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안 풀리면 OOO 찾아가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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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성인오락실 경품용 상품권 심사에서 탈락한 업체들은 이구동성으로 업체 선정에 문제가 많았다고 불만을 터뜨리고 있다. 지난해 7월 상품권 발행업체 선정제도가 인증제(허가제 성격)에서 지정제(등록제 성격)로 바뀐 뒤 그해 8월 1일 7개사가 처음으로 발행업체로 지정됐다. 이후 올해 7월 말까지 12개사가 추가로 지정돼 현재 19개사가 상품권을 발행 중이다. 이 과정에서 18개 업체는 신청서를 냈지만 탈락했다. 이들 탈락업체는 "상품권 발행사로 지정된 곳 가운데 일부는 무자격 업체인데 어떻게 심사를 통과했는지 모르겠다"며 로비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본지는 탈락 업체 관계자들을 직접 만나 그들의 주장을 들었다.

◆ A업체 실무자="상품권 시장은 '로비의 바다'다. 우리 회사는 대기업의 자회사로 자금력이 충분하고 상품권의 효용성도 높은 편이었지만 두 차례 심사에서 떨어졌다. 정부 고위인사가 심사를 맡은 한국게임산업개발원 측에 전화로 압력을 넣었다고 들었다. 우리 상품권이 지정될 경우 거래를 하자는 상품권 총판업자들의 요청을 거절했는데, 이들이 모 국회의원에게 로비를 했다고 하더라.

상품권 발행 업체마다 3~4명의 국회의원 보좌관이 붙어 있다고 보면 된다. 정치자금을 받고 뒤를 봐주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지난달 말 당정회의에서 경품용 상품권을 폐지하겠다는 발표가 나온 뒤 전혀 알지 못하는 정치인에게서 연락이 왔다. 상품권 제도를 유지해 줄 테니 '후원하라'는 것이다.

일부 업체는 조폭과 관련 있다. 조폭과 연관된 총판에서 상품권 업체에 '우선 상품권을 발행해 넘기면 상품권 대금을 주겠다. 이 돈으로 지급 준비금을 마련하면 된다'고 제안을 한다. 실제로 조폭의 돈을 빌려 지정 심사에 통과한 업체들이 있다."

◆ B업체 사장="문화관광부와 한국게임산업개발원의 파워가 대통령보다 더 세다는 말이 공공연히 나돌았다. 어떤 업체는 로비자금으로 50억원 이상을 쓰고 심사를 통과했다고 한다. 우리는 탄탄한 기업이라 걱정하지 않았는데 여러 번 심사에서 떨어져 보증확인서를 내준 서울신용보증보험에서도 영문을 모르겠다고 할 정도였다. 한국게임산업개발원이 납득이 안 가는 트집을 계속 잡았다. 회계사 사무실에서 회계를 하고 있는데도 자체 회계를 안 한다고 지적했다. 가맹점이 200군데가 넘는데도 확인이 안 된다고 했다. 또 전산실의 출입문 보안이 허술하다고 해 무인경비 장치까지 설치했는데 탈락했다."

◆ C업체 대표="무자격 업체가 상품권 발행업체로 지정받을 수 있도록 한 여권 실세가 압력을 행사했다는 것은 업계의 상식이다. 업체 관계자들은 일이 안 풀릴 경우 '○○○을 찾아가 리베이트를 주자'는 말을 농반 진반으로 자주 했다. 그가 뒤를 봐주고 있는 업체의 이름도 구체적으로 떠돌았다. 지금 일부 상품권 발행 업체는 상품권 폐지를 막으려는 여야 전방위 로비를 하기 위해 자금을 모으고 있다. 한 상품권 발행업체는 전 정권의 실력자와 관련 있고 문화부 직원이 운영에 관여한다고 소문이 났다."

◆ D업체 간부="성인오락기 쪽은 정치권 인사가 없지만 상품권 쪽은 종이와 돈을 바꾸는 사업이다 보니 정치인이 많이 관련돼 있다. 상품권 발행업체들은 성인오락실용 경품용 상품권이 아니면 살아남기 힘들기 때문에 로비에 목숨을 걸 수밖에 없다. 한 업체는 올 초 사장이 구속돼 발행이 일시 정지됐는데 정치권 로비로 살아났다고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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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호.김호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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