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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NP의 47%까지 추정/실명제도 유보시킨 괴력(지하경제:1)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세제등이 오히려 뒷받침/끈질긴 생명력 갖춘 「어두운 뿌리」
지상의 실명제를 유보시킨 지하경제의 현실이 새삼스레 심각한 문제로 등장하고 있다.
실명제의 유보는 지하경제를 다루는 방법을 바꾸겠다는 것이지 지하경제를 그대로 내버려두겠다는 것을 뜻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지하경제의 현실과 대처방안 등을 4회에 걸쳐 연재한다.
아무도 정확한 공식적인 통계를 들이밀지 못한채 비공식적인 연구결과에 따라 88년 기준 GNP의 15∼47%,18조∼58조원 까지로 막연히 추정되는 지하경제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며 우리만의 일도 아니다.
50년대의 이른바 중석불 사건이 그 흔적을 드러내 보였던 정치자금은 바로 엊그제의 대구 서갑선거에서 여전히 뿌려졌고 실명제가 정착되어 있는 미국의 대통령도 마약거래 등과 관련된 부정한 돈의 「세탁」(Money Laundering)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일반적으로 「세무당국에 신고되지 않은 소득,또는 국민소득통계에 잡히지 않는 소득」으로 정의되는 지하경제가 드리우고 있는 어두운 그림자는 두고 볼수록 심각하다.
일본의 상속세중 금융자산 상속에 대한 과세 비중은 22% 수준이나 우리의 경우 2%에 불과하다.
지난 88년 한햇동안만도 GNP의 55%에 이르는 자산이득을 땅임자들에게 가져다 준 부동산이지만 토지분 재산세의 실효세율은 0.03% 수준으로 근로소득의 실효세율 13.5%에 비해 터무니 없이 낮다.
현행 세제나 토지관련제도가 버젓이 제도적으로 만들어 놓고 있는 지하경제인 셈이다.
이처럼 경제규모는 커지나 근로소득과 자산소득의 격차가 더욱 벌어진 결과 이제 지하경제에 대한 정치적ㆍ사회적 「용인도」는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현저히 낮아지고 있다.
그러나 지하경제는 이를 다독거려 가급적 지상으로 끌어올릴 수는 있어도 아주 없앨 수는 없는 엄연한 경제의 현실이며,또 잘못 파헤치려다가는 지상의 경제까지도 무너뜨릴 수 있는 「경제의 어두운 뿌리」다.
대표적인 지하경제의 수맥인 사채의 경우 사유재산권 침해라는 위헌시비까지 불러왔던 지난 72년의 8.3사채 동결조치로 당시 총통화의 95.7%,은행예금의 32.9%에 이르는 3천4백50억원 규모의 사채를 정리했으나 10년 뒤인 82년에 정부는 다시 적어도 1조1천억원 이상으로 추산되던 사채를 단자 등 제도금융권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조세 정의를 정부가 스스로 깬다는 비난을 들어가며 사채 양성화 조치를 취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고도 다시 2년뒤인 84년에는 제도금융을 이용한 1조5천억원 규모의 신종사채인 이른바 완매거래를 물리적으로 규제,결국 국제그룹의 해체라는 충격적인 조치를 불러온 한 원인이 됐다.
지하경제의 또다른 수맥인 뇌물ㆍ커미션등도 질긴 생명력을 갖고 있기는 마찬가지다.
독립기념관 화재 사건을 계기로 정부는 건설업계의 부조리를 근본적으로 다잡기 위해 특별반까지 만들어 공사 입찰 방법등 제도개선을 시도했으나 건설부의 도로국장은 아직도 가장 「다치기 쉬운」자리며,범양사건의 비자금을 수사하던 검찰은 도중에 수사를 덮어버렸었다.
5공 비리를 추궁하던 국회도 정치자금 부분에 대해서는 「시늉」에 그쳤으며 은행은 지금도 거액 예금을 유치하기 위해서는 직원들이 스스로 달동네와 같은 곳의 주민등록을 열람해 차명예금통장 수십개를 예금주에게 만들어 주어야 하는 것이 현실이다.
또 주식 매매 차익에 대해 일일이 세금을 매길 수 없는 과세 기술상의 한계는 분명히 알고도 지나칠 수 밖에 없는 거대한 지하경제를 만들어 놓고 있지만 그럼으로써 증시가 유지되고 있는 것은 비단 우리만의 현실이 아니다.
이처럼 지하경제는 자산계급과 비자산계급의 소득격차를 갈수록 더욱 벌려놓는 부정한 소득의 원천인 동시에 지상의 정치ㆍ금융ㆍ기업ㆍ사회를 굴러가게 하는 「뒷골목 질서」의 버팀목이기도 하다는데 문제 해결의 어려움이 있다.
지하경제는 과연 어떠한 그림자를 도처에 드리우고 있으며 실명제 유보이후 이제 우리는 지하경제에 어떻게 대처해 나가야 할까.〈김수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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