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 '제11회 삼성화재배 세계 바둑 오픈' 18세 김형우, 세계 32강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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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제11회 삼성화재배 세계 바둑 오픈'

<예선결승 하이라이트>
○. 왕 시 5단 ●. 김형우 초단

스피드는 바둑판 최고의 무기인데 초단 김형우는 행마가 느리다. 실리가 둥둥 떠다니는데도 그냥 두텁게만 둔다. 대신 그는 수읽기가 무척이나 강하다. 이 판에서 세계 챔프 왕시(王檄)가 겪은 비운(?)은 어쩌면 도저히 초단이라고 믿을 수 없는 그의 강한 수읽기에 제대로 걸려들었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런 김형우에게서 소년 시절 이창호의 일면이 느껴진다. 이창호는 또한 느리고 빛나지 않는 칼이었다.

장면도(81~93)=81을 선수한 김형우가 느닷없이 상변으로 달려가더니 83으로 젖혀버렸다. 백A로 끊으면 별것 없는 수. 그러나 이미 뼈저린 맛을 본 왕시는 감히 손을 뻗지 못한다. 왕시는 상대가 상변에서 살기 위해 83을 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상대는 지금 B의 노림수를 보고 있고 이 엄청난 패싸움에 대비해 팻감을 장만하고 있는 것이다.

고통스러운 장고 끝에 왕시는 84로 굴복했다. 그러나 85로 잡는 수가 기막히다. 우측 백 대마가 졸지에 곤마가 됐고 부수입으로 C로 살아가는 수가 생겼다. 84는 이성적으론 '어쩔 수 없는 굴복'이었지만 감정적으로는 '목숨을 걸지언정 둘 수 없는 수'였다. 88까지 대마를 살려냈지만 89, 91의 강타가 또 성립해 흑승이 확연해졌다. 왕시는 불과 121수에서 항복했다.

<참고도1>=백1로 끊는 것은 흑4에서 대책이 없다. 백5엔 흑6으로 천지대패. 팻감으로 A, B를 연타하면 바둑이 끝난다.

<참고도2>=흑1 따낼 때 백이 패를 피해 2로 둘 수 있다. 그러나 3을 선수한 뒤 5로 꾸역꾸역 기어나가면 막지 못한다. 흑은 '백은 하변도 미생이다.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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