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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최우석칼럼

삼국지 세 주인공과 인사 논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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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삼국지의 세 주인공, 즉 조조.유비.손권의 인물됨을 보면 그야말로 막상막하다. 모두 훌륭하나 특장들은 조금씩 다르다. 조조는 명석하고 결단이 빨랐다. 스스로 모든 것을 처리하는 만기총람(萬機總攬)형이었다. 운도 좋아 세 나라 중 제일 먼저 가장 큰 땅을 차지하고 가장 강력했다. 유비는 인덕이 있는 데다 과묵하고 남의 말을 잘 들어 좋은 사람이 많이 따랐다. 통이 크고 관대해 믿고 맡기는 권한위임(權限委任)형이었다. 끈질기고 승부를 걸 줄 알았다. 손권은 수성(守成)의 명군으로서 물려받은 나라를 훌륭히 확대.발전시켰다. 오랜 부하들을 잘 활용하면서 신인들을 키워 신구세대의 조화와 협력을 이뤄냈다. 체면보다 실리 위주의 신축외교로 나라를 잘 보전했다.

이들의 공통되는 것은 사람을 잘 보고 잘 썼다는 점이다. 당시도 인사가 만사였다. 먹고 먹히는 싸움이 늘 벌어지는 천하대란의 시대여서 누가 더 좋은 인재를 구하고 능력을 발휘케 하느냐가 흥망의 갈림길이었다. 천하의 인재들도 좋은 주인을 찾아 이합집산을 거듭했다. 조조는 뛰어난 군인이고 전략가고, 또 지식인이었다. 사람에 대한 욕심이 대단했다. 최고의 참모라 할 수 있는 순욱(荀彧)을 처음 만났을 땐 버선발로 뛰어나가 맞을 정도였다. 전국에 지시를 내려 "능력만 훌륭하면 사소한 흠은 따지지 마라"며 사람을 찾았다. 능력 있는 인재가 시비에 걸리면 앞장서 막아주었다. 그래서 많은 인재가 몰려들었고 엄격한 평가와 신상필벌로 최고의 에너지를 뽑아냈다.

처음부터 가진 것이 없었던 유비는 겸손함과 어진 마음으로 인재 영입에 정성을 다했다. 스무 살이나 연하인 제갈공명을 세 번이나 찾아가 지극정성으로 모셔왔다. 더 훌륭한 것은 공명이 품은 재주를 마음껏 발휘할 수 있도록 적극 뒷받침해 준 것이다. 당시인들 기득 세력의 텃세와 견제가 없었겠는가. 창업 동지와 가신들을 잘 단속하면서 자신의 권한을 위임했다. 유비는 워낙 큰 그릇이어서 엉성한 것 같지만 사람을 보는 데는 동물적 감각이 있었다. 나중에 읍참마속(泣斬馬謖)이란 말을 만든 마속을 제갈공명이 총애하는 걸 보고 임종 직전에 "마속은 실질보다 말이 앞서니 앞으로 조심해서 써라"고 당부하고 갔다. 사람 보는 눈이 정확했기 때문에 믿고 맡길 수 있었던 것이다.

손권도 사람을 잘 썼고 또 잘 키웠다. 고비마다 잘 아는 인재를 발탁해 큰 성공을 거두었다. 일종의 코드 인사, 낙하산 인사인데 능력 있는 사람을 찾아 결정적일 때 쓴 것이다. 나라의 운명이 걸린 큰 전쟁에서도 전적으로 맡기고 뒷받침하는 일만 했다. 손권은 뛰어난 장군은 아니었지만 뛰어난 장군을 수족같이 부릴 수 있었기 때문에 성공했다 할 수 있다. 손권이 아주 어릴 때 돈 때문에 고생한 적이 있다. 통이 큰 손권이 통 크게 돈을 쓰려 했으나 형 손책이 버릇을 들인다고 엄히 규제했기 때문이다. 이때 어떤 부하는 규정대로 엄격하게 하고 다른 부하는 적당히 뒷돈을 만들어 손권을 기쁘게 했다. 손권은 집권하자마자 뒷돈을 만든 사람을 쫓아내고 엄하게 처리한 사람을 오히려 중용했다. 그렇게 공사가 분명했기에 많은 부하가 승복했을 것이다.

요즘 인사를 둘러싼 말썽이 끊이지 않고 있다. 교육부총리를 못 구해 쩔쩔맬 정도고, 낙하산 인사 논란이 많다. 사실 급(級) 안 되는 사람들이 너무 설치니 괜찮은 사람은 몸을 사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거기에 사람을 보는 기준도 달라졌고, 사람을 찾는 정성도 많이 떨어졌다. 그러나 막상 걱정해야 할 곳에서는 태연하고 낙관적이다. 코드 인사, 낙하산 인사는 옛날에도 있었고 다른 나라도 하고 있는데 왜 문제인가 하는 식이다. 지금 문제가 되는 것은 인사의 형식이 아니라 수준이다. 또 공사 혼용이다. 자리에 따라 급수에 맞게 쓴다면, 설혹 벗어나도 오차 범위 안이라면, 무슨 문제가 되겠는가. 삼국지라도 한번 제대로 읽어 보는 게 좋겠다.

최우석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