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구 사대주의 심한 영어책(교육 이대로 둘 것인가:61)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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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미국­영국 무조건 좋게만 설명/진로 관계없이 무차별 교육… 시간ㆍ노력 낭비 「「영어」하면 생각나는 것은 무엇입니까?」
­영어+나=생각하기도 싫다. 영어-나=해방감. 영어×나=낙제점수.
­전영록의 노래(이제 자야 하나봐).
­배울 필요가 없는 과목. 미국이 밉고 싫다.
­반전,반핵,그리고 반영
­난 꼭 영어를 잘할꺼야. 고급스러워 보이는 걸. 귀금속같다.
서울A중 유모교사(35)가 지난 학기초 3학년 학생들에게 물어본 간추린 대답이다. 영어가 얼마나 지겹고 괴로웠기에,얼마나 근사하게 느껴졌기에… 그래서 유교사는 요즘 1학년 영어수업을 시작할때마다 잠시 갈등에 잠기곤한다.
중학교 들어오기전에 학원에서 기초영어를 배운탓에 첫단원의 알파벳이나 간단한 인사법을 가르치면 시큰둥한 표정을 짓는 학생이 적지않다. 그러나 3월말 첫시험과 5월초 중간고사를 거치면서 무조건 외워야한다는 강박관념과 문법에 대한 싫증때문에 「영어공부 대행진」에서 탈락하는 학생이 절반정도.
【그러다 2학년쯤 되면 중상위권 30∼40%의 학생만 그럭저럭 따라오는 수업이 되기 일쑤입니다.」
유교사는 『바람직한 수업이 되려면 교사의 풀이시간이 40%정도,학생의 질문ㆍ발언이 60%쯤 돼야하지만 교사가 90%이상 일방통행을 해도 진도를 끝내기가 바빠 무력감을 떨치지 못한다』고 했다.
서울B상고 1학년 영어담당 박모교사(42)는 인문계인 C고에서 영어를 가르치는 대학동창인 김모교사(42)의 얘기를 듣고 쓴웃음을 지었다.
『18개나 되는 과를 제대로 수업할경우 1과당 8시간씩 가르쳐야하는데 시험ㆍ소풍ㆍ행사등을 빼고나면 1과당 5∼6시간에 마쳐야해. 바로 전번시간에 가르친 내용을 대충 해석할수있는 학생이 고작 다섯 손가락이 될까말까야.』
영어수업을 완전히 포기하지 않고 따라오는 10여명을 데리고 진도 맞추기만도 급하니 수업할 맛이 나지않는다는 얘기였다.
『그런 교과서를 가지고 실업계 학생들을 가르쳐야하는 내앞에서 그걸 불평이라고 하나? 며칠전에는 영어시간에 불어책을 꺼내놓고 영어ㆍ불어를 구분못한채 다른 학생을 곁눈질하며 수업중인 페이지를 찾겠다고 책을 뒤지더군.』
고2 영어교과서로는 도무지 수업이 불가능해 중1 영어교과서 내용을 박교사가 재편집한프린트물로 수업하는 사정을 털어놓자 김교사도 할 말을 잊고 한숨만 내쉬었다.
지난 12일 서울D여고 1학년5반 영어수업시간. 『영어를 왜 배워야하는가』에 관한 단원이었으므로 신모교사(29)는 진도가 좀 늦어지더라도 학생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하려 애썼다. 학습동기가 충분히 주어지면 학생들이 좀더 자발적으로 영어공부를 하게될는지도 모른다는 기대도 없지않은 탓이다 『외국인과 만나도 거침없이 말을…』『국제화시대에…』『취직하려면 역시…』저마다 한마디씩 말하던 참에 부반장 손모양(15)이 일어섰다. 『뭐니뭐니해도 영어성적이 좋아야 대학에 진학할수있기 때문이죠. 대입학력고사에서 영어의 배점이 국어와 같은 60점이나 되니 역사(25점),사회(20점)보다 세배나 중요하잖아요』손양의 이말에 잠시 들떴던 분위기가 다시 가라앉았다. 『자,그럼 영어공부에 따른 어려움이나 문제점에 대해 얘기해봅시다.』
신교사가 분위기를 돌려 말하자 학생들은 놀랍도록 솔직한 의견을 털어놨다. 처음에는 진도가 빠르고 시험이 어렵다는 얘기였으나 마침내 영어교과서 내용에 대한 불평이 꼬리를 물었다. 「어째서 미국이나 영국은 무조건 좋은것처럼 설명돼있느냐」「그들의 식민지 정책이라든가 농산물수입개방압력,물질만능주의적 사고방식등 부정적 측면도 보여줘서 학생들이 「서구사대주의」에 빠지지않게 해야되지 않느냐」­.
등장인물중 여자는 대개 감정적ㆍ비생산적이고,남자는 능동적ㆍ주체적으로 되어 있어 성차별이 심하다는 지적까지 나왔다.
