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닥증시와 정책불신(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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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새 경제팀의 출범으로 한때 회생의 기대를 안겨줬던 증시가 여전히 침체의 늪을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회생은 커녕 주가 하락이 오히려 가속화되어 28일의 종합주가지수는 1년4개월전인 88년 11월수준으로 떨어졌다는 얘기다. 주가가 가장 높이 올랐던 작년 4월에 비하면 낙폭이 무려 23%에 달한다.
평균 낙폭이 이 정도이니 종목에 따라서는 엄청난 손실을 투자자들에게 안겨줬으리라는 것은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주식시세라는 것은 증시의 속성상 등락이 있게 마련이고 주식투자의 묘미도 바로 거기에 있다고는 하지만 지금처럼 침체장세가 장기화되어 손실만 주는 증시라는 인식이 깊어진다면 이는 결코 방관만하고 있을 일이 아니라 생각된다.
더욱이 우리는 자본시장의 개방 일정을 공표해 놓고 있고 기업들의 직접 금융시장에 대한 의존도가 날로 높아지는 추세에 있는 만큼 증시의 장기침체는 범연한 일은 아니라 본다.
그렇다고 은행돈을 풀어 주식을 사들이도록 하는 따위의 임기응변적 처방을 내리라는 얘기가 아니다. 환자에게 진통제나 주사하는 것과 같은 식의 대응책이 전혀 실효가 없음은 물론 오히려 정부에 대한 불신감만 깊게 했음은 그동안의 시행착오를 통해 익히 실증된 바 있으며 이제는 캄플주사의 효과마저도 내지 못하리라 생각된다.
그보다는 장기침체의 원인을 깊이 분석,제도나 운영에 잘못이 없는가를 찾아내 이를 개선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리라 본다.
우리가 보기에 지금의 주가하락은 경제여건상 불가피한 요인이 없는 것이 아니다. 전체 경제가 어렵고 앞으로의 전망이 불투명한 상황에서 주가만 오르기를 기대한다는 자체가 무리다.
그러나 그외에 정부의 정책이나 제도,그리고 증시를 관리하는 자세에도 적지 않은 문제점이 있으며 이같은 인위적 요인들이 침체를 부채질하는 측면이 적지 않다고 본다.
그 대표적인 예가 최근의 신용거래 확대 허용조치와 계열회사의 상호 출자금지 대상을 금융ㆍ보험회사로 확대,위반업체에 대한 과징금을 대폭 강화한 것 등이다.
그렇지 않아도 증시는 지난해의 물량공급 과다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여기에 3월말 결산 증권회사들이 미수금을 한꺼번에 정리하느라 시장에 압박을 가하고 있고,계열 금융 보험회사들은 3월31일의 시한을 앞두고 계열회사의 주식처분을 서두르고 있으니 주가가 큰폭으로 떨어지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하다 할 수 있다.
그러나 더 큰 요인은 정부의 갈팡질팡하는 증시대책이 심어놓은 불신풍조다. 증권거래의 본질은 좋든 싫든 머니 게임이고 게임에는 객관적이고 공정한 규칙이 그 생명이다. 규칙이 공정하고 흔들리지 않는 게임이라야만 투자자들은 예측가능성과 기대가능성을 갖고 투자할 수 있고,그런 풍토에서는 설사 손실을 보더라도 불만이 있을 수 없다.
그런데 정부는 주가가 오르면 규제하고,내리면 부양책을 쓴다는 식의 구태의연한 자세와 인식을 버리지 못하고 반복함으로써 투자자들에게 그같은 원칙에 대한 신뢰와 안정감을 심어주는 데 실패하고 있다.
새 경제팀이 출범하면서 그동안 주가하락의 가장 큰 요인중 하나로 지목돼온 실명제의 실시 보류가 거의 확실해지고 있는데도 주가가 더욱 하락하는 것은 여러가지 요인이 있지만 가장 큰 요인은 정부에 대한 신뢰의 상실이라고 우리는 본다.
새 경제팀이 선명한 정책방향과 그 실시에 대한 굳은 의지를 보이지 못하고 있는 것도 그같은 불신감을 더욱 깊게 하는 요인의 하나일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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