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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딩 길흉 가르는 八宅家相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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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미스트

▶청계천 남쪽에 위치한 한화그룹 빌딩 옥상에서 내려다 본 전경. 조망으로 따져 이만한 자리를 시내에서 발견하기 어렵다. 남산이 뒤를 받쳐줘 손색이 없다. 전체적인 모양을 보면 마치 한 마리 새가 북쪽을 향해 목을 길게 빼고 날아가는 모습이다.

사람은 누구나 좋은 집에 살기를 원하고 좋은 건물에서 일하기를 바란다. 특히 한국처럼 부동산이 재산증식의 주요한 수단으로 작용하는 경우에는 더욱더 건물에 대한 집착이 강하다. 그래서 경제적 여유만 있다면 개인이나 기업이나 좋은 땅에, 좋은 집을 짓기를 바란다.

여기서 ‘좋은 땅, 좋은 집’이란 어떤 기준을 두고 말하는가. 건물이 들어서기 위해서는 먼저 대지가 있어야 한다. 대지가 어디에 위치하는가는 중요하다. 대지의 위치에 따라 기를 받는 역량이 다르기 때문이다.
다음은 가상(家相)이다.

문자 그대로 가상은 사람의 관상을 보듯이 건물의 모양새를 살핀다. 외양에 특이한 점이 있는가, 또는 건물 전체가 균형을 취하고 있는가 등을 살핀다. 그 다음 한 단계 더 깊이 들어가면 건물의 출입문과 사무실의 방향 등을 따지는 이른바 팔택가상법(八宅家相法)을 적용해 길흉을 판단한다.

이 지면에서는 이런 기준을 내부 준거로 해 해당 건물의 종합적인 인상 비평을 가하고자 한다.

대지가 지닌 특성에 따라 서울의 건축물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강북과 강남, 그리고 여의도 일대가 그것이다. 강북은 다시 청계천과 남산을 축으로 북촌과 남촌, 용산 지구로 나눌 수 있다.

강남과 강북은 당연히 한강을 기준으로 구분된다. 강북과 강남을 비교하면 강북은 ‘서울을 옮겨야 한다’는 현정부의 정책이 일부 실현되고 있듯이 한 나라의 수도로서 지닌 기능이 쇠퇴기에 들어간 곳이다.

이에 비해 강남은 서울의 주변으로 과거에는 그 힘을 발휘하지 못했지만, 지금은 한반도 전체의 강한 기운이 남으로 이동하면서 상업적 기능과 국제성이 강하게 발휘되는 곳이다. 그런 점에서 대부분 기업이 지기의 부름(?)을 받고 강남으로 기업의 본부 건물을 옮기고 있다.

여의도는 한강의 물이 빠져나가는 곳에 자리하고 있다. 한강을 통해 흐르는 서울(강남·강북)의 지기를 조절해 주는 역할을 맡은 곳이다. 섬이란 말은 풍수용어로 수중용(水中龍)이다. 물은 재물을 뜻한다. 재물 속에 노는 땅이 여의도다. 이런 사전 이해를 가지고 지역별 건물들을 살펴보자.

현대 계동 사옥 터는 인재 키우는 곳

청계천을 경계로 북쪽에 있는 마을이 북촌이다. 청와대를 비롯해 각종 정부기관과 역사가 오래된 기업들의 본사 건물이 자리하고 있다.

북촌의 지리적 특성은 대지가 청계천과 남산을 향해 남쪽으로 열려 있다는 점이다. 전통적으로 상업보다는 공공기관과 사대부, 곧 관료들의 집단거주지와 이들을 양성하던 학교 등이 어울리는 곳이다.

▶을지로 2가 SK그룹 사옥. 그룹의 첫 글자를 상징하는 S형 건물을 지어 화제를 낳았다. 1급 명당이지만 건물 자체가 지기의 흐름과는 반대로 앉았고, 정면에서 보면 앞으로 고개를 숙여 길 건너편 건물을 품에 안는 듯한 모습이다. 우리나라는 물론 외국에서도 보기 드문 외형이다.

