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 병원 응급실 '수련의 수술' 아찔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0면

10일 깨진 유리에 새끼손가락을 다친 최모(38)씨는 집 근처 병원 응급실을 찾았다. 당직 의사 한 명이 다른 환자를 치료하느라 최씨는 지혈만 한 채 한 시간 가까이 기다렸다가 꿰맸다. 그러나 사흘이 지나도 새끼손가락에 힘을 줄 수가 없었다. 힘줄이 끊어진 상태에서 봉합됐기 때문이다. 최씨는 "응급실에서 기본적인 환자 상태도 확인하지 않은 채 수술을 한 것"이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응급실에서 최씨를 진료한 의사는 이 병원에서 일 주일에 두 번 야간 당직을 하는 '아르바이트 의사'였다. 일부 병원의 부실한 응급의료 서비스로 인해 환자들이 골탕을 먹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17일 전국 433개 응급의료기관 가운데 법정 기준을 충족한 기관은 166곳(38%)뿐이라고 밝혔다. 최상급 병원인 16개 권역 응급센터 중에서 정부 기준대로 응급실을 운영하는 곳은 6곳뿐이었다.

◆ 전문의 부족=지난해 5월 현재 응급의학 전문의는 408명이다. 응급의료기관으로 지정된 병원이 433개인 점을 감안하면 한 곳당 한 명을 채우기 어렵다. 적어도 응급의학 전문의가 두 명은 있어야 교대 근무가 가능하다. 앞으로도 쉽게 개선되긴 어려운 형편이다. 1999년 이후 응급의학 전공의 모집에서 정원을 채운 경우가 단 한번도 없다. 고생은 고생대로 하는데 보상은 별로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 생긴 공백은 수련 과정에 있는 일반 전공의가 채운다. 지난해 4월 서울의 한 병원 응급실에선 한 전공의가 오른쪽 폐에 물이 찬 응급환자의 왼쪽 폐에 관을 삽입하는 바람에 환자가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왼쪽 폐에는 공기가 들어가고, 오른쪽 폐의 물은 그대로 남는 상황이 된 것이다. 하루 서너 시간씩 자면서 응급실 근무를 하는 바람에 집중력이 떨어져 생긴 사고였다. 의료사고 전문 신현호 변호사는 "병원장을 상대로 소송하는 경우가 많아 잘 드러나지는 않지만 상당수 의료 사고가 전공의와 연관돼 있다"고 말했다. 이혁 전 전공의 노동조합위원장은 "병원들이 경영이 어렵다며 전문의 고용을 기피하면서 전공의가 응급실 당번으로 내몰리고 있다"며 "피곤한 상태에서 진료하면 의료의 질이 떨어질 수밖에 없고 환자에게 피해가 돌아간다"고 말했다.

◆ 실속 없는 체계=대도시에는 응급실이 넘치고, 지방에선 응급실 찾기가 어렵다. 지방에선 응급 상황이 발생하면 생사가 갈릴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응급실이 수적으로는 결코 적지 않다. 중증 응급환자 진료가 가능한 국내 응급실은 112개로 인구 44만 명당 한 곳이다. 선진국에선 인구 100만~150만 명당 한 곳꼴이다. 문제는 지역적으로 편중돼 있다는 점이다.

한국보건산업진흥원 분석(2004년 기준)에 따르면 광역시에는 38개가 적정한데 59개가 설립돼 있다. 이 중 33개는 서울 지역에 몰려 있다. 응급실이 지나치게 많으면 환자가 분산되고, 병원은 응급실에 투자한 비용을 뽑기 어려워진다. 자연히 응급실 운영은 빡빡해지고 진료는 부실해진다. 또 강원도 동해.삼척시 권역, 전남 보성.장흥 권역 등 상급 응급의료센터가 전혀 없는 지역이 16개에 이른다. 복지부 관계자는 "올해부터 단계적으로 전국 12개 응급의료정보센터에 지리정보시스템(GIS)을 구축해 응급환자가 가장 가까운 병원을 이용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김영훈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