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고·노사분규 여파…휴 폐업 심사키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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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노동부집계에 따르면 지난해 1년간 임금인상·경영난을 이유로 폐업한 외자기업은 한국TC전자(마산·미국계)등 13개이며 한국동경전자(마산·일본계)등 집단감원을 한 회사를 합하면 30여개 외자기업이 철수·감원을 단행했다. 이로 인해 근로자. 8천여명이 실직(80∼90%는 재취업) 하는 사태도 빚어졌고 감원은 계속될 전망이다.
특히 노동집약적 제조업을 중심으로 한 외자기업의「뺑소니」사태는 87년 말 외국인 투자기업체 임시특례법이 폐지돼 외자기업에서도 노조활동이 허용된 데서 우선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그 동안 말없고 성실한 우리근로자들을 실컷 부려먹은 외자기업들이 노조설립 후 근로자들이 임금인상요구 등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자 동남아 저임금국가를 향해 미련 없이 빠져 나가고있는 것이다. 지난해의 경우 60여개 외자기업에서 분규가 있었다.
저임금을 노려 60년대 후반부터 진출했던 이들 기업은 그 동안 정부의 세금감면·금융혜택·노조활동금지 등 특혜 속에 고 수익(62년 이후 공식 과실송금액 13억 달러)을 올려 왔었다. 폐업조치를 당한 외자기업 근로자들의 분노는 이들 기업이 조금 상황이 달라졌다고 해서 하루아침에 아무런 보장 없이 보따리를 꾸린다는데 있다.
이 때문에 해당근로자들은 외자기업에 특혜를 베풀었던 정부가 왜 우리근로자보호는 해 주지 않느냐고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물론 여기에는 기업윤리보다는 영리만을 찾아다니는 다국적 자본의 냉혹한 속성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측면도 있기는 하다.
폐업한 외자기업 중 가장 사안이 나빴던 사례는 지난해 3월 임금 등 2억 여원을 체불한 채 미국인 사장이 불법 도피해버린 부천의 한국피코(근로자2백80명)다. 근로자들은 미 상공회의소 점거, 미 대사관 앞 시위, 노동부사무소 농성 등으로 항의를 계속하고 있으나 10개월이 지난 지금도 해결되지 않고 있다.
폐업을 당한 근로자들은「외자기업 공동대책위」를 결성, 각종 시위·농성을 계속했으나 해결책이 없어 해외원정 노사교섭까지 서슴지 않게 된 것이다.
이 같은 사태에 우리 정부는 거의 속수무책인 실정이다. 재무부·상공부는 자본의 속성상 어쩔 수 없는 일이며 외자기업이라고 해서 내국인 기업과 다른 규제를 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노동부와 재무·상공·외무부는 지난 12월초에야 대책회의를 갖고 부당 폐업 외국인업주는 구속수사하고 국내 재산압류, 출국정지를 시키는 등의 특별대책을 마련했다. 노동부는 외자기업의 노사관계 동향을 월1회 이상 점검하고 외자기업의 휴 폐업·감원은 사전심사를 실시해 물의 소지를 없앤다는 방침이다.
또 경영여건상 부득이한 경우는 내국인 인수운영방안을 강구하거나 첨단업종 등 고부가가치산업으로의 전환을 지도한다는 계획이다.
노총과「민주」노조 등 노동계는 그러나 정부의 이 같은 대책이 공허한 것이라며 외자도입법을 개정 ▲3개월 분의 임금·퇴직금 등 적립의무화 ▲사업변경 시 노조와 사전협의 ▲부당 폐업전력 외자기업의 국내재투자 금지 등 조치를 요구하고있다.
노동계는 또 정부 내에 외자기업고용대책기구를 설치, 실업문제 등에 대처해줄 것을 촉구하고있다.
노동부관계자는『기업윤리를 무시하는 외자기업의 자세도 문제지만 근로자들도 해당 국의 노사관계를 감안한 매끄러운 처신을 해야할 것』이라고 당부했다. <김 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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