풍수로 본 기업빌딩相·강북편(상)…기운 사그라져가던 강북 청계천 복원 發福

▶용산의 국제센터 빌딩. 미묘한 스카이라인으로 인해 그 모양이 마치 실타래처럼 보인다. 이 빌딩에서 남산을 보면 누에로 보인다. 그 결과 이 빌딩은 한 마리 누에가 실을 뽑기 위해 만들어 놓은 꼬치에 해당한다. 그런 점에서 한때 한일합섬과 인연을 맺은 것도 우연이 아니라고 볼 수 있다.

▶청계천 남쪽에 위치한 예금보험공사 빌딩. 원래 동아그룹 소유 사옥이었다. 이 빌딩은 건축 당시 존재했던 복개된 청계천의 도로에 건물을 내붙임으로써 마당의 앞뒤가 바뀌었다. 뒷마당이 앞마당 구실을 맡게 됐다. 이런 경우는 거래의 투명성이 줄어들고 음성적인 담합이 주류를 이루게 된다. 동아그룹에서 예금보험공사로 소유가 넘어간 것도 이런 연유가 아니었을까.

▶청계천과 을지로 사이에 위치한 두산타워. 동대문 운동장이나 동대문인 흥인지문의 옹성은 서울 사대문 안의 지기를 지키기 위해 마련한 비보책의 일환이다. 그런 자리에 유통업의 대가가 둥지를 튼 것은 서울의 지기를 위해 매우 다행한 일이다.

▶사대문 밖 남산 아래 위치한 대우빌딩. 이 빌딩의 터는 물의 흐름이나 주위를 감싸고 있는 산들로 인해 초기에는 좋은 결과를 얻지만, 세월이 지나면 터로 내려오는 지맥의 살성(殺性)과 백호 쪽 서울역 고가도로 등이 관재·구설·불화 등 험한 일을 불러오게 한다.

▶서울 시청에서 남대문으로 이어지는 태평로 2가에 자리하고 있는 삼성그룹 본관. 대지는 기업체나 상가의 위치로는 합법한 곳이고, 모양은 전체적으로 사각형을 유지하고 있어 보기 좋다. 그런데 삼성은 자동차사업에 진출할 즈음 본관 건물 기단 정면(태평로 쪽 앞면)을 현재의 모습으로 개조했다. 기존 건물의 기단에 변화를 주었다는 점은 두고두고 생각할 숙제를 안겨주고 있다.

▶영풍빌딩. 청계천 부활과 함께 그 가치가 더 올라갔다. 남산에서 내려오는 물이 건물 앞에 모여들고 있어 맞은편 구 조흥은행 본점 건물보다는 터가 뛰어난 곳이다. 여기에다 물가에 위치해 혹 있을지 모르는 지기의 누설을 막기 위해 지하에 서점을 두어 많은 사람을 불러들이고 있다.

▶현대그룹 계동 사옥. 고 정주영 회장이 욱일승천하던 현대그룹 시절에 백년대계를 가지고 건설한 건물이다. 그러나 그룹본부가 광화문에서 이곳으로 온 후 현대는 적지 않은 시련을 겪었고 인패까지 당했다. 현재 현대그룹 본부는 종로구 적선동 현대상선 사옥에 있다.

▶북촌에서 주목을 끄는 종로구 연지동에 위치한 삼양사 건물. 서울 사대문 안에서 가장 완벽한 건축물이다. 3층에서 달아낸 앞 부분은 삼재구족(三才具足, 천·지·인 삼재를 갖춤), 발전의 의미를 담고 있다.

현재 북촌에서 가장 관심을 모은 건물이 현대그룹의 계동 사옥이다. ‘불세출’의 기업인인 고 정주영 회장이 욱일승천하던 현대그룹 시절에 백년대계를 가지고 건설한 건물이다. 그러나 그룹본부가 광화문에서 이곳으로 온 후 현대는 적지 않은 시련을 겪었고 인패까지 당했다.

