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영주도 놀란 '티켓 값'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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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원 장유호(44)씨는 대학생 때부터 해외 유명 오케스트라가 내한하면 어김없이 연주회장을 찾았던 클래식 매니어다.

하지만 장씨는 21일 예술의전당에서 열리는 빈 필하모닉의 공연에 가지 않기로 했다. 대신 11월 일본 도쿄에서 열리는 빈 필하모닉 연주회의 티켓을 예매했다. 예술의전당 공연에서 가장 비싼 자리는 40만원이지만 도쿄 공연의 최고가 티켓은 3만1000엔(약 25만원)에 불과하다. 장씨는 "티켓도 싸고 공연 프로그램은 더 좋아 여행하는 셈치고 아내와 일본에 가기로 했다"고 말했다.

올 하반기에 세계 유수 오케스트라들이 줄을 지어 한국을 찾는다. 하지만 음악애호가들 사이에서는 일부 공연의 엄청나게 비싼 티켓 값 때문에 불평이 쏟아지고 있다.

◆ 세계에서 제일 비싼 티켓=우리나라에서 열리는 해외 오케스트라 공연의 티켓 값은 소득수준이 높은 선진국보다도 훨씬 비싼 경우가 많다. 14일 영국 런던의 바비칸 센터에서 열린 빈 필하모닉 연주회는 65파운드(약 12만원)면 가장 좋은 자리에서 볼 수 있었다. 11월 뉴욕 카네기홀에서 열리는 런던 필하모닉의 공연도 가장 비싼 표가 92달러(약 8만8000원)다.

심지어 빈 필하모닉은 서울 공연을 마친 뒤 홍콩(24~25일), 시드니(27~30일)에서 공연을 하는데 그곳에선 최고가 티켓이 21만~22만원선이다. 같은 단체의 연주회인데도 서울이 홍콩.시드니보다 두 배나 비싼 것이다.

빈 필하모닉과 협연하는 바이올리니스트 장영주(사라 장.사진)씨도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티켓 가격이 최고 40만원이라는 말에 "40만원요? 와우!"라며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11월 콘첸투스 무지쿠스 빈의 공연도 서울에선 최고가가 30만원이지만 앞서 열리는 도쿄 연주회는 18만원이다. 지난해 11월 국내 연주회사상 45만원으로 최고 티켓 값을 기록했던 베를린 필하모닉의 공연도 당시 일본에선 3만6000엔(당시 환율로 약 31만원), 중국에선 2000위안(약 24만원) 이었다.

◆ 왜 이렇게 비싼가=일단 전문가들은 우리나라의 클래식 시장 규모가 작기 때문에 공연 단가가 올라갈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지적한다. 외국처럼 5~6회씩 공연을 하기 어렵기 때문에 수지를 맞추려면 티켓 값을 올릴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또 외국에 비해 공연 시 기업의 후원이 적다는 점도 티켓 값을 비싸게 하는 요인이다. 한 공연기획사 관계자는 "요즘엔 대기업의 후원이 클래식 음악 공연보다는 뮤지컬 쪽으로 옮겨지는 추세여서 클래식 공연의 경우 관객들의 부담이 커진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이와 함께 클래식 음악을 상류문화의 대명사처럼 여기는 잘못된 사회인식도 초고가의 티켓을 부추기고 있다. 지휘자 박성준씨는 "클래식 음악이 돈 있는 사람들의 우아한 취미생활로밖에는 취급되지 않기 때문에 비싼 티켓이 자꾸 나온다"고 말했다.

비싼 티켓으로 공연을 보는 게 일종의 '명품 소비'로 여겨져 티켓이 비싸야 더 잘 팔리는 기현상마저 생겨났다. 실제로 40만원짜리 빈 필하모닉 티켓은 공연 일주일 전에 모두 매진됐으며 인터넷에선 더 높은 가격에도 거래될 정도다.

서민들도 별 부담 없이 클래식 공연장을 즐겨 찾을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되려면 외국처럼 기업들이 보다 적극적으로 후원에 나설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많다.

한 공연기획사 관계자는 "한국 기업들은 제작비를 직접 지원하는 게 아니라 티켓을 사주는 식으로 협찬을 하기 때문에 티켓 가격 인하에 별 도움이 안 된다"고 말했다.

김호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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