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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여 중심잡기 「강철카드」/「박태준 민정호」 출범 의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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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TK 빠지고 5공 인물 복귀/박 대표 「경영력」 인정… 정치적 역할 관심
민정당의 새 대표위원으로 박태준의원이 기용되고 사무총장과 총무만을 교체해 박준병총장ㆍ정동성총무로 팀을 짠 것은 노태우대통령이 5공청산 이후 정국운영의 선결과제를 흐트러진 민정당과 범여권의 결속에 두고 있음을 반증한 것이다.
특히 그동안 당내에서 여러가지 잡음을 내던 TK(대구­경북) 세력이 철저히 배제되고 정계개편 추진에 적극적이던 인사들을 제외시킨 채 5공 색깔의 인물들로 당 지도부를 짠 것은 대야 관계나 정계개편보다는 우선 5공청산 과정에서 갈가리 찢긴 민정당의 분열상을 수습하는 게 초미의 과제임을 드러낸 것이다.
그동안 전두환 국회증언의 실현과 정호용 밀어내기 과정에서 민정당 내부에서는 서명파동이 일어나는 등 당내 세력간의 분파 현상과 대립ㆍ갈등이 노골적으로 드러났고 노대통령의 지도력에 대한 도전적인 요소들도 그대로 노출됐다.
더욱이 박준규 전대표의 당해체 발언파동은 앞으로 개헌논의가 본격화될 경우 당이 뿌리째 흔들릴지도 모른다는 의구심을 낳게 했다.
앞으로 전씨가 백담사에서 하산해 당 밖에 새로운 정치적 영향권을 만들 경우엔 당의 구심점이 나눠질 가능성도 있으며 5공파ㆍ6공파니,강경보수파ㆍ박철언파ㆍ이종찬파 등으로 분파현상이 나타나 당이 크게 흔들릴 가능성도 엿보였다.
따라서 신임 박대표의 기용이나 박준병사무총장의 재기용,당내 보수강경파인 정동성총무의 발탁은 위기상황에 대한 긴급 대응용 처방으로 내놓은 카드라고 할 수 있다.
철강인으로 더 알려진 신임 박대표는 거대한 포철을 배경으로 5공 시절이나 6공에 들어와서도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해온 막후의 인물이었다.
그는 계속 막후에 남아 있고 싶어했고 막후의 역할이 대단히 큰 것으로 평가되고 있음에도 굳이 무대 위로 올라가 스폿라이트를 받게 된 것은 가용자원이 소진된 민정당 사정으로서는 거의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고 할 수 있다.
박대표는 전씨와는 사돈간일 뿐 아니라 5공청산의 합의 과정에서 노­전 사이를 잇는 통로역할을 했을 정도로 양측 모두와 가깝다. 전씨의 국회증언 실현 마지막 설득 과정에서 백담사 측근들의 반대로 노­전간의 감정이 한껏 악화됐을 때 이를 푸는 역할을 해냈을 정도다.
그의 기용이나 군 출신인 박준병,5공 골수파인 정동성의원 등의 당직 임명은 백담사측의 입장을 고려한 것으로 해석돼 전씨측의 섭섭한 감정을 상당히 진정시킬 수 있을 것이며 박대표팀은 전씨 하산 후에도 노­전간의 가교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민정당의 새 당직팀은 정호용 밀어내기 과정에서 나타난 당내 군출신등 보수강경파의 반발이나 TK의 내분 등 당내 갈등을 진정시키기 위한 진용이기도 하다.
박대표 자신이 TK 내부의 비판세력에 대해 상당한 영향력을 갖고 있을 뿐 아니라 한때 정호용 진영에서 당지도부에 반발했던 정동성의원을 총무에 기용한 것도 정호용파와 이에 동조했던 5공파를 달랜다는 같은 맥락에서 나온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민정당의 새 팀이 정호용 파동 과정에서 거세게 일어난 친ㆍ인척 배제주장에 대해 어떻게 대처할지 주목된다.
그동안 당내에 사조직인 월계수회를 공공연히 키워 현역의원들의 반감을 불러일으켰던 박철언정무장관이나 당외 김복동씨의 영향력을 배제해야 한다는 소리가 높았었다.
박대표팀은 어떤 형식으로든 이런 요구를 수용하지 않을 수 없는 입장이다.
