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워!중견기업] 아들로 이어진 '동업 에너지' 50년 흑자 일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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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룹의 모태 사업은 한참 전에 사양산업이 돼 버린 연탄 제조.판매. 게다가 여간해선 성공하기 힘들다는 동업 체제. 어찌 보면 악조건이 많았다. 하지만 이 그룹의 성장엔진은 꺼지지 않았다. 모기업은 1955년 탄생한 뒤 지난해까지 50년간 줄곧 흑자를 냈다. 연탄 사업이 내리막길을 걷자 도시가스 업체를 인수해 새 에너지 사업에 진출하는 등 변신을 하며 사세를 키웠다. 일찌감치 인도네시아 탄광 개발에 나서 '자원 안보에 기여하는 기업'으로서의 성과도 올렸다. 지금은 매출 2조5000억원(2005년)의 어엿한 중견 그룹으로 자리 잡았다. 2대에 걸친 50년 동안의 끈끈한 동업 관계도 변함이 없다. 삼천리그룹 이야기다. 고(故) 유성연.이장균 회장이 힘을 합쳐 세운 삼천리그룹은 현재 그들의 2세인 이만득(50) ㈜삼천리 회장과 유상덕(46) ㈜삼탄 회장이 나란히 이끌고 있다.

사옥 높이도 똑같이 10층 … 모든 걸 함께 나눴다

"이장균 회장님 댁과는 이웃에서 서로 '큰 집', '작은 집'이라 부르며 지냈다. 어렸을 적에는 우리 집은 유씨인데 왜 작은 아버님은 이씨인지 의아해 했다." 유상덕 ㈜삼탄 회장은 '삼천리그룹 50년사'에서 이렇게 회고했다. 이만득 ㈜삼천리 회장은 "아버지는 내게 '유성연 회장과 나 중 한 쪽이 먼저 세상을 떠나면 남은 사람이 유족을 가족처럼 보살피겠다고 약속했다. 너도 그렇게 행해다오' 라고 늘 말씀하셨다"고 말했다. 동업 경영으로 그룹을 세운 고(故) 유성연.이장균 회장의 친분을 짐작케 해주는 대목이다. 삼천리그룹 창업자인 두 선대 회장의 인연은 1947년 시작됐다.

'의형제 경영' … 파업·적자 몰라요

함남 함흥에서 당시 소련군을 대상으로 식료품 장사를 하면서 만나 친분을 쌓았다. 1917년생으로 다섯살 위인 유 회장이 형이 됐다. 6.25가 나면서 헤어졌다가 피란와 남에서 다시 만났다. 경북 포항(유 회장)과 경남 거제(이 회장)에서 장사를 하면서 서로를 찾다가 유 회장이 이 회장의 매형을 우연히 만나 소식을 알게 됐다. 그러다 서울에 올라와 55년 10월 1일 동업으로 '삼천리연탄기업사'를 세웠다. 그게 삼천리그룹의 효시였다.

70년 탄광회사 삼척탄좌(현 ㈜삼탄)을 인수했다. 연탄 제조뿐 아니라 원료사업에까지 발을 뻗쳐 '그룹'의 형태를 갖추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내부적으로 분업 체제를 갖췄다. 이 회장이 삼천리를, 유 회장이 삼척탄좌를 맡았다. 이런 분업 구도는 2세 회장들이 그룹을 운영하는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다. 82년 그룹은 재도약의 발판을 마련했다. 삼천리가 경인도시가스를 인수하고, 같은 해 삼탄이 인도네시아 유연탄 광산 개발에 착수한 것. 이를 바탕으로 삼천리는 국내 1위 도시가스업체가 됐고, 삼탄은 세계 7대 석탄 광산 중 하나인 인도네시아 파시르 탄전을 확보했다. 이를 통해 지난해 매출 2조5000억원의 에너지그룹으로 발돋움했다. 연탄사업은 2002년 서울 이문동 공장을 매각하면서 완전히 손을 뗐다.

