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경의조기유학돋보기] 미국서 자라는 것이 과연 행복할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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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미국에 처음 가면 그 여유로움.친절함.너그러움에 놀란다. 하지만 살아보면 우리 같은 소수 민족, 그것도 얼굴 생김새가 다른 유색 인종들은 보이지 않는 편견과 차별은 물론이고 드러나게 무시당하고 짓밟히는 경우가 허다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처음에 미국에 가서는 주변을 살필 여유가 없어서 몰랐지만, 어느 날 문득 아이들 학교 행사에 가면 내 양옆 좌석이 늘 비어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무척 놀랐다. 내가 그들 옆에 앉으면 얼굴을 붉히지는 않지만, 또 내가 먼저 말을 건넸을 때 친절하게 답해주지만, 결코 그들이 먼저 말을 걸거나 다가오지 않았다. 마치 내가 전염병 환자인 것처럼….

아직 어려서 그런 분위기를 감지하지 못할 줄 알았던 작은 아이도 어느 날 "엄마, 나도 노랑머리였으면 좋겠어"라고 말해 내 가슴을 철렁 내려앉게 했다. 사춘기가 가까워 오던 한 한국인 아이는 마음에 드는 백인 여자 아이가 있었지만 내색 한번 하지 못했다고 한다. "왜, 걔한테 말해보지 그래"하고 엄마가 넌지시 부추겼더니 아이는 "어차피 안 될걸 뭐"하며 말꼬리를 흐리더란다. 벌써부터 패배의식을 느끼고 있는 아이를 보며 그 엄마는 무척 가슴 아파 했다.

아무리 실력이 있고, 돈이 많고, 영어를 잘해도 한국 사람은 미국 사회에서 영원히 이방인이다. 이런 분위기를 피부로 느끼는 한국 아이들은 벌써 중학교 때부터 동양인끼리만 어울리고 고등학교.대학교에 가서는 한국 친구들을 찾아 끼리끼리 모인다. 노래도 한국 가요를 찾아 듣고 술도 한국주점에서 마신다. 그리고 아무리 좋은 명문대를 나와도 결국 한국인을 대상으로 한 비즈니스를 하면서 사는 경우가 많다.

미국은 결코 평등한 나라가 아니다. 어떤 차별보다도 잔인한 인종 차별이 여전히 존재한다. 이민으로 이루어진 사회이면서도 유색 인종에게는 강철 울타리를 둘러 놓은 채 백인만의 보금자리를 지탱해 가고 있는'선택적 기회의 나라'다.

비록 귀국 후에는 공부 때문에 많은 스트레스를 받고 있지만, 그래도 우리 아이들은 한국에서 사는 것이 더 좋다고 말한다. 생김새 때문에 좌절감 안 느껴도 되고, 부모의 차가 아닌 자기 발로 걸어서 어디든지 마음대로 갈 수 있고, 친구 집에도 양쪽 엄마의 허락 없이 갈 수 있고, 과자도 아무 때나 사먹을 수 있는 한국. 아이들한테는 이처럼 하찮아 보이는 것들도 행복의 척도가 될 수 있다.

김희경 '죽도 밥도 안 된 조기유학' 저자 브레인컴퍼니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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