때문에 박대표팀은 노총재의 친정체제 강화를 내세우고 그 우산 속에서 당내 여러 세력을 적절히 안분하는 당운영 방식을 취할 것으로 보인다.
민정당의 새 팀이 철저히 여권 내부용이기 때문에 이들이 정계개편의 바람을 타고 있는 4당체제에서 대야관계를 어떻게 풀어갈지 주목된다. 혹시 강성 색깔의 인물들을 기용한 것이 야당에 경계심을 주고 당내 온건파의 반발을 살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특히 박준규 발언파동의 여파로 야당과 정계개편 논의를 깊숙히 추진해왔던 인사들이 거의 배제됨으로써 공식채널을 통한 민정당의 대야관계는 실무적인 수준에 그칠 공산이 크다.
그러나 박대표는 그동안 막후 영향력을 행사하는 과정에서 야당의 3김 총재와는 상당히 진득한 관계를 유지해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박대표는 또 포철회장으로서,한미의원연맹 회장으로서 민정당뿐 아니라 야당의원들에게도 음으로 양으로 많은 배려를 해왔으므로 대야관계는 뜻밖에 원활하게 풀려나갈 수도 있다.
다만 눈앞의 현안으로 떠오르고 있는 정계개편 문제에서는 민정당이 공식적인 창구보다는 이미 여러 수준에서 이뤄지고 있는 막후 경로를 그대로 활용하는 형식이 될 것으로 보인다.
새로운 당직에서 역시 가장 주목되는 것은 박대표의 앞으로의 정치적 역할이다.
박대표의 정치역량은 아직 미지수다.
그는 스스로 「전문 경제인」을 자처하고 포철회장 겸직을 주장하는 등 정치색깔을 가급적 덜 풍기려 하고 있다.
그러나 박정희의 3공 이후 줄곧 권력의 주변에서 맴돌아온 그의 솜씨나 경영관리면에서 보여준 카리스마적 장악력을 어떻게 발휘해나가느냐에 따라서는 민정당의 새로운 대체세력으로 부상할 소지도 없진 않다.<김영배기자>
◎박태준 새 민정대표 일문일답/정계개편은 좀 공부한 뒤 봅시다.
『저하된 정치의 신뢰를 회복하는 게 급선무입니다.』
포철명예회장으로서 「철의 사나이」로 더 알려진 박태준 신임 민정당 대표위원은 5일 이같이 취임소감을 밝히고 정계개편 문제에 대해선 『공부한 뒤 얘기하겠다』며 언급을 회피했다.
―왜 대표위원에 임명됐다고 봅니까.
『내자신 전문적 직업 정치인이 아닙니다. 내 능력이 당을 대표할 수 있을지 임명 때까지 회의적이었습니다.』
―당장 정계개편 문제가 정가의 주요 이슈가 되고 있는데요.
『오늘 신문에서도 야당총재가 그 얘기를 한 것을 보았습니다. 야당의 뜻이 어디 있는지를 알아보고 우리당의 생각도 들어봐야겠습니다. 공부한 다음에 얘기할테니 기다려 주십시오.』
―당 내분ㆍ알력 등 내부문제가 심상치 않은데요.
『5공청산문제를 둘러싸고 문제가 있는 듯 보였지만 그것이 결속을 깼다고까지는 생각지 않습니다.』
―야당총재들 특히 JP(김종필공화당총재)와는 가까운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데….
『3야당 총재 모두를 존경하고 있습니다. 다 얘기를 나눌 수 있는 입장이지요. 제철소를 공화당 때 만들었으니 JP하고는 접촉이 많았지요.』
―포철회장직은 어떻게 하실 예정입니까.
『당분간 겸직은 불가피할 것 같습니다.』
―대표위원 임명이 백담사와 어떤 관계가 있다고 보십니까.(박대표의 막내딸 경아씨(25)가 87년12월29일 전두환 전대통령의 2남 재용씨와 결혼해 사돈간이다)
『모릅니다.』
박대표는 67년 12월 포철설립 준비위원장에 취임,81년 2월까지 14년간 사장,그 후는 회장으로 한자리만을 지키며 포철신화를 낳았다. 부인 장옥자씨(60)와 1남4녀.<김현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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