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론

문화재야 어디 있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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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문화재를 소유.관리하는 국가기관으로는 국립고궁박물관 등 문화재청 소속 국립기관과 국립중앙박물관을 비롯한 각 지방의 국립박물관이 있다. 그런데 조선왕조 인장의 사례처럼 국가기관에서조차 관리 상태가 부실하다면, 개인 소유의 문화재가 어떻게 관리되고 있을지 짐작하고 남을 일이다.

일제 강점기 대한민국의 문화유산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일제에 의해 유린당했다. 우리는 36년이란 긴 세월을 문화재란 개념조차 모르고 보내야 했다. 1945년 광복을 맞았지만 50년 한국전쟁이 발발했다. 먹고 살기에도 바빴던 과거의 우리는 솔직히 문화재에 신경을 쓸 여유가 많지 않았다.

국내 문화재의 체계적 관리를 선언한 문화재보호법은 62년에 와서야 비로소 제정됐다. 그러기를 이제 44년, 문화재보호법은 불혹의 나이를 넘어섰다. 짧지 않은 시간이 흐른 셈이다. 그럼에도 문화재청 소속 기관인 국립고궁박물관에 보관돼야 마땅할 조선황실의 옥새 일부가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전주박물관에 흩어져 있고, 그나마 보관 중인 조선왕조의 인장이 관리 소홀로 일부 분실됐거나 훼손됐는데도 지금까지 아무런 대책이 없었다는 것은 변명의 여지가 없는 잘못된 일이다. 입이 두 개라도 억울하다고 항변할 일이 아니다.

"늦을 때가 가장 빠르다"는 말이 있다. 문화재 당국은 오히려 지금을 기회로 삼아야 한다. 조선황실 인장뿐 아니라 소장 유물에 대한 실태 파악에 나서고, 과학적 보존처리가 시급한 유물은 더 이상 훼손되지 않도록 대책을 세워야 한다. 장기적으로는 여기저기 흩어진 조선황실 인장을 국립고궁박물관으로 이관.구입해 일괄 관리체제를 갖추고, 지금은 분실돼 소재 파악이 불가능한 인장은 복제하는 방안도 추진해야 한다.

문화재보호법 제정 이후 우리의 문화유산은 엄청나게 많아졌다. 예컨대 국보.보물 등 국가지정 문화재는 2949점, 시.도 유형문화재 등 지방지정 문화재는 6371점에 이른다. 총 1만 점에 육박하는 수치다. 하지만 개인이 소유한 미지정 문화재의 경우 소재는 물론 숫자조차 제대로 파악되지 않고 있다.

중요한 건 지정.미지정 관계없이 문화재는 마땅히 보호받아야 한다는 점이다. 국공립기관.사립박물관에 소장된 문화재는 어느 정도 제도의 혜택을 받을 수 있으나 개인 소장 문화재는 사각지대에 방치된 상태다. 이런 까닭에 문화재는 무엇보다 정확한 소재 파악이 우선돼야 한다.

감사원의 감사 결과는 사실 지엽적인 문제다. 이번 기회에 70년대 제정됐다가 지금은 폐기된 동산문화재등록법을 되살리는 것도 고려해 볼 만하다. 개인.법인.기관 등의 모든 문화재를 신고.등록하자는 게 당시 법안의 기본 취지였는데 일부 개인.법인들이 소장 문화재의 노출을 꺼려 물거품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지금은 30년 전과 상황이 다르다. 문화재에 대한 인식이 높아졌고, 경제 규모도 비교할 수 없이 커졌다. 문화재를 등록했다고 국가가 강제로 환수할 수도 없다. 소재를 일단 알아야 문화재 보호도 시작될 수 있는 것이다. 올 연말 착공되는 문화재종합병원도 이런 의미에서 기대가 크다. 문화재병원이 완공되면 개인 소장 문화유산도 '치료'받을 길이 넓어지기 때문이다. 감사원이 문화재 당국에 주는 교훈과 과제는 바로 이런 것이다.

조유전 토지박물관장.전 국립문화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