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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 주름으로 한국도 주름잡은 하이 패션 일본 '깜찍 패션'도 통할까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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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이세이 미야케

일본패션이 한국에서 뿌리내릴 수 있을까. 일본 대중문화 개방과 맞물려 그동안 음지에 있던 일본의 만화와 영화.드라마 등이 이젠 당당히 방송가와 극장가를 공략하고 있다. 일본 문화에 대한 젊은 세대의 동경과 한류 열풍으로 인한 한국 문화의 자부심이 합해져 그동안의 일본 문화에 대한 폐쇄성을 떨쳐버리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패션 시장은 다르다. 다른 문화 산업 분야에 비해 일본의 영향력이 크지 않은 분야다. 대중에게 잘 알려진 일본계 패션 브랜드는 겐조, 이세이 미야케, 요지 야마모토, 콤 드 가르송, 준야 와타나베 정도. 이런 가운데 얼마 전 일본 디자이너 브랜드인 '쓰모리 지사토'가 한국 시장에 진출했다. 이를 계기로 한국 시장에서의 일본 패션 브랜드의 현재와 미래를 진단했다.

# 확실한 색깔로 확실하게 각인시키다.

2002년 한국 시장에 론칭한 일본 하이 패션 브랜드 '이세이 미야케'는 확실한 디자인 컨셉트로 수많은 매니어를 만들어냈다. 현재 한국에서 일본 패션 브랜드의 선두에 서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인기다. 이세이 미야케는 일본 출신의 세계적인 디자이너. 동양적인 색감과 추상적인 스타일로 주목받기 시작한 그는 1980년대 일본 패션이 본격 부상하면서 파리와 뉴욕 등지에서 입지를 다지며 세계적인 디자이너로 올라섰다.

한국에서 이세이 미야케의 인기는 89년 개발된'플리츠'라 불리는 소재 때문이다. 플리츠는 폴리에스테르 소재로 수많은 주름이 잡혀 있다. 드라이클리닝이 아닌 물세탁이 가능하고 다림질도 필요 없을 정도로 구김도 가지 않는다. 게다가 여행할 땐 갤 필요도 없이 구겨 넣어도 옷의 형태가 상하지 않는다. 무엇보다 날씬해 보이는 효과가 있어 중년 여성들에게 확실하게 어필했다.

이세이 미야케의 수석 디자이너 출신인 쓰모리 지사토가 83년 자신의 이름으로 브랜드를 론칭했다. 소녀다운 귀여움이 무기다. 만화를 보는 듯한 독특한 프린트와 파스텔 톤의 색감은 일본에서도 매니어층이 두껍다. 한국 진출을 위해 방한한 그는 "이번 시즌의 테마는 에스키모 스타일의 현대적인 재구성이다. 천진난만하면서도 귀여운 로맨틱 스타일이다"고 자신의 스타일을 설명했다.

# 유행을 주도하지는 못하는 한계

쓰모리 지사토

80년대 집중적인 조명을 받은 일본의 하이 패션은 일본풍의 디자인을 하나의 디자인 주류로 올려놓는 데 성공했다. 기모노 스타일이 대표적이다. 일본 전통의상인 기모노에서 영감을 받은 이브닝 드레스 등이 현재도 당당히 드레스의 대표 스타일로 자리 잡고 있다.

그러나 일본의 하이 패션은 사실 프랑스와 이탈리아 패션처럼 유행을 선도하지는 못하고 있다. 삼성패션연구소 조윤희 연구원은 "일본 패션은 패셔너블하다고는 볼 수 없다. 유머러스하지만 세계적인 추세와는 거리가 있는 것이 사실"이라고 진단했다. 유구한 역사와 엄청난 자본력을 앞세운 프랑스와 이탈리아의 패션 브랜드에 비해 밀린다는 얘기다.

물론 캐주얼 시장에선 상황이 다르다. 일본과의 교류가 활발해지면서 일명 '닛폰 필'로 불리는 캐주얼 스타일이 젊은이들 사이에 거부감 없이 수용되고 있는 실정이다. 조 연구원은 "이미 일본식 캐주얼은 한국에선 대세다. 세미 재패니즘이라 불리는 스타일인데, 스키니 진 같은 복장이 일본을 거쳐 한국에 들어온 대표적인 스타일"이라고 설명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일본 하이 패션도 직접적인 한국 공략보다는 파리 같은 세계 시장에서 인정받은 브랜드를 중심으로 들어오는 우회적인 진출의 모습을 보인다. 겐조, 콤 드 가르송, 요지 야마모토 등은 일본인이 브랜드를 이끌고 있지만 사실 주요 활동무대는 유럽이다. 이세이 미야케와 쓰모리 지사토 역시 파리에서 컬렉션을 열고 있는 브랜드. 이런 모습은 일본의 대표적 자동차 업체인 도요타가 한국 시장 공략에 렉서스를 앞세운 것과 사뭇 비슷하다. 렉서스는 이미 세계적으로 고급 차의 대명사로 인정받고 있는 도요타의 브랜드. 도요타를 앞세워 문화적인 거부감을 일으키기보다 렉서스를 앞세워 소수의 매니어층을 만들어낸 것이다. 문화 개방 이후 자연스럽게 스며들고 있는 일본의 문화 파워가 하이 패션계에서도 본격적으로 힘을 발휘할지 두고 볼 일이다.

조도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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