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사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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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예심을 거쳐 넘어온 평론은 모두 16편. 시론과 소설론이 정확히 반반씩이었다. 전반적인 수준이 매우 높고 그자세가 진지했다는 점, 이론·연구의 글들이 대폭 줄고 실제비평의 작업이 압도적이라는 점, 해체시론과 월북작가론이 최인훈의『광장』론과 함께 각 두편씩이라는 점등이 오늘의 우리 비평계의 동향을 짐작케 하며 그것의 90년대적 전개에 대한 기대를 가능케 하는듯 싶다.
선자에게 특히 주목되는 다음 다섯 편의 독후감은 이렇다. 『책읽기와 꿈꾸기로서의 시학』(김용희)은 독서행위론·낯설게 하기등의 현대적 방법론으로 80년대의 해체시들을 재미있게 읽어내고 있으며, 『역동적 생성의 세계』(승회)는 동양, 특히 불교적 인식론으로 정현종의 시들을 보고 있어 대조적 접근법을 보인다. 그러나 전자는 좀 산만하다는, 후자는 그 인식과 분석하는 시 사이에 격의가 개입한다는 느낌을 주었다.
『상징의 삼각공간, 그 초월 지향의 구조』(윤성희)는 분단 소설, 또는 지식인 소설로만 틀지어 평가하는 최인훈의 『광장』을 밀실-광장-바다라는 상징구조로 분석하여 남-북-중립국이라는 정치적독법에 또 하나의 의미차원을 겹치게 한 흥미있는 작업이다. 이로써 작품 주인공의 자살의 진의가 해명되고 『광장』의 문학적 성과는 크게 증폭된다. 『삶의구조, 말의 논리』(이득재)는 80년대의 의사소통체계의 변화가 리얼리즘의 또 다른 가능성을 창출했다고 보고 그 대표적인 예로 서정인의『달궁』을 들고 있다.
이 까다로운 소설에 대한 이글의 문체분석은 매우 치밀하고 정확하며 신선하다. 「새로운 이야기양식의 가능성」이 『달궁』에만 한정됨으로써 일반적 환상과 개별적 작업간의 관계에 대한 문제가 틈으로 개입하고 있지만 이 분석방법은 우리비평에 매우 유용한 접근으로 가능할 것이다.
『해체, 그 자유로움의 서정』(신현철)은 박남철·황지우의 이른바 80년대 해체시 작가들에 대해 그들의 「시와 삶의 동질성 회복」의 성격을 지목하면서 개인 내면으로의 침잠과 시의식의 사회적 확산이라는 대비적 양상에도 불구하고 「사랑」에 도달하려는 두 시인의 열망을 끌어내고 있다.
위 세편은 어느 것을 집어도 훌릉한 「당선작」이 될 것들이다. 그러나 꼭 한편을, 선자 혼자 결정하는 무리를 감수하지 않으면 안된다. 새 비평가 신현철씨는 다른 두 분에게 미안한 인사를 드려야 할 것이다.
심사위원 김병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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