한마디로 계동은 사업보다는 휘문학교 터가 말해 주듯이 인재를 키우는 곳이다. 정주영 회장이 대통령 후보까지 출마한 것은 계동과 인접한 창덕궁의 지기를 혼동한 점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싶다. 창덕궁이 지닌 조선왕조 건국의 지기와는 시냇물 하나 건너에 있는 곳이 바로 계동이다. 계동 사옥은 전체 대지가 남향을 취하고 있는 데 반해 기가 들고 나는 출입구의 방향이 대지의 기와 달라 문제가 되고 있다.

본관과 별관을 각각 별개의 건물로 보면, 대지의 남쪽에 위치한 본관의 주 출입문은 남쪽으로 나야 하고 별관은 동쪽에 위치하고 있어 주 출입문 역시 동쪽으로 나는 것이 원칙이다.

그러나 현재 전체 대지에서 볼 때 주 출입문은 남서쪽에 있다. 이는 음양의 조화 면에서나 기의 출입 면에서 상당한 어려움이 있어 혼란을 가져다줄 가능성이 매우 크다.

현대 빌딩에서 또 하나 문제는 본관이나 별관 모두, 쉽게 말해 나침반의 남북과 동서를 가리키는 선상에 건물의 중심을 두고 있다는 점이다. 고대 왕궁 건물(경복궁 등)의 경우 남향을 취하면서도 그 방위가 정남에서 15도 정도 좌우로 피하고 있는 점은 이 경우에 좋은 교훈이 된다.

정남·북과 정동·서의 방위선은 기의 유동이 가장 심한 곳이다. 기의 요동을 정주영 회장의 생전에는 누를 수 있었지만 2세에 오면서 그만한 힘을 지닌 인물이 있는가는 매우 회의적이다.

북촌에서 역시 주목을 끄는 건물이 삼양사 본사 건물이다. 종로구 연지동 삼양사 건물은 결론부터 말하자면 서울 사대문 안에서 가장 완벽한 건축물이다. 빌딩을 갖고 싶은 사업가는 꼭 한번 이 건물을 구경하고 자신의 건물을 지으라고 권하고 싶다.

대지는 서울의 중심 기가 흐르는 사대문 안에 있다. 가상은 매우 재미있는 구조를 지니고 있다. 본채에서 남쪽으로 3층의 건물을 달아내 건물 전체 모습이 한자 정자(丁字)를 구현하고 있다. 바로 이 점이 흥미롭다는 것이다. 천간(天干) 정(丁)은 풍수에서 자손의 창성을 상징한다. 기업의 측면에서 보면 이는 사원들의 안녕과 발전을 뜻한다. 이런 점을 고려한 설계라고 해석된다.

건물의 높이에서 이 사옥은 교과서의 전형이다. 11층은 사대문 안에서 올라갈 수 있는 최적의 높이다. 광화문에 있는 문화관광부 건물과 미 대사관 건물이 8층임을 고려하면 이보다 동쪽에 있는 연지동은 11층까지 올릴 수 있다.

층수에서 11은 그 자체로 음양(陰陽)의 배합(配合)이 이뤄지고 있다. 11(10+1)에서 10은 완성을 의미하고 1은 출발을 상징한다. 여기에다 3층에서 달아낸 앞부분은 삼재구족(三才具足: 천·지·인 삼재를 갖춤), 발전의 의미를 역시 담고 있다.

본관과 대문의 방위를 살펴 보면, 본관이 남향이므로 본채는 북쪽에 둥지를 튼 것이고 문은 동쪽으로 나 있다. 이런 구조를 두고 천을택(天乙宅)이라고 부른다. 사람과 재물을 우선하는 구조다.

