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신인문학상] 소설 당선소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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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과 밤이 바뀌는 시간, 어스름이 지상으로 막 내리는 그때를 나는 좋아한다. 멀리 뻗어있는 길이 보이고, 무작정 어디론가 가버려도 좋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가 닿고 싶은 곳이 어딘지 나는 알지 못한다. 어쩌면 생의 마지막까지 알 수 없을지 모른다. 나는 망설인다. 잠깐 사이에 어두워질 경계의 시간에 길 떠나는 게 두렵기 때문이다. 소심한 내 등을 밀어낸 것은 소설이었다. 어둠이 두렵다고 생각하지 마라. 먼길을 가면 지칠 뿐이라고 생각하지 마라. 길 끝에 무엇인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마라.

나는 두려웠고, 그래서 움츠렸고, 오래 멈춰 서 있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조금씩 걸음을 떼기 시작했다. 누군가 손을 잡아주었고, 또 누군가 함께 걸어주었다. 머뭇거릴 때마다 오래 기다려주었다.

소설을 쓰는 것이 언제부터인가 편해졌다. 글을 쓰지 않았다면 사람을 알지 못했을 테고, 길을 갈 수 없었을 것이다. 글 쓰는 게 편해진 걸 보면 몸 어딘가에서 힘이 조금쯤은 빠진 모양이다. 갈 길은 멀고, 여전히 그 길에 무엇이 있는지 나는 잘 모른다. 하지만, 이제 조금쯤은 자신을 믿으며 길을 나설 수 있을 것 같다.

굽이굽이 고개마다 내 손을 잡고 이끌어주신, 인생의 스승이자, 도반이자, 연인이기도 했던 모든 선생님들께 감사 드린다. 그리고 미숙한 글을 뽑아주신 심사위원 선생님들께도 머리 숙여 고마움을 표하고 싶다. 마지막으로 잘하는 거라고는 책을 읽고, 사는 재주밖에 없는 엄마를 참아준 두 딸아이와 남편에게 앞으로도 계속 봐달라고 부탁하고 싶다.

배명희

▶1956년 경북 의성 출생

▶한양대 식품영양학 대학원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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