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 죽어도 여한없어요/손씨일가/부자이어 부부상봉… 함께 저녁식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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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동경=방인철특파원】 남북으로 헤어져 살아온 분단가족이 40년만에 한자리에 모였다.
6.25때 헤어진 북의 아버지 손영종씨(63ㆍ북한사회과학원 역사학연구소장)와 남의 아들 경한씨(39ㆍ변호사)가 상봉한데 이어 17일 밤 급히 동경으로 달려온 부인 김선순씨(62ㆍ부산 동래)와 형님 영춘씨(63),여동생 영숙(59)ㆍ영부(57)씨 등 일가족이 동경시내 팔레스호텔에서 극적인 맞대면을 한 것이다.
부인 김씨는 40년만에 보는 남편 영종씨와 손을 맞잡으며 『고향(동래)에서 가져온 꽃입니더』라며 준비한 꽃다발을 다소곳이 전해주었고 형 영춘씨는 『네이놈아,살아있어 다행이다』고 울음을 터뜨렸다.
영종씨는 감격에 벅찬듯 말하지 못하면서도 형ㆍ여동생들과 차례차례 인사를 나누었으며 영숙씨는 『제가 누군지 알겠어요』라며 오빠에게 안겼다.
영종씨는 형 영춘씨가 『어머님 생전에 만났으면 얼마나 좋았겠느냐』고 말하자 복받치는 듯 울음을 터뜨리기도 했다.
상봉의 시간은 잠시였지만 40년이라는 이산가족의 한이 한꺼번에 흘러가버리는 듯한 순간이었다.
영종씨는 이어 가진 기자회견에서 『만나서 참으로 기쁘다. 미안한 감정도 있으나 역사가 그렇게 만든 것이기 때문에 어쩔수 없다. 앞으로 남북이 완전히 뚫리는 날이 빨리 와 모든 이산가족이 재회의 기쁨을 나눴으면 한다』고 소감을 말했다.
한편 부인 김씨는 『생각했던 것보다 얼굴이 많이 야윈 것같아 마음이 아프다. 아들이 아버지를 보지 못해 늘 안타까웠는데 이제 내일 죽어도 한이 없다』고 얼굴에 홍조를 띠며 말을 이었다.
영종씨는 북에서 재혼,2남4녀를 두었다고 밝히면서 『지금이라도 모두 함께 살수 있으면 좋겠지만 현실이 허락하지 않는다. 하루빨리 상호 초청,자유왕래의 길이 트였으면 한다』고 안타까운 심정을 나타냈다.
손씨일가는 이날 기자회견이 끝난 후 영종씨의 호텔방으로 자리를 옮겨 가족만의 정담을 약2시간 나눈후 헤어졌다.
이들은 18일 저녁식사를 함께 하자는 제의에 따라 오후7시30분쯤 동경시내 한식음식점에서 다시 만나 약1시간30분정도 오랜만에 가족들만의 오붓한 식사시간을 가졌다.
아들 경한씨 등 남에서 온 가족들은 미리 준비한 코트ㆍ모자ㆍ넥타이ㆍ시계ㆍ양복지 등을 영종씨에게 전달했으며 『부자간에 차고있던 허리띠를 서로 바꿔 상봉의 기념으로 간직하기로 했다』고 경한씨가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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