SK·영풍빌딩 등 청계천복원 수혜주

강북을 남촌과 북촌으로 나누는 청계천은 이제 과거의 틀을 벗고 우리 앞에 새로운 모습으로 다가오고 있다. 사그라지던 강북의 상권을 부활시킨 것은 순전히 청계천의 공로라고 보아야 한다. 풍수에서도 좋은 기를 판단하는 기준으로 물의 청탁을 분별한다. 썩은 물보다 맑은 물이 뛰어나게 좋다. 조선왕조가 그토록 청계천을 맑게 하기 위해 준설에 정성을 들인 것도 환경 차원보다는 풍수적 기를 북돋우기 위한 것이었다.

청계천 양쪽에 자리한 건물로 SK빌딩과 예금보험공사, 한화빌딩, 두산타워, 영풍빌딩 등을 들 수 있다.

SK빌딩은 종로구 서린동에 위치해 엄밀하게 보면 북촌에 해당하는 건물이다. 종로 쪽 대로와 마주하고 있어 마치 북향 건물처럼 보이지만 청계천 쪽에 주 출입문이 있어 남향 건물이다.

터는 북악산의 기운이 청계천과 만나고 있어 혹자는 ‘신령스러운 거북이가 물을 먹는 명당’으로 평가하기도 한다. 이를 반영하듯 건물의 네 귀퉁이에 거북이 발과 건물 중심에 머리, 뒤쪽에 꼬리 형상의 석물을 각각 배치해 마치 건물 전체를 거북이가 받치고 있는 형상을 취하고 있다.

SK빌딩과 함께 비슷한 위치에서 주목받는 것이 영풍빌딩이다. 영풍문고로 더 잘 알려진 이 빌딩 역시 청계천의 부활과 함께 그 가치가 더욱 올라갔다. 서울의 종로 중심 상가에 자리한 것을 알리듯이 건물의 외벽은 화려한 자주색을 취하고 있어 영풍그룹의 모기업 업종과도 인연을 맺고 있다.

남산에서 내려오는 물이 건물 앞에 모여들고 있어 맞은편 구 조흥은행 본점 건물보다는 터가 뛰어난 곳이다. 여기에다 물가에 위치해 혹 있을지 모르는 지기의 누설을 막기 위해 지하에 서점을 두어 많은 사람을 불러들이고 있다.

청계천 남쪽 중구 다동에 위치한 예금보험공사 빌딩은 동아그룹의 사옥이었다. 나는 지금도 서울 강북에서 가장 아름다운 빌딩을 꼽으라면 서슴없이 이 빌딩을 추천한다. 동양과 서양의 건축미를 한 몸에 지닌 이 빌딩은 외관상 흠잡을 곳 하나 없는 서울의 명물이다.

1993년 4월 준공된 이 건물은 마치 빌딩 경연대회에 나가기 위해 이제 막 단장을 한 깨끗하고 날렵한 맵시를 항상 뽐내고 있다.

다동 일대의 물의 흐름과 지세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거북의 모양을 이룬다. 그래서 예부터 전쟁 중에도 재해를 입거나 파괴, 화재 등이 일어나지 않았다고 전해 온다.

예금보험공사 빌딩은 바로 이런 터에 북향으로 앉아 있다. 건물의 향이 북향이니 북악산 줄기에서 나오는 크고 작은 물들이 모두 조래수(朝來水: 앞에서 흘러 들어오는 물)가 되어 재물과의 인연을 더욱 깊게 해 준다.

이 빌딩은 건축 당시 존재했던 복개된 청계천의 도로에 건물을 내붙임으로써 마당의 앞뒤가 바뀌었다. 뒷마당이 앞마당 구실을 맡게 됐다. 이런 경우는 거래의 투명성이 줄어들고 음성적인 담합이 주류를 이루게 된다. 동아그룹에서 예금보험공사로 소유가 넘어간 것도 이런 지기와 인연이 깊다.

가상(家相)은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평범한 사람의 눈에는 매우 아름답다. 그 아름다움은 이 건물이 위로 올라갈수록 첨탑의 모양을 하고 있는 점에서도 두드러진다. 이런 모양을 팔괘의 태괘(兌卦)라 한다. 태(兌)는 여성을 뜻한다. 그런 점에서 이 건물은 ‘물가(청계천)에 앉아 있는 미인’에 비유된다.

