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즐겨읽기] 악마는 속삭인다, 꿈같은 사랑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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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아이를 좋아할 것. 스타일리시하고 섹시할 것. 나를 리드해줄 것. 나를 먼저 배려하고 매너가 있을 것. 유머 감각이 있을 것." 남자가 바라는 이상형이다. 그렇다면 여자가 원하는 남성상은? "열린 마음, 문화적 소양이 있는 사람. 잘 생길 것. 내가 좋아하는 것을 같이 좋아해 줄 사람. 새로운 것을 내게 가르쳐줄 수 있는 사람. 부모로부터 완전히 독립적일 것. 끝으로, 매력적인 사람."

이 구절을 읽고 윽, 이거 내 속을 들킨 것 같네? 하는 미혼 남녀라면 이 책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지은이의 표현을 빌자면 위의 조건은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충족시킬 수 없는" 것이다. 그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미혼 남녀들의 마음 속에는 이러한 '악마적 기준'이 도사리고 있어 사랑의 완성을 방해한다고 말한다. "왜 난 번번이 괜찮은 사람을 놓치는 걸까"라는 의문을 갖고 있는 사람들에게 책은 이제 악마적 기준을 내다버리고 연애와 결혼에 대한 사고구조 전반을 대대적으로 리모델링하라고 권유한다.

지은이는 미국의 최고 인기 토크쇼인 '오프라 윈프리쇼'를 지난 8년간 만든 프로듀서 질리안 스트로스. 미혼 여성인 그는 수 차례 만남과 이별을 거듭하면서 "우리가 안정적인 남녀 관계를 추구하는 길은 왜 이리 울퉁불퉁하고 구불구불한지" 궁금해졌다. 해서 오프라 윈프리쇼를 통해 미국 전역에 걸쳐 29~39세 미혼 남녀 100명(주로 전문직)을 인터뷰했다. 그 결과 겉으로 보기에는 너무나 멋지고 자신감 넘치는 매력적인 사람들이 이성과의 관계 맺기에서 애를 먹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지은이는 인터뷰 결과를 토대로 이 시대 남녀 심리나 연애 담론의 혈과 맥을 하나하나 짚어나간다. 미국과의 문화적 차이가 느껴지는 대목이 상당하긴 하지만, 그의 문제의식은 상당히 진지하고 분석은 꽤 피부에 와닿는다. 예컨대 소비문화에 젖은 젊은이들이 선택의 가짓수가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고 생각한 나머지 데이트를 마트에서 장을 보는 것처럼 혹은 결혼을 패키지 여행상품 쯤으로 생각한다든지, 페미니즘 교육의 의도치 않은 결과로 전통적인 이상형과 현대적인 이상형을 한 사람에게 동시에 요구하는 모순이 빚어진다든지 하는 식이다.

결국 결론은 날씬한 몸매를 위해 헬스클럽에서 땀을 흘리듯 사랑도 노력해야 한다는 것, "사랑은 자기희생 없이 저절로 이뤄지지 않는다"는 것, 우리는 로맨틱한 환상으로 잔뜩 부풀려진 이상형이 아니라 '진짜 사람'을 선택해야 하기 때문에 어느 정도 현실과의 '타협'이 필요하다는 것 등으로 모아진다.

"사랑은 결코 당신 생각처럼 쿨하지 않다"는 이러한 결론이 너무 평범한가? 글쎄, 우리가 언제 이런 얘기를 진지하게 해봤던가. 책을 번역한 방송인 배유정씨가 토로했듯 살아가면서 가장 힘든 것들인데 학교에서는 절대 가르쳐주지 않는 것이 연애와 결혼 아니던가. 미혼뿐 아니라 "다 잡은 물고기에 떡밥 주는 것 봤냐"는 말을 서슴지 않는 두 얼굴의 기혼자들에게도 생각의 여지를 안겨주는 책이다.

기선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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