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광장」,발상은 좋지만…(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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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통일은 우리 민족의 역사적 염원인 동시에 남북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현실적인 과제로 온국민의 관심 제고와 합의가 절실하다.
따라서 정부의 「통일광장」 운영계획(중앙일보 3월10일자)도 그런 관점에서 일단 긍정적인 평가를 받을 만하다.
통일원이 구상하고 있는 통일광장은 영국 런던에 있는 하이드파크의 스피커스 코너에서 착상한 것으로 이곳에서는 일반인은 물론 운동권 학생등 누구나 통일문제에 관한 주제발표를 하고 토론도 벌일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다. 토론에만 그치게 하는 것이 아니고 발표된 의견들을 종합ㆍ분석해 정부의 통일정책 자료로 활용하겠다고 한다.
통일문제가 정치인이나 일부 학자 또는 전담 관료들만의 전문분야나 전유물인양 고답적ㆍ폐쇄적으로 취급되어 오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런가 하면 정부가 생각하고 있는 방법이나 추진하는 방향과 부합되지 않거나 상치되는 통일주장에 대해서는 이를 금기 또는 위험시하여 매우 민감하고 신경질적인 대응을 해온 것이 정부의 자세였다.
정부가 제한된 공간에서나마 통일문제에 대한 자유로운 발언과 토론을 허용키로 한 것은 위축된 통일논의를 활성화시키고 국민 각계각층의 의견을 타진하고 수렴할 수 있다는 점에서 전향적인 조치로 평가할 만하다.
그러나 현 법체제아래서 이 대화의 광장은 실현성이 희박하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나마 이 계획이 실효를 거두려면 통일광장을 이용하는 사람이나 운영하는 측에서 몇가지 질서와 원칙을 지켜야 할 것이다.
우선 운영하는 측은 자기들이 선호하는 방향으로 여론을 유도하려는 어떤 기도도 배제해야 할 것이다. 예컨대 비록 북한의 통일방안을 지지ㆍ찬양하는 주제발표가 이곳에서 나오더라도 인내심을 갖고 이를 경청하겠다는 자세를 기본적으로 가져야 한다.
이에대한 반론의 제기도 운영자측에서 의도적으로 내세울 것이 아니라 청중(국민) 스스로부터 나오도록 해야 한다. 그래야 자유스런 토론의 광장으로 면모나 기능을 갖추게 될 것이다.
이런 기능이 활성화될 때 누구나 가장 우려하는 것이 무슨 함정이 있지 않나 하는 것이다. 북한에 동조하거나 지지하는 발언을 했을 때 이를 「불온사상」으로 보고 그 사람의 성향을 불온분자로 단정하여 처벌의 대상으로 삼거나 성분파악의 기회로 이용할지 모른다는 우려가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현행 국가보안법은 분명히 이들을 처벌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실정법과의 마찰을 어떻게 처리하겠다는 분명한 태도표명이 통일광장 운영에 앞서 있어야 할 것이다.
통일광장을 활용하는 쪽도 지켜야 할 규법이 있다. 이곳을 특정 조직이나 주장의 강변ㆍ선동장으로 이용할 생각을 해서는 안된다. 남의 의견을 존중하고 경청하는 자세가 갖춰져야 한다. 내가 의견을 제시했으면 이에대한 반론을 존중하고,그리하여 자신의 주장에 대한 반성과 수정의 기회를 갖도록 하는 겸손한 자세가 필요하다. 토론이란 설득과 이해에 의해 이뤄지는 것이다. 강변과 고집으로는 충돌과 불화만 있을 뿐이다.
통일광장이 이성적인 토론의 장으로 잘 운영돼 국민의 통일에 대한 의견의 수렴과 합의를 도출하는 데 기여하기를 기대해본다. 이 단계가 순조롭게 극복되면 언론이나 출판등 광범위한 매체를 통한 통일논의도 활성화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해 주게 될 것이다. 통일추진작업의 창구를 정부로 단일화 한다는것은 국민의 의견이 감춤없이 개진되고 반영되는 것을 전제로 한다는 것을 명심해야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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