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아우승 선봉장 허재 진통제로 버틴 눈물겨운 투혼|자로 잰 듯한 3점슛 감각 일품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1면

○…고도의 연막전술이었는가, 아니면 눈물겨운 투혼이었는가.
우승이 확정되는 순간 두 손을 높이 치켜든 채 코트를 깡충깡충 뛰돌며 기쁨으로 환호하는 「작은 영웅」의 두 눈망울엔 뜨거운 눈물이 흥건했다. 어려운 여건 속에 거둔 감격의 우승이어서 기쁨은 더없이 컸다. 벼랑에까지 몰렸던 기아산업을 우승의 반석으로 이끈 견인차 허재(허재·25).
『제 생애 이처럼 값진 우승의 감격은 처음입니다. 만신창이가 되고만 팀이 소리 없이 무너지는 꼴을 병상에 누워 지켜볼 수만은 없었어요. 정말 기뻐요….』
허재는 견디기 힘든 통증을 진통제주사(트리돌)로 덜어내며 극복, 코트를 야생마처럼 누비며 마침내 우승을 이끌어 진면목을 유감 없이 과시했다.
그동안 농구에 관한한 천재성을 인정받아온 그가 이번 대회에서는 패기로 각광을 받게 됐다.
89농구대잔치는 허재를 위한 무대였다. 재치 있는 드리블링, 자로 잰 듯 정확한 슈팅솜씨, 폭넓은 게임감각등 농구교과서라 불릴만큼 천부적인 재질을 높게 평가받아오던 그가 이번 대회를 통해 선배 이충희 (이충희·31·현대전자) 김현준(김현준·30·삼성전자) 을 능가하는 최고의 히어로로 떠오르게된 것.
올 시즌 들어 보인 허재의 활약상은 두드러졌다. 올 통산 허는 5백8점을 득점, 「슛 도사」 이충희(4백39점)를 제치고 첫 득점 왕 타이틀을 거머쥐는 기염을 토했다. 특히 허는 챔피언결정전 두게임에서 51득점에 리바운드17개를 잡아내는 놀라운 투혼을 과시, 팀 우승의 일등공신으로 활약했다.
이뿐 아니라 허는 3점슛 76개 (2백28점)로 역시 이 부문 1위에 올랐고 어시스트 2위, 리바운드 5위, 수비 3위에 각각 랭크, 전천후요격기로서의 성가를 다시 한번 입증시켰다.
1m87㎝의 공격형 가드로 부동의 위치를 굳혀온 허는 지난 83년 청소년대표를 거쳐 국가대표로 발탁됐다.
청바지차림에 팝송을 즐겨듣는 하이틴우상으로 88년 기아산업에 입단. 허는 시즌폐막과 때를 같이해 26일 중앙대부속병원에 입원, 치료를 받을 예정. 이에 따라 내달 1∼2일의 올스타전엔 불참한다.

<전종구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