한화그룹의 본부 건물이 청계천 남쪽 장교동 1번지에 있다. 지하 4층, 지상 28층의 한화빌딩은 이 일대가 재개발되면서 장교(長橋)빌딩(쁘렝땅백화점), 중소기업은행 본점과 어울려 하나의 벨트를 형성한다. 이 빌딩 28층에 올라가면 서울 사대문 안이 한눈에 들어온다. 조망으로 따져 이만한 자리를 시내에서 발견하기 어렵다는 것을 첫눈에 느낄 수 있다.

이 터에서 보면 주산인 남산은 뒤를 받쳐 주는 산으로서 손색이 없다. 또 전체적인 모양을 보면 마치 한 마리 새가 북쪽을 향해 목을 길게 빼고 날아가는 모습이다. 터는 이 새의 목 부분에 해당한다. 안산(案山)은 북악산과 매봉(성균관대 뒷산) 사이의 능선이 맡고 있다. 안산이 이 터를 향해 정을 주고 있어 매우 좋다.

한화빌딩은 북향 건물이다. 이는 북향한 대지의 성격과 같다. 건물의 전면과 폭의 비율은 3대2로 가장 이상적인 비율이다. 그러나 서북쪽과 동남쪽에 모서리 5개씩을 접어 넣은 것은 오행의 기가 서로 충돌함을 보여 주는 것이어서 문제가 있다. 이는 회사 임원 간에 분란이 있을 수 있음을 뜻한다.

아무튼 외형으로 나타난 한화빌딩은 정문 왼편에 서 있는 ‘약용비붕(躍龍飛鵬)’이란 전각 비문의 의지를 상당 부분 수용한 셈이라 하겠다.

동대문 운동장 앞에 있는 두산그룹의 본부 두산타워는 청계천과 을지로 사이에 위치해 남촌에 가깝지만 편의상 청계천으로 분류했다. 알려진 대로 동대문 운동장이나 동대문인 흥인지문의 옹성은 서울 사대문 안의 지기를 지키기 위해 마련한 비보책의 일환이다.

그런 자리에 유통업의 대가가 둥지를 튼 것은 서울의 지기를 위해 매우 다행한 일이다. 역동적인 건물의 모습과 자연친화적인 내부 공간 구성은 두산그룹의 미래를 보장하고 있다. 동대문의 ‘랜드마크’로서의 기능은 물론 동대문 상가를 리드하는 파일럿 역할도 건물의 외형에서 강하게 읽을 수 있다.

‘이상하다’ 느낌들면 실패한 건물

‘남산골 샌님’이란 말이 있다. 이들은 곧 죽어도 큰소리치고 굶어 죽는 한이 있어도 비굴한 삶은 살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남산 밑에 사는 선비들을 두고 이런 말이 생긴 까닭은 어디서 비롯됐을까.

이를 풍수적으로 풀면 이렇다. 남산은 경복궁 터나 북촌마을에서 보면 안산이다. 북촌이 주인이라면 남산은 손님이다. 같은 논리로 남산 쪽에서 보면 북쪽 마을이 안산이 되어 주객이 바뀐다. 비록 임금이 살고 높은 벼슬아치들이 북촌에 있을망정 땅으로 보면 ‘나의 손님’에 해당하는 셈이다. 바로 여기서 올곧은 기개가 나온다. 그런 연유로 예부터 남산 밑에서는 유능한 인재와 성깔 있는 상인이 많이 나왔다.

SK그룹은 최근 을지로 2가 남촌마을에 그룹의 첫 글자를 상징하는 S형 건물을 지어 화제를 낳았다. 먼저 이 건물의 대지는 남촌 일대가 그러하듯 1급 명당에 속한다. 이런 터와는 달리 건물은 결론적으로 말해 그리 바람직하지 않다.

