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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림유사' 국제학술대회] 고려시대 어휘 되살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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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양치질이란 말은 어떻게 생겼을까. 고려때 칫솔은 버들가지로 만들었다 하여 '양지(楊枝)'라고 했다고 한다. 때문에 칫솔질은 '양지질→양주질→양추질→양치질'로 발전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 양지라는 말은 일본으로 건너가 '요지(이쑤시개)'라는 말로 쓰이기도 했다. 또 '내일'이란 말은 한자어 '내일(來日)'로서, 고려 때에는 고유한 우리말 '하재'라는 말이 있었으며, '빈대'는 고려어로 '갈보'라 하였다고 한다.

이런 내용은 '계림유사(鷄林類事)'를 40년 가까이 연구한 진태하(陳泰夏.67) 명지대 국문과 교수(한국국어교육학회 회장)가 밝혀낸 사실이다. '계림유사'는 송나라 때 손목이 고려 숙종 8년(1103년) 서장관(書狀官.기록관)으로 개성에 왔다가 당시 고려의 조정제도와 풍속, 고려인들이 사용하던 어휘 3백61개를 수집한 일종의 견문록.

진교수는 대만 중앙도서관과 홍콩대학 도서관에서 찾아낸 '설부(說)'의 명나라 시대 필사본을 통해 고려시대 개성을 중심으로 사용됐던 20개 순수 우리말의 단어 뜻을 밝혀냈다.

'설부'는 '계림유사'의 일부 내용을 뽑아 원나라 시대 학자인 도종의(陶宗儀)가 편찬한 책. 그동안 고려어를 한자음으로 적어놓은 '계림유사'를 연구해온 국내 학자들은 '설부'의 청나라 시대 필사본을 통해 당시 고려어를 해석하려 했다. 그러나 해석에 오류가 많고 어떤 단어는 해석이 안됐다.

이에 진교수는 청나라 이전 판본인 '설부'의 명나라 필사본을 바탕으로 송나라 시대의 중국어 발음과 그리고 현재 중국 중부 방언 등을 참고해 필사과정에서 생긴 오류를 잡고 20개 단어의 뜻을 새로 찾았다.

일례로 '명일왈할재(明日曰轄載)'로 적혀 있는 것은 '할'의 송나라 시대 발음이 '하'였던 것에 비추어 '내일'의 순수 우리말이 '하재'라는 사실을 밝혔다. 또 명대 필사본에는 '빈대'를 '취충왈갈포(臭蟲曰蝎鋪)'라 적어 놓았는데 '포'의 송대 발음은 '보'라는 것. 현대에 이르러 '갈보'는 매춘부로 뜻하는 말로 바뀌었으며 일부 지방에서는 빈대를 '갈보'로 쓰는 곳이 남아 있다고 한다. 이외에도 '젓가락'은 '절', '흔하다'는 '흡합다', '얼굴'은 '나시' 가 고려어였다.

한편 진교수의 연구 성과를 비롯해 중국.일본.프랑스.대만 등지에서 온 학자 20여명이 모여 '계림유사' 편찬 9백주년을 맞아 그간의 연구 성과를 한 자리에서 발표하는 '고려조어(高麗朝語)연구 국제 학술대회'가 17~18일 서울 중구 서소문동 명지빌딩에서 열린다.

발표자 중 한 명인 안병호 중국 베이징(北京)대 교수는 중국 헤이룽장(黑龍江)성에서 태어난 한인 2세로 북한 김일성대에서 외국인으로는 처음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번 학술대회에서는 계림유사에 표기된 고려 어휘에 대한 새로운 분석을 내놓는다. 조선통신사 연구를 해온 이원식 전 일본 긴키(近畿)대 교수는 손목의 인물탐구 결과를 발표한다. 문의 02-725-0900.

홍수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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