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앵커 쿠릭의 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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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릭 효과(Couric effect)'가 미국 방송계를 흔들고 있다. 쿠릭은 미국 공중파 저녁 메인뉴스에서 여성으론 첫 단독 앵커를 맡은 케이티 쿠릭(49)을 말한다. 그는 5일 CBS의 이브닝 뉴스(오후 6시~6시30분)를 처음 맡아 1360만 명의 눈과 귀를 붙잡았다. 시청자가 갑자기 거의 두 배로 폭증한 것이다. 지난주 미국 TV에서 최다 시청자를 모은 것이 범죄수사극 'CSI 마이애미'의 1100만 명이었던 사실을 감안하면 얼마나 대단한 시청률인지 알 수 있다. 올 4월 경쟁사인 NBC에서 스카우트돼 온 그가 CBS 데뷔 첫날 대박을 터뜨린 것이다.

시청률 조사회사인 닐슨미디어리서치 발표에 따르면 이날 NBC 저녁뉴스 시청자는 780만 명, ABC는 760만 명이었다. 이들 3대 지상파 방송 가운데 CBS는 10년 이상 꼴찌를 면치 못해 왔다. NBC가 부동의 1위였으며, 그 다음은 ABC였다.

그는 CBS와 5년간 한 해 1500만 달러(약 145억원)씩 받기로 계약했는데, 출발점에서 월급 값을 충분히 해낼 것임을 예고한 것이다. 쿠릭의 부상은 20년 이상 '장기 집권'했던 3대 방송의 명앵커(NBC의 톰 브로코, ABC의 피터 제닝스, CBS의 댄 래더)가 최근 1~2년 새 모두 떠난 것이 기회가 되기도 했다. CBS는 쿠릭을 띄우기 위해 최근 약 1000만 달러를 홍보비로 뿌리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 시작이라 속단하기 이르다는 지적도 있다. 쿠릭이 1960~70년대의 전설적 앵커 월터 크롱카이트처럼 CBS를 부활시킬 수 있을지 주목된다.

◆ 쿠릭식 뉴스 진행=그는 5일 크롱카이트의 소개를 받아 마이크를 잡고 "여러분과 함께할 수 있어 매우 기쁘다"고 인사한 뒤 바로 아프가니스탄 특파원의 현지 분석 리포트를 전했다. 워싱턴 포스트(WP)는 "쿠릭의 진행 방식은 뉴스 쇼라기보다 매거진 쇼에 가까웠다"고 평했다. 대부분의 방송 뉴스는 그날 일어난 일을 중심으로 진행되지만 쿠릭은 잡지식으로 깊이 있는 뉴스를 전달했다는 것이다. 특유의 푸근함으로 인기 배우 톰 크루즈의 딸 수리 사진을 보여주며 시청자에게 다가가기도 했다. 6일에는 조지 W 부시 대통령 인터뷰를 들고 시청자를 만났다. 이날 시청자는 1010만 명으로 줄었지만 ABC(710만 명)와 NBC(700만 명)를 압도했다.

WP는 쿠릭이 뉴스를 단순하게 나열하지 않고 시청자와 대화하듯이 진행했다고 덧붙였다. 미국인들은 그의 섬세함과 친근함에 매료된다고 한다. 옅은 화장과 방송 중 가끔 흘리는 눈물도 그런 면을 말해준다. 뉴스위크는 "그의 장기는 사람들과 환담하며 뉴스를 빼내는 데 있다"며 "앞으로 CBS에는 생방송 인터뷰가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 케이티 쿠릭=버지니아대를 졸업하고 79년 ABC에 입사했다. CNN을 거쳐 89년 NBC로 옮겼으며 91년부터 15년 동안 '투데이 쇼'를 맡아 최고의 아침 프로그램으로 끌어올렸다. 지난주 경제전문지 포브스가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100명 중 언론인으로서는 가장 높은 54위에 올랐다. 몇 년 전 남편을 대장암으로 잃었으며, 자식은 둘이다.

심상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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