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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등록금 과연 비싼가] 美·日보다 싸지만 투명성이 문제

중앙일보

입력

이코노미스트 대학 등록금이 가계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다. 이 때문에 학생들은 등록금을 낮춰달라고 시위까지 벌이는 등 시비의 대상이 돼 왔다. 최근 국회에서는 등록금을 물가에 연동해 제한하자는 법안이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그렇다면 대한민국 대학 등록금은 과연 법으로 묶을 만큼 비싼가. 이제는 정치인의 대중주의나 대학의 우격다짐에서 벗어나 냉정하게 따져볼 때가 됐다. 이코노미스트가 대학 등록금의 허실을 심층 분석했다.


요즘 대학 등록금 문제로 시끄럽다. 한쪽은 대학 등록금으론 좋은 대학이 될 수 없다고 주장하고, 한쪽은 대학 등록금이 과도하게 오르고 있으니 제한하겠다고 난리다. 한쪽은 대학 등록금은 그 나라 개인 국민소득 정도가 돼야 한다고 주장하고, 한쪽은 지금 등록금 수준의 절반으로 줄이겠다고 벼르며 입법을 준비하고 있다. 우선 듣기에는 후자가 솔깃하다. 하지만 과연 대학 등록금이 비싼가? 대학에서 몰염치하게 인상하고 있나?

출처에 따라 다소 차이는 있지만 올해 사립대 평균 등록금은 연간 660만원 정도다. 의대는 이보다 높은 880만원에 이른다. 순수한 학비만 이 정도니 중산층 가정에서도 적지 않은 부담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미국 사립대에 비하면 아직은 한참 낮은 편이다.

대학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미국의 사립대는 연간 3만 달러 정도의 학비가 든다. 명문가의 자녀들이 주로 가는 인문 사립대도 평균 3만 달러가 넘는다. 비교적 학비가 낮았던 주립대도 최근 3~4년 사이에 급속히 등록금이 올랐다.

2002년 이후 미국 주립대학 등록금 평균 인상률은 주민(州民)의 경우 33%, 타지역 학생은 27.6%에 이르고 있다.

여전히 주(州) 내에 거주하는 학생의 경우 연간 8000달러 정도로 비교적 저렴하지만 주 바깥에서 진학한 학생은 연간 평균 2만 달러 정도의 학비를 부담해야 한다.

이 같은 비싼 학비와 18세 이후 부모의 재정적 도움에서 독립하는 미국식 생활 패턴 때문에 미국 대학 졸업생의 3분의 2는 대학 졸업 후 평균 1만7000달러의 빚을 지게 된다.

일본의 학비는 물가에 비해 상대적으로 싼 편이다. 국립대는 연간 평균 60만 엔, 사립대는 평균 100만 엔 정도다. 명목상 한국보다는 다소 비싸지만 국민소득이나 물가에 비하면 등록금 부담이 큰 편이라고 하기 힘들다.

가파른 사립대 등록금 상승률

보기에 따라 다르지만 한국 학비가 외국보다 터무니없이 높은 것은 아니다. 특히 국내 대학 교육비 중 정부가 부담하는 비율이 14.9%에 불과할 정도로 적은 정부 지원(2002년 기준)을 감안하면 사립대 등록금이 터무니없이 높다고 할 수는 없다.

미국의 교육비 공공부담률은 45.1%, 일본은 41.5%에 이른다.

문제는 최근 사립대학들의 등록금 상승률이 가파르다는 점이다. 1990~2005년까지 사립대학의 등록금 인상률은 연평균 9.27%를 기록했다. 최근 10년간 연평균 인상률도 6.12%였다. 특히 1990년부터 외환위기 직전인 96년까지는 매년 두 자릿수 인상률을 기록했다. 외환위기를 겪은 98, 99년은 0.5%, 0.1%로 거의 동결에 가까웠지만 이후 다시 매년 6%대의 인상률을 기록하고 있다.

미국 주립대의 경우 최근 급격한 등록금 인상이 있었지만 일본은 78년 이후 2002년까지 24년간 국립대학 등록금은 3.8배, 사립대학 등록금은 2.2배 인상하는 데 그쳐 안정된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한국은 89년 이후 16년간 4~5배 인상됐다.

