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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아이돌스타, 방콕을 접수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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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룹 동방신기가 15일 오후(현지시간) 태국 방콕 임팩트 아레나에서 열린 '라이징 선 1st 아시아투어 2006 라이브 인 태국' 공연에서 1만4천여명의 팬들 앞에서 화려한 공연을 펼치고 있다. SM엔터테인먼트 제공 (방콕=연합뉴스)

동방신기 등 한국의 아이돌 스타들이 15일 태국 방콕의 밤을 접수했다. 이날 태국에서 첫 콘서트를 가진 동방신기는 노래 ‘마법의 성’으로 관객들을 홀린 뒤 ‘Rising Sun’의 강렬한 퍼포먼스로 이들을 열광케 했다. 분명 동방신기는 자신들의 노래처럼 태국의 ‘떠오르는 태양’이었다. 공연이 펼쳐진 임팩트 아레나는 1만4000여명의 관객들로 발디딜 틈이 없었다. 워낙 많은 관객이 몰려 오후 8시였던 공연시작 시간은 16분이나 지연됐다.

동방신기를 상징하는 붉은 색(Pearl Red) 티셔츠를 입은 소녀팬들은 손에 플래카드와 빨간 풍선을 들고 동방신기의 노래를 한국말로 따라 불렀다. 두시간 반의 공연 내내 앉아있는 관객을 찾기가 힘들 정도로 분위기는 뜨겁게 달아올랐다. 관객은 그야말로 다국적군이었다. 태국,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홍콩, 중국, 일본, 한국 등 10개국의 동방신기 팬들이 이날 공연을 관람했다. 한국,일본,말레이시아를 거쳐 첫번째 아시아투어의 대미를 장식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관객구성이었다.

예쁜 전구로 유노윤호, 시아준수, 최강창민, 믹키유천, 영웅재중 등 좋아하는 멤버의 이름을 수놓은 플래카드가 관객석 곳곳에서 반짝였고, 한국에서 독일 월드컵 응원소품으로 불티나게 팔린 빨간 뿔 모양의 머리띠를 한 팬들도 많았다. 다양한 국적에 맞게 관객들은 자기들만의 응원 스타일로 동방신기 멤버들에게 열기를 불어넣어줬다.

동방신기의 아시아투어 2006 태국공연에 특별 게스트로 출연한 그룹 '수퍼주니어' 공연 모습 (방콕=뉴시스)

이날 무대에 게스트로 초청된 수퍼주니어도 특유의 신나고 발랄한 댄스곡으로 관객들을 녹였다. 같은 SM엔터테인먼트 소속의 동방신기와 수퍼주니어는 지난 7월 말레이시아 콘서트에서는 합동 무대를 펼쳤지만, 이날 공연에서는 함께 노래를 부르지는 않았다. 그러나 수퍼주니어가 퇴장하고, 이를 동방신기가 배웅하면서 한 무대에 17명의 한국 아이돌스타들이 꽉 들어차는 장면이 펼쳐지기도 했다.(*수퍼주니어는 원래 13명이지만, 멤버 희철이 부상으로 이날 무대에 서지 못했다.)

‘희철, 기범 사랑해요’라고 씌여진 플래카드와 관객석의 뜨거운 반응으로 볼 때 수퍼주니어의 인기는 단순한 게스트 차원을 넘어서는 것이었다. 수퍼주니어의 중국인 멤버 한경이 중국말로 인사를 할 때는 관객석의 중화권 팬들로부터 뜨거운 격려가 터져나왔다.

SM엔터 관계자는 “내년에는 동방신기 공연과는 별도로 수퍼주니어의 단독공연을 해보자는 제의가 들어왔다”고 말했다. 관계자는 “동방신기의 열렬한 팬인 두바이 공주도 공연에 오려고 했는데, 몸 컨디션이 좋지 않아 오지 못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앙콜 무대를 마지막으로 공연은 끝났지만, 공연장 주변의 열기는 식지 않았다. 수많은 소녀팬들은 쏟아지는 빗속에서도 그들의 우상을 보기 위해 출입구 바리케이트 너머로 진을 쳤다. 동방신기와 수퍼주니어는 각각 밴과 버스를 탄 채 경찰 사이드카의 호위를 받으며 공연장을 빠져나왔다. 일부 팬들은 숙소인 피닌슐러 호텔 정문에 진을 치는 열성을 보이기도 했다.

