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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건식 단편 「슬픈모순」소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9면

북한의 조선작가동맹기관지『조선문학』 (64년6월호)에 게재됐던 백화 양건식(1889∼1944)의 단편『슬픈 모순』이 계간『창작과비평』봄호에 전재돼 문단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슬픈 모순』은 양건식이 1918년 발표한 그의 대표작으로 이광수 중심의 계몽주의가 휩쓸던 1910년대 우리문단에서 사실주의 소설의 맹아로「추정」됐던 작품이다.
남한에서는 이 작품이 발표 했었던 잡지 『반도시론』1918년 2월 호가 지금까지 발견 되지 않아 그의 총체적 연구는 물론 초기 근대소설 연구의 진전을 가로막아 왔다.
『슬픈 모순』은 아침에 일어난「나」의 우울한 기분을 그린 첫 부분과 하릴없이 거리를 배회하며 목격한 것들을 그린 둘째부분, 그리고 집으로 돌아와 후배가 보낸 유서를 읽는 셋째부분 등 소외된 지식인 주인공의 하루를 그린 짧은 소설이다.
이 작품에는 유한계급여성이 등장하고 그와는 대조적으로「자기 키 만한」지게에 무거운 짐을 진 짐꾼, 술집에 들어 갔다가 남루한 옷차림에 문전박대 당하는 막벌이꾼 등이 나오는데 이들 하층민의 삶에 연민을 보내며 당대의 어두운 면을 구체척으로 묘사한 부분이 당시로서는 보기 드문 사실주의적 표현으로 꼽히고 있다. 때문에 북한에서는 이 작품을 비판적사실주의의 효시로 보고 있다.
국내 학계에서도 약자에 대한 연민에서 쓰여진 그의 초기작 『석사자상』 『미의 몽』등을 통해『슬픈 모순』도 지식인의 갈등과 고민을 총체적으로 지양한 사실주의 소설의 한 성과였을 것이라고 보아왔으나 작품을 대할 길이 없어 판단을 미뤄 왔었다. 이번 이 작품의 공개는 1910년대 사실주의 소설 연구의 보류부분 연구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우리에겐 최초로 공개되는 자료를 대하는 연구자의 자세에는 문제가 있다. 이 작품을 소개하면서 해설적 논문을 싣고있는 양문규씨(강릉대 국문과 교수)는「필 자의 논지는 결국 북한 학계의 연구결과를 그대로 따르는 꼴」「슬픈 모순의 내용이 북한학계의 논의와정합이 된다고 가정 할 때」등 북한학계의 연구성과를 전체로 논의에 들어가고 있다.
또 논의의 전개에 있어서도 「북한학계에서 비판적 사실주의의 발생조건으로 “…" 을 적극 수용할 경우」등 그쪽의 연구성과를 인용하고 있다. 우리에게 처음으로 공개되는 생자료를 분석함에 있어 「주체의 문예이론」에 입각한 그쪽의 성과에만 집중적으로 기댄다는 것은 편의주의를 넘어 분단문학사 극복에도 별 도움이 되지 못할 것 이라는 지적이다.
분단문학사 극복은 우리문학사의 구멍난 부분을 단순히 그쪽 성과를 가지고 메우는 작업은 아니기 때문이다.
문학평론가 권영민씨(서울대교수) 는 『분단문학사 극복을 위해선 분단체제가 빚은 양쪽의 약점을 동시에 극복할 수 있는 포괄적 관점이 필요하다』며 요즘 학계 일부의 북쪽연구성과에 경도된 연구자세를 경계했다. <이경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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