건물 자체가 지기의 흐름과는 반대로 앉았고 정면에서 보면 앞으로 고개를 숙여 길 건너편 건물을 품에 안는 듯한 모습이다. 우리나라는 물론 외국에서도 보기 드문 외형이다. 지나는 사람들에게 “저 건물에 대한 인상이 어떠냐?”고 물으면 십중팔구는 “이상하다”고 답한다. 아무리 개성시대라고 하지만 사람들에게 ‘이상하다’는 인상을 주면 그 건물은 성공한 작품이라고 보기 어렵다.

건물은 단독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주변의 건물과 하나의 숲, 하나의 스카이라인을 형성한다. 허리를 굽히고 있는 이 건물은 자신보다는 앞에 있는 건물에 도움을 준다. 그런가 하면 뒤에서 이 건물을 보는 사람들에게는 항상 남의 등을 보고 있어 경계심을 갖게 한다.

다른 한편 이 빌딩은 왼쪽에 자신을 향해 날카로운 칼날을 들이대는 건물(중소기업은행 본점)을 두고 있다. 옆 건물의 칼날처럼 생긴 예각이 살풍을 일으켜 이 빌딩의 중심에 닿게 된다. 이를 어찌 막을 것인가.
삼성그룹 본관 건물은 서울시청에서 남대문으로 이어지는 태평로 2가에 자리하고 있다. 지하 4층, 지상 26층인 삼성본관 건물은 74년 8월 착공, 76년 4월 준공됐다. 대지는 기업체나 상가의 위치로는 합법한 곳이고 모양은 전체적으로 사각형을 유지하고 있어 매우 좋다.

건물은 원래 지상 1, 2층이 석탑의 기단처럼 되어 있었고 그 위에 24층이 올라가 있었다. 기단 부분이 오행의 토(土)라면 윗부분은 목(木)에 해당한다. 흙에 뿌리를 내리고 서 있는 거목의 모습이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삼성그룹이 자동차사업에 진출할 즈음 본관 건물 기단 정면(태평로 쪽 앞면)을 현재의 모습으로 개조했다. 새로 만들어진 정면 유리커튼은 첨단 디지털시대의 정신을 구현하고 있는 듯 보이지만 다른 해석도 가능하다. 기존 건물의 기단에 변화를 주었다는 점은 두고두고 생각할 숙제를 안겨 주고 있다.

한진그룹 건물은 한진빌딩 본관(명동 쪽 대로변)과 신관(소공동 쪽)으로 구성돼 있다. 두 건물이 각각 별개의 위치에 앉아 있지만 기능적으로 연결돼 있어 안에 들어가면 하나의 건물로 느끼게 된다. 이는 현대그룹의 계동 사옥과는 좋은 대조를 이룬다.

터를 살펴보면 남쪽의 남산이 높은 데 반해 북쪽 을지로 쪽이 낮아 흠으로 볼 수도 있다. 그러나 본관 건물이 위치한 대지의 뒤 북쪽, 조선호텔 쪽이 높고 또 그 능선이 동쪽으로 안고 돌아가고 있어 흠을 반감시키고 있다. 기업의 오피스 터로는 1급지다. 대지의 모양도 요철이 없고 기울어진 곳이 없어 합법하다.

건물에 대한 평가도 좋은 대지에 좋은 건물이라고 미리 말할 수 있다. 우선 외양 부분을 보아도 전체적으로 2대 1의 비율을 보여 준다. 다소 약한 듯한 인상을 지니고 있지만 건물의 방정함이 이를 커버하고 있다. 도로와의 관계도 남대문로와 소공로가 주위를 감싸 전체적으로 별문제가 없지만 구 상업은행 본점 사이의 작은 길이 균형을 깨고 있다. 질적인 측면에서 보면 다소 떨어진다.

