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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U대회, 59명 여대생 '생생' 숙소 탐방기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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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 리허설이 열릴 예정인 대강당 앞에서 만난 이슬기(24.서울시립대 국어국문)씨는 "너무 피곤해서 그래요. 다들 기숙사에서 자고 있을걸요? 일주일 내내 일정이 아주 빡빡했어요"라고 말했다. 학사모.드레스.수영복.응원복 등 각종 의상을 소화하는 예비 심사와 촬영이 전날 오후부터 새벽녘까지 이어졌다.

10㎝ 높이의 하이힐을 신고 휴식 없이 이어진 일정 때문에 기숙사 복도에서는 제대로 걷지 못하는 이들도 종종 눈에 띄었다. 화장기 없는 얼굴이 까칠해 보였다. 박현선(23.국민대 피아노)씨는 "어제 세 시간 동안 화장을 하고 정신없이 의상을 바꿔입으면서 예비 심사를 받았어요. 조별 장기자랑 연습 때문에 쉴 새 없이 수화와 춤 연습도 하고요. 씻고 자려고 보니 새벽 2시가 넘었더라고요"라고 말했다.

숙소인 화합관 3, 4층은 잠에 빠진 참가자들이 대부분이었다 . 매일 새벽 6시에 시작된 강행군이 자정 전후에야 끝난다고 한다. 몇몇 방에선 피곤을 이기며 얘기꽃을 피우던 여대생 무리도 있었다. 이들은 "단 한 시간도 아깝다"며 막바지에 다다른 일정을 아쉬워했다.

왼쪽부터 미스 유니버시티 대회 참가자 이슬기ㆍ우기예ㆍ박현선ㆍ임은지 씨

이번 대회 참가자 중 가장 나이가 많은 왕언니 변지원(26.중앙대 아동복지학)씨는 "여러 나라 언어를 자유롭게 구사하고, 말솜씨도 아나운서 못지 않은데다 외모도 출중한 동생들이 이렇게 많을 줄 몰랐어요. 나는 그 때 뭐하면서 지냈나 싶었어요"라며 부러움 반 시샘 반의 출전 소감을 들려줬다. 부지런히 이 방 저 방을 오가며 수다판을 벌이던 마당발 강성은(23.조선대 영어교육학)씨가 "대회 참가자의 남자친구들이 다 스토커로 돌변했어요"라고 말하자 같은 방에 모인 대여섯 명의 여대생들이 "진짜에요. 장난 아니에요"라며 배꼽을 잡는다.

안 그래도 예쁜 여자친구를 미인대회에 내보내놓고 밤 잠을 못 이루는 남자친구들의 속앓이 얘기였다. 한 참가자의 남자친구는 수시로 문자를 보내 '뭐 하냐'며 일정을 관리하는 것도 모자라 시간 마다 전화를 걸어 퇴소를 종용했다는 '고발'도 접수됐다.

미스 유니버스 공식 개그우먼으로 꼽힌 재치만점 장세정(23.단국대 중문학)씨가 "옆 방 어떤 친구의 남자친구는 화내면서 당장 나오라고 그랬대요. 너 뜰까봐 무섭다고"라고 말하자 모두들 웃음을 참지 못했다.

방에는 컵라면·포도·과자 부스러기들이 가득했다. 대회를 앞두고는 후보들이 살 찔까봐 물도 안 마신다는 여느 미인대회에서라면 상상할 수 없는 장면이다.

왼쪽부터 최현영, 강성은ㆍ변지원ㆍ장세정ㆍ이미란 씨

"내일이 본선인데, 그렇게 먹어도 되나요?"라고 묻자 이 발랄한 아가씨들은 "뭐 어때요. 저희는 서로 경쟁자라고 생각 안해요. 미스코리아도 본선만 가면 미스코리아 출신인데, 저희도 어엿한 본선 진출자 아니에요"라며 기숙사가 떠나가라 웃었다. 또 다른 친구는 "합숙하면 스트레스 받는 일도 많은데 못 먹으면 어떻게 해요. 맥주도 마시는데요?"라며 새삼스러울 게 없다는 반응이다.

그래도 입상에 욕심이 나지 않을까. "입상자 3명에게 주어지는 특전이 있을텐데 뽑히고 싶지 않나요"라고 물어봤다. "입상하면 뭐 줘요?"라고 눈을 반짝이며 묻는다. 세계 대회 참가 외에 별다른 특전이 있는지 전혀 몰랐다고 했다. 수 천 만원의 상금이 주어지거나 스타의 등용문으로 알려진 여느 미인대회 숙소에서라면 이런 대화가 오갔을까.

여기가 예쁜 여대생들이 모여 경합하는 곳이 맞나 잠시 헷갈리던 찰나, 이들도 역시 20대의 샘많은 아가씨들임을 들키고 말았다.

합숙이 시작되기 전부터 시작된 네티즌 인기투표에 대한 생각을 물었을 때다. 이들은 "신경안써요"라면서도 "숙소에서 컴퓨터를 쓰지 못하니까 친구들이나 가족들한테 문자로 계속 결과를 받아봐요"라고 털어놓는다. '실시간 문자중계'를 한다는 얘기다.

애써 외면하면서도 누가 많은 표를 얻었는지, 나를 선택한 네티즌이 얼마나 되는지 무척 신경이 쓰이는 눈치였다. 투표 결과 수위에 오른 몇몇 후보에 대해선 뾰루퉁한 반응도 보였다. 학교 게시판에 자신의 출전 소식이 알려져 '전교생 1회 클릭해주기 운동'이 벌어졌다는 한 참가자의 말에는 '부정 투표'라는 질타가 쏟아지기도 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대학 캠퍼스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평범한 모습의 참가자들이 있는가 하면 언뜻 보기에도 연예인 못잖은 미모를 가진 후보들 역시 적지 않음을 알 수 있었다. 이들은 어떤 기준으로 선발된 것일까.

대회 관계자들은 "미스 유니버시티 대회는 여느 미인대회와 차별화된다"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 지성과 봉사 정신, 그리고 대학생다운 순수함을 가장 중요한 선발 기준으로 삼는다는 설명이었다. 참가자들 생각은 갈렸다.

왼쪽부터 정진희ㆍ강유경ㆍ주보라 씨

아동학대를 주제로 논문을 쓰고 있다는 임은지(25.고려대 경영학)씨는 봉사 경력을 평가하는 대회 취지에 공감했다. "여느 미인대회와는 성격이 완전히 다르다고 생각해요. 대부분 후보들이 짧지 않은 봉사경력을 가지고 있고, 이 분야에 관심과 조예를 갖고 있는 친구들도 많아요." 물론 "미스 유니버시티 역시 미인대회라는 점을 부정할 수는 없다"는 현실적인 참가자들도 적잖다.

주보라(21.이화여대 국제학과)씨는 "미스 유니버시티가 단순히 예쁜 사람만 선발하는 대회는 아니지만, 한국을 대표하는 지적이고 아름다운 여대생을 선발하는 미인대회의 하나라고 생각한다"고 당당한 의견을 밝혔다.

인생에서 가장 눈부신 시절을 보내고 있는 59명 여대생들에게 미스 유니버시티 대회는 어떤 의미일까. 10자로 참가 이유를 압축해달라고 요청해봤다. 참가자들의 강추를 받은 한 마디는? "내 생애 최고의 순간이다."

박연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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