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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위기의 부부' 한국과 미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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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한국과 미국은 '부부 관계' 상담을 받아 봐야 할 것 같다. 오래전 결혼한 두 나라는 지난 몇 년간 관계가 급속히 나빠졌다. 급기야 이혼까지 거론되는 상황이다. 이들은 서로 상대방이 자신을 배신했다며 비난하고 있다. 그 사이 미국은 일본과 밀애에 빠졌다. 그리고 한국도 중국과 데이트를 시작했다.

조지 W 부시 대통령과 노무현 대통령은 지난주 워싱턴에서 짧은 정상회담을 열었다. 이들은 깊은 불화를 드러내지 않았다. 손님들 앞에서 좋은 모습만 보이려 한 것이다. 하지만 속지 마시라. 부부 관계는 여전히 위기에 처해 있다.

가장 심각한 불화의 원인은 북한이다. 부시 행정부는 평양 정권의 교체를 긍정적으로 보지만 남한은 북한의 불안정이 몰고올 결과를 두려워한다. 미국은 경제제재로 북한을 쥐어짜려 하지만 남한은 북한 노동력을 활용해 동북아시아 경제 허브를 구축하려 한다.

두 정상은 6자회담에 대한 지지를 거듭 표명함으로써 이 문제를 에둘러 갔다. 하지만 6자회담이라는 틀은 그간 뚜렷한 성과를 내지도 못했거니와 최근에는 거의 사망 직전이다.

북한 문제는 한국과 미국의 관계를 갈라놓았을 뿐 아니라 이 부부가 각각 불륜에 빠지도록 만들었다. 미국과 일본은 북한에 대해 한목소리로 '눈에는 눈'이라고 말한다. 이 때문에 부시는 일본의 고이즈미 총리를 크로퍼드 목장으로 초대해 환대를 베풀었지만 노 대통령은 백악관에서 잠깐 만났을 뿐이다. 반면 한국과 중국은 북한의 경제개혁을 독려해야 한다고 외치고 있다.

북한에 대한 다른 시각은 미군의 성격에 대한 이견으로까지 확대되고 있다. 노무현 정부는 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을 지원했다가는 중국의 반발을 살 것이라고 우려한다. 하지만 워싱턴의 네오콘과 현실주의자들은 중국의 부상을 반드시 봉쇄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이처럼 한국과 미국은 지정학적 시각에서 이견이 있다.

최근 전시작전통제권을 두고 한국에서는 큰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또 자유무역협정(FTA)은 양국 모두에서 상당한 저항에 부닥치고 있다. 하지만 이런 것들은 한.미 동맹을 위기에서 구하거나, 혹은 파탄으로 이끌 만한 근본적인 문제가 아니다. 미국이 한국을 무비자국가에 포함하는 문제도 마찬가지다.

한.미 동맹은 지정학의 산물이고, 지정학 덕분에 번성해 왔으며, 앞으로의 생존 여부도 지정학에 따라 결정될 것이다. 핵심적인 문제는 북한과 전략적 유연성 문제이지 한국인들이 얼마나 편하게 미국으로 여행하느냐, 혹은 전쟁 발발 시 누가 지휘를 할 것인가가 아니다. 맥없이 끝난 정상회담 뒤에 의문은 여전히 남는다. '한.미 관계는 회복될 수 있을까, 아니 회복할 필요가 있을까.'

한국은 페미니즘을 깨우친 아내처럼 미국과 더욱 동등해지기를 바란다. 보다 자유롭게 외교정책을 수립하고, 군사 문제에서도 주도권을 쥐려 한다. 하지만 한국은 여전히 미국이 동아시아에서 일본과 중국을 통제하고, 북한의 침략 시 지원해 주기를 바란다. 미국은 옛 시절의 권위적인 남편처럼 전략적 유연성, 대북 제재에서 한국이 그대로 따라와 주길 바란다. 하지만 워싱턴도 한국이 중국의 영향력을 차단하기 위한 공동전선에 참여하길 원하고 있다.

'페미니스트' 한국과 '성차별주의자'미국이 이런 새로운 욕구들을 결혼이라는 예전의 틀 속에서 조정해 갈 수 있을까. 양측은 다가올 선거에서 청와대에는 보다 전통적인 파트너가, 백악관에는 보다 계몽된 지도자가 들어와 역학 관계가 바뀌기를 서로 고대하고 있다. 정치적 변화 없이는 한.미 동맹이 번성하기 어렵다. 노 대통령과 부시 대통령이 세계를 보는 눈은 너무 다르기 때문이다. 그리고 두 사람이 각국 국민의 시각을 정확히 대표하고 있는지는 여전히 풀리지 않은 문제다.

존 페퍼 국제문제 칼럼니스트 '포린폴리시 인 포커스' 공동소장

정리=조민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