건물 앞뒤 혼동되면 애사심 흐릿

용산 일대의 미군기지 반환을 앞두고 용산의 풍수적(?) 성격이 최근 들어 재조명받았다. 왜 서울의 다른 지역이 아닌 용산 일대에 외국군이 주둔하게 되었을까. 이는 용산이 서울의 안산인 남산 밖에 있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안산인 남산은 서울의 사대문 안에서 보면 손님에 해당한다. 당연히 손님은 문 밖에 모시는(?) 것이 예의다. 더구나 외국 군대일 경우에는 더욱 그러하다.

이런 점에서 용산 일대 땅의 성격이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그러나 서울의 외연이 넓어지고 기의 중심이 남쪽으로 이동하면서 사대문 안 중심론은 이제 한물간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

사대문 밖, 남산 아래 첫째 꼽히는 빌딩이 대우센터다. 76년 건립된 이 건물은 지하 2층, 지상 23층, 총건평 4만여 평으로 서울 시내에서는 거대 건물에 속한다.

이 빌딩의 터는 물의 흐름이나 주위를 감싸고 있는 산들로 인해 초기에는 좋은 결과를 얻지만, 세월이 지나면 터로 내려오는 지맥의 살성(殺性)과 백호 쪽 서울역 고가도로 등이 관재·구설· 불화 등 험한 일을 불러오게 된다.

가상(家相)은 전면과 폭의 비율이 3대1로 약간 빈상(貧相)에 가깝지만 3층까지 본체를 받쳐 주는 기단을 두고 있어 이를 충분히 커버하는 셈이다.

또 하나 이 빌딩에서 재미있는(?) 모습은 뒷산과 연결한 6층까지의 보조대다. 이는 뒷산 바위 절벽이 지닌 험한 기를 감소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다. 또 용의 기운이 들어오는 남산 쪽으로 주차장과 자동차용 회랑을 만든 것 역시 살기를 제압하는 효과가 있다. 그러나 보다 자세히 보면 이 회랑이 자칫 건물의 목을 조르는 역할을 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있다.

건물 외양에서 또 하나 지적할 것은 앞면의 유리창이 50개의 공간으로 분할돼 있는 점이다. 특별한 의미를 처음부터 둔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이 수는 주역에서 태연수(太衍數)라고 하는 ‘완성, 완료’의 의미를 띤 숫자다. 따라서 모험과 새로운 사업을 항상 창출해야 하는 기업의 입장에서는 이미 ‘일이 끝났다’는 의미의 이 숫자보다는 한 칸 적은 49를 택하는 것이 좋았다.

결론적으로 대우센터 빌딩은 ‘고객 또는 보이지 않는 손의 도움’으로 현상유지가 가능한 건물이다.

대우센터빌딩에서 국제센터 빌딩으로 가다 보면 전쟁박물관 못 미쳐 발사를 기다리는 우주선처럼 생긴 빌딩이 있다. 해태그룹이 짓고 그룹본부 빌딩으로 사용했던 건물이다.

대지는 사대문 밖에서는 보기 드문 1급지다. 이곳에서 남산을 보면 그 모양이 누에 머리인 잠두가 아니라 궁궐의 용마루처럼 보인다. 재물과 인연이 있음을 보여 준다. 터 안에 흐르는 물을 보면 오른쪽 물들은 남영동 우체국 앞을 지나 서대문에서 내려오는 만초천과 만나고 이 물은 다시 왼쪽 전쟁기념관에서 나오는 물과 삼각지 근처에서 만나 한강으로 들어간다. 기의 누설이 거의 없다.

건물의 외양은 앞서 말한 것처럼 동쪽과 서쪽 2개의 발사대에서 우주로 날아가는 우주선의 모습이다. 우주선의 중심축은 원형이고 그 양쪽으로 삼각형의 날개를 달고 있다. 주 출입문이 있는 남쪽에서 보면 건물은 크고 작은 3개의 상자를 차례로 쌓아놓은 것처럼 보인다.

