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입국서 돌파구 찾아야(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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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지난해 우리나라는 15억7천4백만달러어치의 컴퓨터를 생산해 그중 9억7천만달러어치를 수출한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전세계 정보기기산업의 시장규모가 88년에 이미 2천4백억달러가 넘는 마당에 10억달러에도 못미치는 컴퓨터 수출실적은 미미하기 짝이 없는 것이지만 그래도 우리는 최첨단기술제품을 수출하고 있다는 것을 대견스럽게 여겨왔다.
그러나 그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는 새삼스러울 얘기는 못되겠지만 수출되는 컴퓨터의 국산화율이 40%에 불과하고 나머지 60%의 부품은 모두 미국이나 일본에서 수입해 조립한 데 불과하다는 사실은 우리의 그같은 자긍이 얼마나 허망하고 부끄러운 일이었다는 것을 일깨워주기에 충분한 것이다.
컴퓨터 뿐만이 아니라 우리 수출상품의 간판격인 전자ㆍ자동차등 주요 제품의 대부분이 핵심부품은 전적으로 외국으로부터의 수입에 의존하고 있으며 국산화율이 잘 해야 70%수준에 그치고 있다는 사실은 우리의 실력이 얼마나 과대포장돼 있으며 우리 산업의 취약점이 어디에 있는가를 생생하게 보여주는 것이다.
지금 우리 기업들이 원화의 과대평가와 임금상승,과도한 금융부담등으로 경쟁력을 상실해 시장을 빼앗기고 수출부진을 겪고 있지만 우리 산업이 안고 있는 더 큰 위기는 바로 기술력의 낙후에 있다는 것이 우리의 생각이다.
일본이 85년 G5(선진 5개국 재무장관회의)이후 90%가 넘는 엔화절상에도 오히려 국제수지흑자폭을 넓히고 86년말 이래 지금까지 이어지는 장기 호황을 누릴 수 있었던 요인이 기술개발에 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일이지만 대만만해도 지난해 컴퓨터 수출액이 52억달러로 우리의 5배가 넘었다는 사실은 국제경쟁에서 기술의 비중이 얼마나 크며 우리의 위치가 얼마나 뒤처져있는가를 보여주는 예라 할 수 있다.
문제는 이처럼 우리기술이 뒤떨어진 이유가 무엇이며 앞으로 기술개발에 우위를 차지하기 위해 해야 할 일이 무엇이냐에 있다.
우리가 보기에 우리산업에서 기술개발이 뒤처진 이유는 정부ㆍ기업ㆍ일반국민 누구를 가릴 것 없이 기술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부족했다는데 있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특히 국가산업의 장래에 대해 선도적 역할을 해야 할 정부가 이 부문에 무관심했던 것은 치명적 요인이었다고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앞으로 5년간 제조업체의 기술인력 부족 인원이 26만명에 달하리란 최근 산업연구원의 조사결과나 올해 예산중 기술개발 지원자금이 과학기술처의 특정연구개발자금 9백억원과 상공부의 기술지원자금 3백억원을 합해 1천2백억원에 불과하다는 사실은 정부의 교육정책이나 기술지원정책이 얼마나 잘못돼 있었는가를 보여주는 한심한 예다. 산업의 쌀로 불리는 반도체 개발이 정부의 지원은 커녕 냉소속에 기업의 독자적 힘에 의해 이루어졌다는 것도 우리 기업들이 처한 어려운 환경을 보여주는 하나의 예라 할 수 있다.
지금 우리 기업,나아가 국가경제가 살 수 있는 길은 기술개발로 비가격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하는 것 밖에 없다. 정부나 기업은 물론 온 국민이 이같은 인식을 갖고 국민적 역량을 이곳에 집중시켜야 할 때임을 강조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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