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있는아침] '어디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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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어디로?'- 최하림(1939~ )

황혼이다 어두운

황혼이 내린다 서 있기를 좋아하는 나무들은 그에게로

불어오는 바람에도 흔들리지 않으며

있고 언덕 아래 오두막에서는

작은 사나이가 사립을 밀고

나와 징검다리를 건너다 말고

멈추어 선다 사나이는 한동안

물을 본다 사나이는 다시

걸음을 옮긴다 어디로? 라고

말하지도 않는다


조석('아침저녁으로'라고 썼다가 지우고)으로 선선하다. 황혼녘이 가깝다는 징후. 모두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나 한 사내 사립을 밀며 나오니 웬일인가. 물 위를 걸어가기 위함이고 물을 보기 위함이고 스스로를 보기 위함이다. 아마도 일생 가장 깊은 소(沼)에 스스로를 비춰보는 것이리라. 고사관수도(高士觀水圖)가 따로 있으랴. 톨스토이가 겹쳐지고 죽음이 겹쳐진다. 어디로? 침묵 속으로다. 이럴 때 성큼성큼 다가올 어둠은 종소리와도 같은 것이리. 종(鐘)은 어디쯤에 다셨을까?

<장석남.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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