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하순대집』(서울수송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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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당무나 사람들을 만나는 일로 피곤할 때 내가 곧잘 찾는 곳이 순대집이다. 그중에서도 서울수송동의 은하순대집((733)시4886)에 자주 가게 된다.
구수한 순대맛에서 물씬한 고향냄새를 맡을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이집 순대맛에는 순한 인정이 배어있는 것 같다.
물론 음식 맛 좋은 고급 음식점도 많지만 내가 이 집 음식을 즐기는 것은 어쩌면 순대맛이 내성격과 비슷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내가 은하순대집을 처음 찾게된 것은 홍성철 청와대비서실장이 내무장관시절이던 70년대초가 된다.
당시 언론계에 몸담았던 나는 일과를 마치고 따로 홍실장과 취재약속을 하게되면 으레 이집을 찾았다. 그런데 이제 홍실장보다 내가 더 자주 이 집을 애용하게 됐다.
그래서 이 집을 처음 연 이희숙씨(60·여)는 『홍실장님이 높아지시더니 이제 잘 오시지도 않는다』고 푸념하면서도 『우리 순대맛은 시내에서 따라올 집이 없으니 바쁜 일이 끝나면 다시 찾으실 것』이라고 자랑한다.
30대부터 홀로 된 이씨는 내가 하도 순대집을 자주 이용하는 바람에 이제 곧잘 소주잔도 같이 기울이며 음식집을 찾는 서민들의 불평들도 전해준다. 그래서 정책위의장시절에는 이집에서 여론을 듣기도 했다.
수송동 조계사 바로 아래 골목으로 50m쯤 들어가면 「은하」라는 간판이 눈에 들어오는데 단골손님들은 옛날 이름인 「호반」을 더 잘 기억한다.
시골집 부엌처럼 순대냄새가 밴 이 집의 일품요리는 술안주로 순대가 한접시 8천원, 국수낙지가 9천원이고 순대국, 북어찜등 식사는 모두 2천5백원씩.
이씨 할머니가 오랜 솜씨로 직접 순대를 만들어 식사시간이면 발들여 놓을 틈이 없을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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