폴란드형 사단은 언어도 제각각, 무기도 제각각이어서 지휘도 통제도 제대로 될 리 없다. 다국적군의 명분에 맞는 다양성을 살리자고 작전의 효율성을 희생한다면 파병 효과는 반감될 것이다.

사우디아라비아와 터키.파키스탄도 파병을 거부하거나 재고한다는데 우리가 왜 가느냐는 주장도 현실을 모르는 소리다. 이라크 입장에서 보면 가장 경계할 나라가 터키와 사우디아라비아다. 그것은 우리가 안보상의 위기에 처해도 중국과 일본의 한국 파병을 환영하지 않을 것과 같은 이치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이라크 서남부 지역에, 터키는 북부 쿠르드 지역에 관심 이상의 이해관계를 가졌다. 파키스탄은 같은 이슬람 국가라는 점에서 파병이 자유롭지 않다. 파병 동기의 순수성에서 한국은 어느 나라에도 뒤지지 않는다. 그래서 이라크에 가야 한다.

파병과 조지 W 부시 미 정부의 대북정책 완화를 연계하겠다고 한 것은 국가안전보장회의(NSC)와 청와대 사람들의 근시(近視)와 무지를 드러낸 것이다. 그것은 이라크 파병의 명분을 스스로 깎아 내리는 행위다. 파병의 명분은 어디까지나 이라크 재건을 지원하는 것이어야 한다. 한국군의 활동이 성공적이면 북핵 문제에서 한국의 발언권이 저절로 커질 것이다. 미국의 대북 자세 완화는 파병의 조건으로써가 아니라 파병에서 강화될 발언권으로 유도할 수 있는 것이다. 이라크 특수(特需)도 마찬가지다. 우리끼리 계획하고 계산할 필요는 있어도 대외적으로 이라크 복구에서 떨어질 떡고물을 바라고 파병한다는 인상은 바람직하지 않다.

김영희 국제문제 大記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