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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핵실험' 미국의 대응카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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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북한의 핵실험이 가시권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를 차단할 방법은 없을까.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핵 방아쇠를 잡아당길 경우 한국의 안전은 어떻게 지켜야 할까.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은 북한의 핵실험과 관련, '대만'과 '1991년'이라는 두 가지 카드를 쥐고 있다. 그리고 부시 대통령은 이 카드를 잘만 활용하면 북한의 핵실험을 차단하거나 핵실험 이후에도 한반도의 안전과 평화를 유지할 수 있다.

'대만 카드'는 미국이 중국에 "북한의 핵실험을 방관하면 우리도 대만의 핵개발을 방관하겠다"는 메시지를 보내는 것이다. 최근의 북한 미사일 발사 사태에서 목격했듯이 중국의 대북 입장이라는 게 어정쩡하기 짝이 없다. 베이징(北京)은 말로는 북한의 핵.미사일에 반대한다고 하지만 대북 지렛대 사용은 망설이고 있다. 북한의 핵실험을 막으려면 부시 대통령이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에게 전화를 걸어 "북한과 대만이 모두 핵 보유국이 되는 것과, 양측 모두가 핵을 가지지 않는 것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라"고 양자택일 메시지를 전해야 한다. 대만이 핵개발에 나선다면 베이징의 입장이 달라질 수 있다. 게다가 대만은 유엔 회원국도 아니고 핵확산금지조약(NPT) 비준국도 아니기 때문에 핵을 보유해도 NPT 체제에 변화가 없다. 만일 후진타오 주석이 워싱턴의 제안을 받아들여 대북 '송유관 꼭지'를 매달 10%씩만 조여도 김정일은 핵실험을 재고할 것이다.

'1991년 카드'는 북한이 핵실험을 강행할 경우 핵무기를 한국에 재배치하는 것이다. 15년 전 냉전이 종식되자 조지 부시 당시 미 대통령은 한반도에서 핵무기를 철수했다. 이어 남북한은 그해 12월 서울에서 고위급 회담을 열고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을 채택했다. 그러나 북한은 지난 15년간 한국과 미국을 철저히 농락했다. 밖으로는 핵무기 개발.생산.보유.저장.실험을 하지 않겠다고 약속하곤 뒤에서는 원폭 6~8개를 제조할 수 있는 플루토늄 추출과 NPT 탈퇴,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찰관 추방, 100여 차례의 고폭 실험은 물론 파키스탄과 손잡고 우라늄 핵개발까지 했다. 따라서 북한이 핵실험을 할 경우 남북 비핵화 공동선언은 완전 사문화하는 것은 물론 미국으로서도 주한미군에 핵무기를 재배치할 명분이 생긴다. 이를 통해 북한이 핵무장할 경우 일시에 깨져버릴 남북한 군사력 균형을 다시 맞출 수 있게 될 것이다.

또 북한이 핵무장을 할 경우 한국은 1970년대 박정희 대통령이 그랬듯이 독자적으로 핵개발을 추진하고 싶은 유혹에 빠질 수 있다. 주한미군의 핵무기는 한국의 핵개발 수요를 원천봉쇄할 수 있다. 중국도 핵무기 재배치를 환영하지는 않겠지만 묵인할 공산이 크다. 미국이 한국에 핵무기를 재배치하는 편이 한국.일본.대만이 앞다퉈 핵개발에 뛰어드는, '동북아 핵 도미노'를 겪는 것보다 낫기 때문이다.

유감스럽게도 노무현 대통령은 북한의 핵실험을 차단할 만한 카드가 없다. 얼마 전 미사일 시험 발사 상황에서 유추해 볼 때 핵실험 뒤 우리는 청와대로부터 다음과 같은 썰렁한 코멘트를 들을지도 모른다. "북한이 핵실험 좀 하면 안 되느냐. 북한 핵실험 저지의 최대 실패자는 미국이다" 같은.

최원기 국제부문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