동양철학에서 직육면체는 방(方)으로 대지를 상징하고 원은 하늘, 삼각형은 사람이다. 외형의 원·방·각은 곧 천·지·인 삼재를 구현한 것이다. 창조성이 뛰어난 건물이다. 이처럼 좋은 건물과 터를 너무 늦게 마련한 것이 해태그룹으로서는 매우 안타까운 일이었다.

용산 일대에서 눈에 가장 잘 띄는 건물이 국제빌딩이다. 이 일대에서 ‘랜드마크’ 역할을 맡고 있다. 남산에서 한강에 이르는 용산 일대가 낮은 구릉으로 평야를 이루고 있는 점도 이 빌딩의 존재를 부각시키지만, 다른 한편 그 독특한 모양새로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그런가 하면 이 빌딩은 5공 초기 권력에 의해 국제그룹이 해체되면서 주인을 바꿔 더욱 유명세를 얻기도 했었다.

이 빌딩은 국제그룹이 82년 1월 새 사옥으로 착공, 84년 10월 준공과 함께 그룹의 관계사들이 입주했다. 85년 3월 국제그룹이 해체되면서 종합무역상사인 국제상사와 함께 빌딩은 한일그룹으로 넘어갔다가 최근 다시 국제그룹이 운영권을 회복해 관리하고 있다.

국제센터는 건축공법상 두 가지 특징을 지니고 있다. 하나는 에너지 절약을 위해 대형 건물임에도 태양열 집열판과 특수보온 유리를 사용했고 다른 하나는 외형을 흔한 박스형에서 탈피하기 위해 건물의 스카이라인을 각 면에 따라 달리한 것이다. 건물의 독특한 모양은 이 의도적인 스카이라인의 변화에서 온 것이다.

빌딩의 터는 물건을 모으는 집산지의 기능은 있지만 재물을 오래 모아두는 곳은 아니다. 이런 단점을 극복하기 위해 국제센터 빌딩은 대지의 흐름과는 달리 건물의 정면을 바꿔놓았다. 대지의 모양은 삼각형을 낀 마름모형이다. 삼각형 부분에 반원형 부속건물을 지어 터가 지닌 살기를 제거하고 있지만, 전체적으로 보아 안정감이 부족하다.

가상(家相)은 다면형(多面形)이다. 건물의 정면에서 보면 하체가 넓고 위로 올라가면서 체감 비율이 면마다 각각 달라 매우 둔중하면서 뒤뚱거리는 인상을 주고 있다. 그런가 하면 동쪽과 서쪽은 건물 중앙이 삼각형 내각을 이뤄 기하학적 안정감의 시도에도 불구하고 이곳으로 강한 바람을 맞이하게 된다. 인체에 비유하자면 늑골 부분을 압박하는 형세다.

또 정면의 동쪽 부분은 일자형을 이루지만 서쪽이 앞으로 튀어나와 전체적으로 한쪽이 짧은 V자를 이루고 있다. 그런가 하면 건물의 뒤쪽은 정면과는 달리 전체가 일자형을 이뤄 앞과는 다른 모습이다. 자칫 앞과 뒤를 혼동, 어느 쪽이 앞인가를 가늠하기 어렵다.

이런 건물에 상주하게 되면 애사심이 떨어진다. 또 누가 충복이고 누가 아첨자인가를 가리기도 어렵다. 내부 단속을 게을리하지 말아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위계질서도 당연히 문제가 된다. 나아가 보다 심하게 지적하자면 누가 건물의 주인인가도 가리기 어려워진다.

국제센터 빌딩은 미묘한 스카이라인으로 인해 그 모양이 마치 실타래처럼 보인다. 이 빌딩에서 남산을 보면 누에로 보인다. 그 결과 이 빌딩은 한 마리 누에가 실을 뽑기 위해 만들어 놓은 꼬치에 해당한다. 그런 점에서 한때 한일합섬과 인연을 맺은 것도 우연이 아니라고 하겠다. (다음 호에 여의도·강남편 계속)

최영주 언론인·풍수지리연구가 (sinmun03@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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