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자제 후 전망 (19)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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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민주제도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지자제가 금년 5, 6월께 실시된다. 근 한 세대만의 일인즉 우리는 중앙정치만을 경험한 굴레를 비로소 벗어나게 된다.
민주주의를 실현해보려는 저간의 의지가 결실을 맺게 되었으나, 이 결실은 결과가 아니라 시작에 불과하다.
온 나라는 곧 선거열풍에 휘말리면서 방방곡곡이 들썩거릴 것이다. 여러 번 선거를 치러보았으나 아직도 투표와 대의의 관계식을 갈 이해 못하는 유권자가 많고 선거경쟁은 초법적으로 생각하는 풍토이니 걱정스럽기만 하다.
민주학습치고는 비용이 많이 드는 일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기회를 마다할 수는 없다. 서울의 움직임만 바라보며 내 고장 일을 저당 잡히던 「집중의 어둠」이 이제 걷히기 때문이다. 나의 일을 중앙의 남이 아닌 내가, 나의 일을 관료의 독선이 아닌 자신의 지혜로 결정할 수 있는 지평이 열리기 시작한 듯하다.
하지만 지방정치과정의 모습이 중앙정치의 재판이 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고, 현재 중앙당들의「정당간 놀이」에서는 이미 이러한 기미가 보인다.
중앙정치에 순치된 탓인지 선거법 요리를 중앙에서 하면서 계속 지방을 지배하려 들고 있다.
미래를 조망하면서 한국민주주의의 토대를 이 기회에 닦으려면 적어도 농촌지역에 농민당, 중공업지역에 노동당, 공해에 찌든 중소도시에 녹색당정도는 자생적으로 등장해야 한다. 그래야 이 제도의 실시가 민주장정의 새 기원을 획 할 수 있을 터이다.
현재대로라면 4개 정당이 지역을 분점 해 지방자치에 고삐를 달아 맬 것이다.
구도는 지방자치 화 되 본질은 계속적인 지방지배인 것이다.
어쨌든 변화의 계기는 마련되었다. 당장에야 돈과 조직이 좌우하는 선거풍토로 정치 새 세대의 진출이 어렵더라도 장기적으로는 구 정치체제의 껍질이 깨지게 되고 국민의식도 성숙될 것이다.
다만 올해부터 어림잡아도 1조 이상의 선거비용이 매년 쏟아지고 혼란까지 조성되는 선거 병의 치유책이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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