그룹의 모태인 ㈜삼천리는 창립 이후 50년간 한번도 적자를 내지 않았다. ㈜삼천리측은 이를 "동업 경영의 힘"이라고 말한다. 신중한 유 회장과 외향적이고 추진력이 강한 이 회장의 장점이 결합돼 나온 '시너지'라는 설명이다. 두 창업주는 동업을 시작하면서 이른바 '5대 원칙'이란 것을 세워 지켰다. ▶모든 기업에 두 집안이 같은 비율로 투자하고 ▶수익도 똑같이 나누며 ▶한쪽이 반대하면 주요 의사결정을 할 수 없다는 것 등이다.

선대 회장들은 이를 문서로 만들어 사무실 금고에 간직했다가 2세들에게 물려줬다. 2세들도 5대 원칙은 금과옥조로 삼고 있다. 심지어 이씨 집안이 이끄는 삼천리 여의도 사옥과 유씨 집안의 삼탄 대치동 사옥도 10층으로 높이를 맞췄을 정도다. 삼천리그룹에는 노사분규도 거의 없었다.

다음은 그룹 관계자가 전한 일화. "70년대 초반, 병으로 아내를 잃고 두 아이만 남은 직원이 있었다. 소식을 들은 고(故) 이장균 회장이 직접 재혼 중신에 나섰다. 옛부인의 아이를 사랑하며, 자신은 아이를 낳지 않을 여성을 물색해 재혼시켰다. 그 직원은 화목하게 살다 지금은 퇴직했다."

삼천리그룹은 지난해 창립 50주년을 맞아 비전을 발표했다.

2010년 그룹 매출액을 지금의 두배인 5조원으로 키운다는 포석이다. ㈜삼천리 관계자는 "에너지 사업을 더 늘리고 인수.합병(M&A)을 통해 정보기술(IT).유통 등 신사업 분야에도 진출할 것"이라고 밝혔다.

권혁주 기자

전문경영인 끌고 창업 2세들 밀고

또다른 원동력 '분업 경영'

삼천리는 철저한 전문 경영인 체제다. 창업 2세인 이만득(50) ㈜삼천리 회장과 유상덕(46) ㈜삼탄 회장은 기업을 책임지는 '대표이사'가 아니다. 이 자리는 전문 경영인들에게 맡겼다. 그룹의 전문 경영인들은 50대 후반~60대 초반으로 이.유 회장보다 경륜이 앞선다. 그룹 관계자는 "주요 결정에는 두 회장이 관여하지만 웬만한 일은 완전히 전문 경영인에게 일임하고 있다"고 전했다. 모기업이자 그룹 주력사인 ㈜삼천리는 이영복(62.사진(上)) 사장이 이끌고 있다. 삼천리가 도시가스 사업을 본격적으로 펼친 1985년에 대림그룹에서 스카우트됐다. 20여년간 도시가스 사업에 전념하며 ㈜삼천리를 국내 1위 도시가스업체로 키웠다. 그룹의 해외 석탄 개발은 강태환 (58)㈜삼탄 사장이 진두지휘한다. 삼천리 기술투자 상무 등 그룹 요직을 거쳐 99년 ㈜삼탄 부사장으로 부임한 뒤 2001년 사장이 됐다. 2001~2005년 이 회사의 인도네시아 탄광 개발 현지법인(KIDECO) 대표이사를 지낸 이찬의 부사장은 현재 서울 본사에 복귀해 강 사장을 도와 신규 해외 자원개발 사업 전략을 짜고 있다. 그룹 재무통은 김경이 삼천리ENG 사장이다. 대한석탄공사에 재직하다 84년 ㈜삼천리 경리부장으로 그룹에 합류했다. 그룹이 미래 주력 기업 후보로 육성하는 삼천리제약은 김태성(61.사진(下)) 사장이 1994년부터 이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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