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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색직업 ③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9면

경력 5년째의 캐리어 우먼 김은정씨(26)는 한성기업주식회사의 신제품「야채참치」가 어느만큼 팔리느냐에 촉각이 곤두서있다.
이 회사의 광고기획을 맡아 지난달15일부터 15초짜리 TV광고를 내보내고 있기 때문이다.
『회사의 판매담당자 못지않게 야채참치가 경쟁업체의 제품을 누르고 많이 팔리기를 원한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거예요.』
김씨는 자신이 기획·제작한 광고가 성공적이냐 아니냐의 여부는 결국 제품의 판매와 직결된다는게 광고업계의 불문율이기 때문에 소비자의 반응이 기대된다며 긴장해 있다.
김씨의 직업은 제일기획의 AE(Account Executive). 우리말로 하면 광고기획자인데 광고업계에서는 영문자의 이니셜을 따 AE로 부르고 있다.
연세대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하고 86년1월 제일기획의 공채10기로 입사한 김씨는 여자로서는 이분야에서 베테랑급이다.
『1천억원에 이르는 참치시장에 다섯번째 뛰어드는 한성기업이 후발업체로서 어떻게 하면 소비자에게 어필할 수 있느냐에 초점을 맞췄어요.』
김씨는 작년8월 광고의뢰를 따낸뒤 기존회사의 제품이 찌개용·샐러드용으로 구분돼있지 않은 점에 착안, 용도세분화전략으로 나가기로 하고 제품개선을 회사측에 제안했다.
그러나 이를 위해서는 참치덩어리와 부스러기를 따로 만들어야 하는데 생산과정에 문제가 있어 이같은 제의가 받아들여질수 없었다.
『그래서 결국 기존제품과같이 만들되 산뜻한 광고전략을 통해 소비자에게 어필한다는 작전을 짰어요. 강남지역 아파트주부층을 겨냥한 신주부시리즈를 계획했지요.』
이같은 광고계획을 회사측에 설명하고 OK까지 받았으나 갑자기 방향이 틀어져 지금까지의 수고가 물거품으로 돌아갔다. 지난2월 참치에 토마토소스·완두콩·양파등을 넣어 캔을 따서 먹기만하면 되는 야채참치가 개발된 것이다.
더구나 경쟁사에서 같은 제품을 개발중이라는 정보가 입수돼 이를 회사측에 알려주고 제품출하를 서두르는 동시에 초스피드로 광고제작에 나서야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회사측과 광고기획자의 의견이 달라 상당한 진통을 겪게 됐다.
『회사측은 기존참치시장이 크고 야채참치시장은 수요가 불확실하므로 기존참치를 광고해야 한다는 의견이었어요. 반면 저는 기존참치시장에는 다섯번째 뛰어들지만 야채참치시장에서는 못해도 3등이기 때문에 야채참치시장을 집중공략하면 한성참치수요는 저절로 늘어난다고 설득했지요.』
결국 회사측이 김씨의 제안을 받아들였으나 또 문제가 생겼다.
회사측은 가능한한 한성참치와 야채참치를 함께 광고내용에 삽입하자는 것이었고 김씨는 『광고의 힘이 약해지므로 야채참치만을 강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15초짜리 TV광고에 두가지를 함께 넣으면 산만해진다는게 김씨의 판단이었다.
『다음에는 브랜드명을 놓고 여러차례 회의를 거듭하고 10개 후보들 중에서 야채참치라는 브랜드를 선정했지요. 회사에서는 「맛참치」를 들고나왔으나 제품의 내용을 분명하게 알리기위해서는 야채참치가 좋다고 고집했지요.』
회사측의 최종승인을 받아낸뒤 제작팀과 함께 실제 광고제작에 들어갔다.
제작회의과정에서 누군가 야채참치를 줄인 「야참」얘기를 꺼냈고 이것이 힌트가 되어 「야참, 맛있다」라는 표현을 광고의 테마로 하게됐다.
소비자들이 CM을 보고 군침이 돌게하는 한편 야채참치가 빨리 기억되도록 하자는 것이었다.
『제품판매에서 광고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아요. 한 초컬릿회사는 평소 초컬릿판매량이 한달 1억원에 불과했으나 청소년에게 인기가 높은 대만의 한 가수를 모델로 한 광고가 성공, 14억원으로 판매량이 늘기도 했어요.』
김씨는 이같은 성공의 비결은 참신한 아이디어와 소비자의 수요변화를 재빨리 파악하는 능력에 달려있다고 강조한다.
작년말 결혼한 김씨의 한달 월급은 70여만원. 광고가 히트해도 특별한 포상은 없지만 수입의 많고 적음에는 개의치 않는다. 하고싶은 일을 한다는 성취감 때문이다.
『여자로서 조직내의 인간관계에 어려움을 겪지만 광고주를 설득하는데는 유리한 것도 있어요. 더구나 전체 상품의 80%가량을 여성이 구매권을 갖고있어 여성으로서의 섬세한 감각이 오히려 이점이 되죠.』
김씨는 현재 우리나라 여성 AE가 40명안팎에 불과하기 때문에 자신이 잘해야 후배들의 영역이 넓어진다는 생각에서 남자이상으로 적극적으로 뛰게 된다고 밝혔다. <길진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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