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5.31 민심을 파시즘에 연결한 김근태 의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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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김근태 열린우리당 의장이 시민단체인 참여연대와 가진 간담회에서 "1930년대 세계 대공황 전후에 유럽에서 파시즘이 대두한 것처럼 그럴 위험성이 우리 사회에도 있으며 일부가 5.31 선거에서 표현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냉전수구 세력, 기득권 세력의 대연합이 본격화돼 위험한 상황"이라고도 했다. 그는 양극화의 위험을 강조하면서 이렇게 진단한 것이다.

김 의장은 집권당의 대표이자 집권 세력의 주류인 민주화 운동 출신 그룹의 대부다. 이처럼 영향력과 상징성을 지닌 여권 지도자가 이런 충격적인 시국 인식을 갖고 있어 놀랍고 심히 우려스럽다.

파시즘(fascism)이란 원래 이탈리아 무솔리니의 전체주의를 이르지만 광범위하게는 자유를 억압하는 독재적이며 폭압적인 모든 현상을 가리킨다. 경제.사회적 불안, 대량실업, 전쟁위기, 사회갈등 같은 요인에서 생겨난다.

5.31은 현 정권의 무능.오만.경박함에 대한 국민의 준엄한 심판이었다. 선거라는 가장 민주적인 방법으로 역사의 방향을 바꾸려는 민심의 자발적인 선택이었다. 김 의장의 논리라면 국민이 민주국가를 버리고 파시즘을 택했다는 말인가. 그는 냉전수구 세력의 대연합이라고도 했는데 여당을 찍지 않은 그 많은 국민이 냉전수구 세력이란 말인가.

유권자들은 파시즘도 모르고 냉전수구도 모른다. 그들은 그저 비뚤어진 역사관을 가지고 배를 엉뚱한 곳으로 몰고가는 선장을 호되게 나무란 것뿐이다. 이런 국민의 목소리를 왜 파시즘과 연결시키나.

김 의장은 최근 뉴딜이라는 재계 지원 정책을 추진해 여권에 참신한 기운을 불어넣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아직도 이념의 포로로 남아 있는 행로를 보였다. 그는 "작전통제권은 자주독립국가가 당연히 가지고 있어야 하는 것"이라고 했다. 실익보다는 자주라는 이념적 문제로 다루는 것이다. 또 진보단체와 어울려서는 '냉전수구' 비판을 합창했다. 여당 대표의 행보가 이토록 어지러우니 국민이 정권을 믿지 못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