중등교육에서 영어의 비중이 높아질수록 그 문제점도 나날이 심각해지고 있는가운데 최근 일부 영어교사들이 영어교육의 제자리잡기를 선언하고 나섰다. 「영어교육을 위한 교사모임」
이들은 최근 펴낸「영어교육」창간호에서 적성ㆍ진로와 상관없이 모든 학생들이 영어공부에 시달리게 하는 것은 시간과 노력의 낭비일뿐이므로 학교교육과 입시에서 영어의 비중을 크게 낮추고 필수가 아닌 선택과목으로 바꿔야한다는 주장을 폈다.
또 교육현장을 잘 아는 교사들이 영어교과서 제작에 참여해야하며 교과서는 검인정이 아닌 자유발행제로 바꿔 농어촌 지역이나 농ㆍ공ㆍ상업계열에서는 실정에 맞는 교과서를 채택해 수업을 할수있도록 돼야한다는 것이다.
현재 인문ㆍ실업계의 구분이 없고 내용이 엇비슷한 다섯가지로 도시ㆍ농어촌 할것없이 일률적으로 강요되는 것은 「교육의 과오」라는 지적이다.
「영어는 이제 외국어가 아닌 「제2국어」처럼 그 중요성이 무차별적으로 강요되고 있습니다.」
서울 고려중 오수현교사는 「따라서 효율적인 영어교육방법뿐만아니라 그 내용이 학생들의 열등감과 자기비하를 조장하지나 않는지,각자에 필요한 내용과 수준이 교육되고 있는지등 좀더 근본적인 문제부터 접근해 봐야한다」고했다.<김경희기자>PN JAD
PD 19900315
PG 05
PQ 03
CP HS
CK 07
CS A11
BL 1148
GI 방인철
TI 「북한독재타도」주선 재일 하수도씨 일문일답
TX ◎“통일의 최대 방해자는 김일성”/“5월중에 대규모 집회 가질 계획”
지난 11일 동경에서 열렸던 「김일성독재타도 조국통일추진 재일조선인 결기대회」의 중심인물 하수도씨(62)는 전조총련중앙조직부부장으로 최근 조총련반체제운동을 펴오고 있다.
하씨는 한반도 통일의 최대 방해자는 김일성이라고 주장하며 조총련은 물론 북한의 1당독재를 폐기해야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다음은 14일 동경시내에서 기자와 가진 하수도씨와의 일문일답 내용.
­어떤 계기에서 이 운동을 하게됐나.
「지난해 베를린장벽이 무너지는 것을 보면서 조국의 재통일을 가로막는 가장 큰 암은 김일성이라고 생각하게됐다. 그동안 조총련은 반미제국주의만 부르짖어왔는데 얄타체제를 만드는데는 최근 소련에서 비판받고 있는 스탈린도 38선을 만든 장본인이다.
지금이야말로 조선사람 스스로의 의견과 행동으로 38선과 군사경계선의 벽을 허물어뜨려야할 때며 이를위해 우선 김일성왕조 타도가 시급하다고 판단했다.」
­조총련으로부터 위협ㆍ방해공작이 있을텐데….
「지금은 세상이 변해 그렇게 못할것이다. 만일 테러라도 한다면 세계가 주시하는 사태가 된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5월중으로 대규모 집회를 가질 것이다.」
­조총련안의 문제점은 무엇인가.
「59년부터 시작한 귀국사업(재일교포북송사업)으로 총련은 일본이라는 국제적 입지조건을 이용,김일성 개인우상화를 강화하는 정치ㆍ사상센터가 되어왔다. 또 전조직이 한덕수의장에 의해 김일성ㆍ김정일의 사물화되어 가고있다. 총련안에도 이에 불만을 갖고 이탈하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
그러나 불만을 표시했다가는 가족이 봉변 당할까봐 표현을 못할뿐이다. 어느시점에 가면 이 불만에 폭발하리라 본다.」
­사회주의에 대한 신봉은 변함없는가.
「동구사회주의제국에서 일어나고있는 운동은 공산당의 1당독재체제를 폐지하고 자유선거를 통해 스탈린형 사회주의를 극복,진정한 사회주의를 건설하자는데 목적이 있다.
현단계에서는 사회주의자든 민족주의자든 7천만민족의 지상과제인 통일을 위해 함께 싸워야한다. 한국안에도 야당ㆍ학생ㆍ노동자등 비판세력이 있고 이들이 민주화를 위해 노력하고있다. 그러나 「북」은 그렇지못하다. 표정만 달라져도 죽여버리는 김일성 유일체제이기 때문이다. 우선 민족주의가 확립돼야한다. 북에서도 복수정당제가 인정돼야하고 선거에 의해 지도자를 선택해야한다.」【동경=방인철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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