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기고] 카메라로 바라본 세상 3. '매직 박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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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1930년대부터 70년대까지 생산됐던 독일제 박스형 카메라 롤라이코드.

"희중아, 이리 와 보거라."

중학교 2학년 여름방학 직전에 아버지가 나를 부르셨다. 잔뜩 긴장하고 아버지 앞에 무릎 꿇고 앉았다. 아버지는 방학 동안에도 자식들의 생활 태도가 흐트러지는 것을 용납하지 않으셨다. 그래서 우리 남매들은 학교 숙제 외에 '아버지 숙제'를 별도로 해야 했다.

아버지 앞에는 카메라가 놓여 있었다. 평소 사용하시던 롤라이코드(Rolleicord)였다. 독일제로 전면에 렌즈가 두 개 달려있는 이안반사식(二眼反射式) 박스형 카메라다. 우리가 손도 대지 못하던 카메라를 왜 꺼내놓으신 걸까?

"이게 뭔지 아느냐?"

내가 그걸 모를 리 없었다. 아버지는 그 카메라로 가족사진을 수시로 찍으셨다. 생일이나 졸업식.명절 때면 우리는 어김없이 그 카메라 앞에서 포즈를 취해야 했다. 아버지는 자연스러운 모습을 기대했지만, 어머니와 우리 남매들은 무서운 아버지 앞에서 '차려!' 자세로 사진을 찍곤 했다. 아버지는 그 카메라를 두고 뭔지 아느냐고 물은 것이다. 나는 "사진을 만드는 기계입니다"라고 대답했다.

"맞다. 하지만 이것은 사진만 만드는 기계가 아니다. 이건 바로 '매직 박스'다. 이것이 무슨 마술을 부리는지 방학 동안에 알아내라."

'아버지 숙제'로 카메라 공부가 떨어진 것이다. 처음엔 긴장했다. 고장이라도 내면 큰일이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하지만 숙제니까 해야만 했다. 우선 친구들을 찍었다. 만지다 보니 재미도 있었다. 다음에는 가족에게 들이댔다. 누나도 찍고 동생도 찍었다. 워낙 많다 보니 가족을 다 모아놓고 찍을 기회는 없었다. 가족 중 유일하게 찍지 못한 사람은 아버지였다. 무서운 아버지에게 모델이 돼 달라고 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하지만 곧 싫증이 났다. 친구들과 가족을 다 찍고 나니 더 이상 찍을 게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동네 골목을 어슬렁거리다가 눈이 번쩍 뜨이는 장면을 봤다. 새댁이 아이에게 젖을 먹이는 모습이었다. 좀 떨어진 곳이었지만 내 눈에는 그 평화스럽고 아름다운 모습이 클로즈업돼 보였다. 카메라를 들었지만 셔터를 누르지는 못했다. 사춘기 소년이 하얀 젖가슴에 렌즈를 들이댈 용기가 없었다.

그 아름다운 정경은 내가 카메라를 통해 사물을 보기 시작한 최초의 모습이었다. 방학이 끝날 무렵 나는 카메라 공부의 결과를 보고 했다.

"카메라를 들고 다니니까 예전에 보지 못했던 것들을 볼 수 있었습니다." 나는 젖을 먹이는 새댁의 모습을 비롯해 카메라 파인더를 통해 새로 발견한 세상의 모습을 이야기했다. 아버지는 "남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았으니 카메라가 바로 마술 상자 아니냐?"라며 껄껄 웃으셨다.

아버지는 사진을 찍는 행위의 의미를 알고 있었던 듯하다. 그 분은 평생 가족사진만 찍었다. 파인더를 통해 보면서 "웃어라" "옆으로 조금 움직여라" 하면서 자식들 하나하나를 세세하게 관찰했다. 그렇게 자식들의 성장 과정을 지켜보면서 아버지는 가족에 대한 사랑을 확인하셨던 것 같다. 카메라 렌즈로 관찰하면 피사체(被寫體)에 관심이 생긴다는 사실을 알고 계셨던 것이다. 그래서 내가 "예전에 보지 못했던 것을 발견했다"고 말씀드렸을 때 아들이 숙제를 제대로 해냈다는 만족감에 호탕하게 웃으신 것일게다.

김희중 (상명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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