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독 수도 이전설 따른 부동산값 명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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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베를린 해뜨는 도시/서독 본 저무는 수도/집세까지도 천정부지 베를린/건물 한달새 40% 폭락 서독 본/3만여 공무원 이사 걱정…수도역할 분담론도 대두
『본이냐,베를린이냐­.』 머지않아 실현될 것으로 보이는 독일통일을 앞두고 통일독일의 수도를 현재의 서독 수도인 본으로 할것인가,아니면 전통적으로 독일의 수도였던 베를린으로 할 것인가를 놓고 독일 국민들 사이에 의견이 분분하다.
그러나 최근 서독의 ZDF­TV가 18세 이상 서독국민 1천6백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79%가 베를린을 수도로 해야한다고 응답한데서 보듯 시간이 지나면서 대세는 베를린쪽으로 기울고 있다.
이를 가장 단적으로 증명하고 있는것이 두도시의 부동산 시세.
베를린의 땅값이나 집세 등 부동산 가격은 그야말로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는데 비해 본의 부동산 가격은 폭락을 거듭하고 있다.
본의 관청가 주변에 있는 한 건물은 지난 1월말 가격이 약 40%나 떨어졌다.
겐셔 외무장관 관저 부근의 주택들도 6개월 전엔 내놓기가 무섭게 매매가 됐으나 이제는 팔리지 않고 있으며 신문에 광고를 내도 문의하는 사람이 없다. 한 부동산 투자 자문회사는 1월중순 『본에는 이제 더이상 투자대상이 없다』고 선언하기도 했다.
통독 얘기가 구체화되자 본 주재 스페인 대사관은 새 관저를 건설하려던 계획을 백지화했으며 그밖의 대사관들도 관저를 본에 그대로 둘것인지,아니면 베를린에 신축해야 할지를 몰라 고민하고 있다. 본에 주재하는 3백여명의 외신기자들도 똑같은 고민을 하고 있다.
대부분의 정부기관이나 단체들은 이미 「베를린 청사」를 계획중에 있으며 기사당(CSU) 출신 교통부장관인 프리드리히 침머만은 『다음 연방의회에서 수도 이전 결정이 날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사태가 이렇게 되자 본에 거주하는 3만여명의 공무원들은 자녀들의 전학문제 등 수도를 베를린으로 옮길 경우 여러가지 불이익을 감수해야 할 처지여서 사기가 떨어져 있다.
그렇지만 수도를 베를린으로 옮기는 일은 말처럼 쉽지 않다. 서독 정부는 본을 명실상부한 서독의 수도로 만들기 위해 그동안 25억마르크(약1조2백50억원) 이상을 투자했는데 막 준공됐거나 지금 한창 진행중인 공사가 많다. 이를 고스란히 버리고 베를린으로 가자니 안타깝다는 것이다. 또 과거 숱한 모욕으로 점철된 베를린 보다는 「라인강의 기적」을 상징하는 본이 통일독일의 수도로서 적합하다는 의견도 만만치 않다.
그래서 나온것이 수도역할 분담론이다.
본 시장인 한스 다니엘이나 연방의회 의장인 쥐스무트는 본을 행정수도로,베를린을 의회수도로 하는등 양 도시가 수도의 역할을 분담하자는 안을 내놓고 있다. 콜 총리도 이안에 찬성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본의 도시계획 입안자들이나 정부관리들은 수도가 베를린으로 옮겨질 것에 대비,본에 통합될 EC의 본부를 유치하고 UN의 산하기관에도 건물을 대여하는 등의 대책을 마련하고 있어 베를린이 통일독일의 수도가 되는 것은 이제 불보듯 뻔한 현실로 다가서고 있다. <유재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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