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할 길은 수석뿐이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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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올해 성균관대 수석졸업자 전종우씨 (33· 중어중문학과 야간부) 에게 수석졸업의 영예는 생존을 위해 내달려온 결과였다.
성대개교이래 야간학부 츨신으로는 첫 수석졸업자인 전씨의 성적은4·5만점에 평점4·31.
86년 대학에 들어간뒤 한번도 수석을 놓친적이 없다.
『과수석은 곧 생존을 의미했어요. 장학금 외에는 도저히 학비를 조달할 수 없었거든요.』
낮에는 외국어번역등으로 전씨가 번 15만원과 부인(30)이 하청받은 의류를 집에서 재봉틀을 돌려 번 10만원등 25만원이 아들· 딸까지 딸린 네식구의 최저생계비.
그러나 공부에 대한 전씨의 집념은 왕복 3시간 거리인 고양군 일산의 사글세방에서 학교까지 4년동안 한번도 거르지 않고 통학한데서도 쉽게 짐작된다.
오전5시면 어김없이 일어나 10년동안 계속해온 대로 라디오의 중국어와 일본어강좌를 듣고 다시 오전8시쯤 먹을 것을 구하기 위해 서울의 아르바이트 장소로 나갔다는 전씨.
전씨는 57년 전남해남에서 하반신 불구로 시계수리상을 하는 부모밑에서 3남1녀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고교졸업후 시골에서의 9급 공무원, 77년 상경한뒤 구로공단 대한광학공원, 잡지사 수금사원 등등-.
83년 친구의 여동생과 결혼하고 딸 효빈까지 낳은 전씨는 85년 가을 좀더 체계적인 외국어 공부를 하고 싶어 대학진학을 결심했다.
급우 37명중 가장 나이가 많았던 전씨는 10년 아래 동생뻘 급우들과 스스럼 없이 어울리고 스터디그룹도 같이하며 나이를 잊었다.
1학년2학기 때는 어려운 형편을 눈치챈 급우들이 몰래 23만원을 모아 건네주던 고마운 기억을 떠올리며 전씨는 비정한 사회생활에서 기대할 수 없는 대학사회만의 훈훈한 정을 평생 잊을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 고문은 읽을 수록 재미가 있어요. 소동파의 문장은 모두 좋아하고 제갈량의 출수표에 나오는국궁진양 (온 마음을 다해 몸이 깨질 때까지 노력한다) 라는 구절은 힘들 때마다 용기를 주었죠』
그동안 없는 살림만 축내며 가장 노릇한번 제대로 못한 부인과 아들·딸에게도 이젠 자신의 자리를 잡고싶다는 전씨.『올해는 돈을 벌어야겠어요. 4년동안 급한데를 메우느라 빌린 돈이 5백만원 가까이 되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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