이처럼 다른 물가보다 높은 수준으로 인상되는 등록금 문제에 정치권이 가만히 있을 리 없다. ‘등록금 인상제한법’을 발의한 열린우리당의 정봉주 의원은 “사학재단이 불필요한 등록금 인상을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정 의원은 “과도한 적립금을 장학기금과 연구비로 쓴다면 등록금 인상폭이 대폭 낮아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대학 등록금 절반으로 줄이기’를 주도하고 있는 한나라당 이주호 의원도 “국가 차원의 장학제도 구축과 대학 재정 투명성 강화를 통해 대학 등록금을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이 의원 측은 재원 조달 방법으로 ‘기부 활성화’와 ‘정부 조직 구조조정’을 내세웠다.

시각은 다소 다르지만 정치권이 대학 등록금 줄이기에 나서고 있는 것은 급격한 등록금 인상으로 인한 유권자들의 불만을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정 의원이 지적한 것처럼 최근 사립대학들은 상당한 금액의 적립금을 쌓고 있다. 수천억원에서 수백억원에 이르는 대학들의 적립금은 등록금 인하를 요구하는 학생들의 단골 표적이기도 하다. 하지만 대학은 적립금에 대해 ‘목적성 경비’라며 대학 운영비로 쓸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 사립대학 기획처장은 “적립금은 마음대로 쓸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특정한 목적을 위해서만 쓸 수 있는 경비”라고 설명했다. 예를 들어 연구동 건립, 특정 사업 연구비 등 취지에 맞는 지출만 가능한 돈이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 일부에서는 “대학이 자기 마음대로 목적을 정해놓고 운영비로는 쓸 수 없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다”고 비판하고 있다.

일단 대학 측은 정치권의 등록금 인상 규제에 강한 거부감을 보이고 있다. 한 사립대학 기획처장은 “한국 대학이 미국·일본·유럽과 경쟁해야 하는데 정부와 정치권에서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규제를 일삼고 있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또 “한국의 대학이 대학 경쟁력, 글로벌 경쟁에 눈을 뜬 지가 불과 10년 정도”라며 “따라서 최근에 투자가 집중적으로 이뤄지고, 대학 발전이 비약적으로 이뤄지는 상황이라 재정지출이 늘고 이에 따라 등록금 인상도 불가피한 측면이 있었다”고 항변했다. 성장기를 맞은 어린이가 집중적으로 영양을 섭취하고 크듯이 외국의 성숙한 대학과 단순 비교하는 것은 무리라는 얘기다.

또 다른 사립대 예산팀장은 “이미 사립대의 교육비 환원율은 평균 110%이고, 우리 학교는 140%에 육박한다”며 “학생들이나 정치권에서 주장하듯 등록금을 남겨 재단에서 돈을 모은다는 얘기는 틀린 것”이라고 주장했다. 교육비 환원율이란 학생들이 낸 교육비 대비 학교에서 제공하는 서비스의 총액을 말한다. 이 수치가 100%를 넘으면 낸 금액보다 서비스받은 금액이 크다고 말할 수 있다.

“교육의 질을 높이려면 대학 등록금 1500만원은 받아야 한다.”
(2005년 7월 고려대 어윤대 총장)

“선진국의 일류 사립대학 등록금은 그 나라의 개인당 국민소득과 비슷하다.”
(2006년 2월 송자 전 연세대 총장)

“물가 상승률의 1.5배 이상 인상하는 대학은 교육부 장관에게 사유서를 제출하도록 하겠다.”
(2006년 9월 3일 정봉주 열린우리당 의원)

“대학 등록금 부담 절반으로 줄이기 5대 입법을 정기국회에서 추진하겠다.”
(2006년 9월 8일 이주영 한나라당 의원)

한 서울시내 사립대 기획실장은 “학생들이 문제삼는 적립금은 목적성 경비라서 마음대로 쓸 수 없다”고 전제한 뒤 “대신 적립금에서 나오는 이자 수익을 학교 운영비로 쓰기 때문에 적립금이 많을수록 등록금 인상률을 억제하는 효과가 있다”고 주장했다. 실제 일부 사립대는 적립금에서 발생한 이자수익을 운영비로 쓰고 있다.