13일 밤 동방신기의 입국도 007작전을 방불케 했다. 방콕 국제공항에는 동방신기를 환영하러 나온 3000여명의 소녀팬들로 가득찼고, 안전사고를 우려한 공항당국과 경찰이 이들을 해산했지만, 열기는 수그러들지 않았다.

결국 동방신기는 비행기 활주로에서 경찰이 준비한 버스에 올라타 곧바로 숙소로 향했다. 버스 안에서 입국심사가 이뤄진 것이다. 지난 6월 채널V 시상식 참가를 위해 태국을 찾았을 때보다 더욱 뜨거운 환영열기였다. 14일 열린 기자회견에는 동남아 지역 91개 언론매체가 참가해 뜨거운 취재경쟁을 벌였다.

◇한류는 죽지 않았다= 방콕의 밤을 뜨겁게 달군 동방신기의 열기는 한류가 아직 건재함을 과시하는 징표였다. 적어도 태국을 비롯한 동남아권에서는 동방신기로 인해 한류가 재점화하는 듯한 분위기였다. 일본 대중문화가 뿌리깊게 침투해있는 태국에서 동방신기는 ‘일본류’의 틈을 뚫고 들어가는, 아니 서서히 압도하기 시작하는 커다란 돌풍이었다.

거리의 차 대부분이 도요타, 혼다, 닛산이고 일본대중문화의 매니어층이 두터운 태국에서 한류는 분명 새로운 트렌드를 만들어가고 있었다. 호텔 벨보이가 ‘대장금’을 얘기하고, 레코드점 주인은 ‘동방신기’와 ‘수퍼주니어’ 앨범에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었다. 앞서 방콕에서 공연을 가진 비와 신화가 분위기를 서서히 달궈놓았다면, 동방신기는 그 열기를 한꺼번에 폭발시켰다.

최근 방콕에서 열린 ‘일본문화 페스티벌’에서는 수많은 태국 청소년들이 일본 그룹이 아닌 동방신기를 모방한 무대를 선보였다. 동방신기의 헤어스타일과 패션은 태국 청소년들의 코스프레 대상이 됐다. 공연장에서 만난 태국소녀들은 예전에는 일본스타들을 좋아했지만, 이제는 동방신기ㆍ수퍼주니어 등 한국스타들에게로 관심의 방향이 바뀌고 있다고 말했다.

동방신기 때문에 일본어 대신 한국어를 공부하겠다는 팬들도 상당수였다. 동방신기의 태국공연은 팬들의 성원에 힘입어 마련됐다는 점도 의미깊다. 동방신기의 주 프로모션 대상국은 중국과 일본이었지만, 동방신기의 앨범이 태국 현지에서 호응을 얻고, 인터넷을 통해 그들의 일거수 일투족이 리얼타임으로 현지팬들에게 전달되면서 그들의 인기는 증폭돼왔다.

‘HUG’ ‘믿어요’ 등의 노래는 태국 음악차트에서 4주 연속 1위를 했고, 지난 6월 ‘채널V 뮤직어워드’에서는 뮤직비디오상 등 두 개부문에서 수상했다. 동방신기 본인들도 인정하듯 그들이 아시아시장에서 고르게 선전하는 이유는 바로 노래 때문이다. 댄스 뮤직 위주의 기존 아이돌그룹과는 달리 발라드, 아카펠라, R&B까지 소화해내면서 아시아적 정서에 보편적으로 호소하고 있는 것이다.

중화권 시장과 화교가 주도권을 쥐고 있는 동남아 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그룹명을 한자풍인 ‘동방신기’로 정하고, 멤버들 이름을 네 자로 만든 것에서 보듯 타겟시장을 위한 철저한 기획도 성공요인으로 꼽힌다. 동방신기 멤버들이 태국에서 손목에 찬 주황색 팔찌는 채널 V가 경매를 해서, 그 수익금을 현지 불우이웃 돕기에 쓰기로 했다.

올해로 즉위 60주년을 맞은 태국 국왕의 장수를 기원하는 태국 국민들의 염원의 상징인 주황색 팔찌를 동방신기 멤버들이 함께 차고, 그 팔찌를 판 돈으로 현지 불우이웃을 돕는 현지친화형 이벤트는 스타마케팅 전략의 일환이지만, 태국 국민들의 환심을 사기에 충분하다. 이런 점도 분명 한국 아이돌스타를 다른 아시아권 스타들과 차별화하는 정서적 마케팅 수단이다.

방콕=정현목 기자 (gojh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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