록 가수로 중국민주화의 우상|추이 지엔 콘서트 대성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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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북경당국이 지난해 6월 천안문사태 이후 최초의 대중집회로 당시 민주화 요구세력의 대중적 영웅이었던 록 가수 추이 지엔의 콘서트를 허가해 내외의 관심을 사고있다.
지난달 28, 29일 북경공인체육관에서 열린 추이의 콘서트에는 수만 명의 중국 젊은이들이 모여들어 천안문사태 당시의 군중집회와 같은 열기를 보였다.
그들은 추이의 노래를 합창하면서 서구 취향적인 그의 록 뮤직에 환호를 아끼지 않았으며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경비에 나선 경찰·관리 중 일부는 노래를 따라 부르기도 했다.
추이는 28세의 가수·작곡가 겸 기타리스트로 몇 안 되는 중국 록그룹의 리더를 맡고 있다. 대부분의 중국가수들이 홍콩이나 대만의 동족가수 흉내를 내며 나름대로 세련미를 과시하려는 경향이 있는데 비해 추이는 이들보다 한발 앞서 미국 팝 가수 보브 딜런이나 브루스 스프링스틴과 같은 허스키 한 창법을 구사하며, 특히 서구적 그룹사운드에 중국 내 오지인 서북지역의 토속적 영감을 불어넣은 독특한 음악 세계를 보여주고 있다.
또 그의 노래는 상당히 의미심장하며 시사적인 내용을 풍자시 형식으로 담고 있어 특히 젊은이들에게 선풍적 인기를 끌고 있으며, 천안문사태 당시에는 그의 노래『모든 것 바치리』가 민주화를 요구하던 시위대의 주제가처럼 불려지기도 했었다.
북경당국이 별로 탐탁치않게 생각하는 추이의 공연을 허가하게 된 것은 두 가지 이유에서였다.
하나는 그의 공연수익금을 부족한 북경아시안게임 행사비용에 충당하기 위해서다. 북경당국은 아시안게임이 수개월 앞으로 다가왔으나 행사비용이 모자라 고심하고 있었는데 추이가 기금 마련 자선공연을 자청해오자 선뜻 허가해준 것으로 알려졌다. 그래서 공연 티킷도 보통노동자 월급의 5분의1인 20원(4·35달러)이라는 고가로 판매됐다.
추이는 자선공연을 자청한 이유로『아시안게임이 북경시 당국만 아니라 모든 시민이 함께 주최하는 행사임을 증명해 보이기 위해 나섰다』고 말했다.
또 다른 이유는 추이와 같은 서구 지향적 록 가수의 공연을 통해 세계 각국과 중국내의 다른 지방사람들에게「계엄군의 강제진압으로 얼어붙었던 북경의 분위기가 평온을 되찾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다.
어떻든 추이의 대규모공연으로 북경 젊은이들의 움츠러들었던 가슴이 한결 펴진 것은 사실이고 이러한 중국의 해빙 조짐은 세계의 환영을 받고 있다. <오병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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