서강대 측은 적립금 100억원의 이자 수익이 등록금 인상 1%를 억제하는 효과가 있다고 밝혔다.
등록금 인상 규제에서도 초점이 되고 있는 적립금은 최근 몇 년 사이에 크게 늘었다. 기업의 기부금 모금이나 동문들의 기금 모금에 대학들이 적극적으로 뛰어들면서 적립금이 많이 쌓였기 때문이다. 여기에다 정부에서 지속적으로 실시하는 대학 경쟁력 강화 정책도 한몫했다.

1990년대 후반부터 시작한 정부의 대학 특성화 전략이 대표적인 사례다. 정부는 학부제 실시, 산학협력 강화 등의 조건을 내걸고 이 조건을 충족하는 대학에 재정 지원을 집중했다. 이른바 특수목적지원사업비 지원인데 2004년의 경우 집행내역이 수도권대학 특성화 지원(600억원), BK21(1800억원), 지방대학 혁신역량 강화사업(NURI사업·2200억원), 학교기업 육성(100억원), 산학협력 중심대학 지원(200억원), 전문대 특성화 지원사업(1680억원) 등으로 돼 있다.

교육개방 전에 체력 키워야

한푼이 아쉬운 대학 입장에서는 이런 지원사업금을 반드시 따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예산의 건전성을 높이고 시설투자를 확대해야 한다. 최근 대학에 건축붐이 일어나고, 적립금이 쌓이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하드웨어 측면에서 대학의 발전은 열린우리당이나 한나라당에서도 인정할 정도다. 대학 당국에서 막대한 적립금을 운영비로 쓸 수 없다고 주장하는 것도 이런 이유다. 적립금을 꺼내 쓰기 시작하면 당장 자산 건전성이 낮아지고, 향후 정부에서 지원을 전제로 요구하는 시설 기준을 충족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등록금 급등의 또 다른 이유 중 하나는 바로 교육시장 개방이다. 이는 한·미 FTA와도 관계가 있다. FTA가 타결될 경우 ‘차별 금지 원칙’이 적용되는데 외국의 교육기관이 한국에 들어와 경쟁할 때 차별을 겪지 않아야 한다는 뜻이다. 이는 대학에 대한 정부 보조금의 지원을 철회하라는 요구로 이어질 수 있다. 이 경우 한국의 대학이 받게 될 타격은 크다.

한국의 사립대학 재정에서 정부 보조금이 차지하는 비율은 2004년 기준으로 3.3%(3286억원)에 불과하지만 등록금이나 재단전입금이 주로 경상비용으로 지출되는 까닭에 연구활동에 필요한 재정은 BK21 지원금 등 정부 보조금으로 메워지는 비율이 높다. 교육개방이 현실화할 경우 대학 경쟁력의 핵심인 연구기능이 위축될 가능성이 커진다. 실제로 많은 사립대학은 ‘교육개방에 대비한 경쟁력 강화’를 등록금 인상 이유로 제시하고 있다.

대학 측은 경쟁력 강화와 글로벌 경쟁을 보면서 큰 그림을 그리고 있는데, 정치권에서는 인기에 영합해 비현실적 방법으로 등록금 규제에 나서고 있다고 보고 있다. 또 일부 사학의 문제를 전체 사학의 문제인 양 법으로 규제하는 것도 불만이다. 그렇다고 대학의 손을 마냥 들어줄 수도 없다.

일부 대학에서는 변화의 조짐이 있지만 여전히 대학 회계장부는 불투명하다. 매년 교육부와 감사원의 감사에 단골 손님으로 등장하는 사학 비리도 계속되고 있다. 굳이 등록금 인상 제한법이 아니더라도 이제 대학은 사회와 학생들에게 등록금 인상 이유를 설명할 수밖에 없다.

머지않아 신용평가기관에서 대학들의 투자등급을 매길 날이 올 것이기 때문이다. 법인화한 도쿄대가 초일류 기업인 도요타와 함께 일본 최대 신용평가기관인 R&I로부터 가장 높은 투자 등급인 AAA를 받았다는 것은 우리 사립대에도 시사하는 바가 작지 않다. 대학도 투명해져야 투자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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