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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계 인맥 ① 부산상고] 한국 돈줄 쥐락펴락 ‘금융사관학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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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중앙 설 연휴를 10여 일 앞두고 있던 지난 1월16일 서울 양재동의 한 일식집. 취임한 지 2달여가 지난 황두열 한국석유공사 사장과 신헌철(주)SK 사장이 마주앉았다. 당시 모임에 석유공사 측에서는 서문규 부사장과 김진석 해외사업본부장, 김관섭 비축본부장이 자리를 함께했으며 신 사장은 안희중 트레이딩사업부장과 김현무 석유개발사업본부장을 대동했다.

석유공사와 (주)SK는 고유가시대를 맞아 우리 경제의 화두로 떠오른 해외 자원개발의 주도권을 놓고 보이지 않는 마찰을 빚던 터였다. 특히 SK가 해외 자원개발에 대한 홍보를 강화하면서 사업 성과를 놓고 두 회사가 '장외 심리전'을 벌이기도 했다.

게다가 석유공사 안팎에서는 정부의 공기업 민영화 방침에 따라 석유공사가 민영화될 경우 SK가 인수할 것이라는 소문까지 돌고 있었다. 공교롭게도 지난해 11월 새로 취임한 황 사장이 (주)SK에서 석유사업부문장과 부회장까지 지낸 인물이라는 점도 이런 추측에 힘을 보탰다. 이는 석유공사 노동조합이 황 사장의 취임을 극렬 반대한 이유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이날 양측은 민영화나 인수합병(M&A)에 관해 아무런 이야기도 나누지 않았다. 대신 해외 자원개발이라는 공통분모를 위해 힘을 모으자는 결의를 다졌다. 먼저 신 사장이 "석유공사를 민영화할 경우 SK가 석유공사를 인수할 것이라는 오해가 생겼던 것 같다"며 "이런 오해를 불식하고 두 회사가 협력해 나가자"고 제안했다. 이에 황 사장도 "SK가 해외 자원개발사업을 적극 홍보하니 석유공사가 마치 주도권을 빼앗긴 듯 자존심이 상했던 부분이 있었던 것 같다"며 "오해가 풀렸으니 이제 일만 열심히 하면 되겠다"고 화답했다.

양사는 해외 자원개발에서 '업체 간 협력을 통해 한국형 자원개발사업 모델을 만들자'는 산업자원부의 방침에 따라 광권 확보를 위한 컨소시엄 구성을 확대하기로 했다. 비축사업의 경우 석유공사의 비축유 트레이딩 활성화, 국제 비축사업 확대 등을 SK가 적극 지원하고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발굴하는 데 협력할 전망이다.

대립각을 세울 것으로 예상됐던 양측의 회동이 '파트너십 구축'이라는 예상 밖의 결과로 이어진 데는 30년 넘게 이어온 황 사장과 신 사장의 친분이 큰 몫을 했다. 올해 63세인 황 사장과 두 살 아래인 신 사장은 고등학교.대학교 선후배 사이다. 여기에 SK에서도 오랜 시간 함께 근무하면서 두 사람은 나이를 뛰어넘는 우정을 쌓아 왔다. 황 사장은 부산상고(현 개성고) 49회, 신 사장은 51회 졸업생이다. 또 황 사장은 부산대 경영학과 62학번, 삼수 끝에 대학에 진학한 신 사장은 같은 학과 66학번이다.

부산상고 시절 동기인 이성태 한국은행 총재와 1, 2등을 다퉜던 신 사장은 두 번이나 쓴맛을 안겨줬던 입시생 시절을 아프게 기억한다.

"1963년 겨울이었습니다. 지금도 절친하게 지내는 이성태 총재와 함께 서울대 상대에 원서를 냈어요. 그런데 이 총재는 수석으로 떡하니 붙었는데 나는 미역국을 마시고 말았습니다."

그 시절 부산상고 정문에는 이 총재의 수석합격을 축하하는 현수막이 1년 내내 걸려 있었다고 한다. 이 총재는 당시 "헌철아, 너무 실망 말아라. 내년에 시험 다시 쳐 서울에서 만나자"고 위로했지만 신 사장은 1964년의 재도전에서도 고배를 마셨고, 결국 서울유학의 꿈을 접고 말았다.

노무현·이성태·이학수…'백양장학회 3인방'

두 사람이 고3 수험생이던 시절 부산상고에서는 30년 후 '거물'로 성장할 두 학생이 신 사장, 이 총재와 함께 '백양장학회' 멤버로 선발됐다. 백양장학회는 부산상고 출신 기업가인 고(故) 김지태 삼화고무 창업주가 후학을 위해 설립한 장학재단으로, 2학년에서는 이학수 삼성 전략기획실장(52회)이, 1학년에서는 노무현 대통령(53회)이 장학생으로 선발됐다.

이들뿐 아니라 백양장학회는 부산상고가 현재 한국 경제계를 이끄는 한 축으로 자리 잡게 만든 유력 인사를 상당수 배출했다. 김지완 현대증권 사장(51회), 옥치장 한국증권선물거래소 유가증권시장본부장(51회) 등이 같은 시기의 장학생들이다. 30년이 지난 지금의 사회적 지위만 놓고 본다면 김 회장은 당시 '될성부른 떡잎'을 제대로 골랐던 셈이다.

이들 중 이성태 한국은행 총재는 고교시절 노 대통령이 유독 자랑스러워한 선배인 것으로 전해진다. 금융계에서는 "이 총재는 대통령을 몰랐어도, 대통령은 언제나 그를 알았다"는 말이 있을 정도.

노 대통령이 사석에서 이 내정자에 대해 언급했다는 일화도 꽤 있다. 부산지역 '야구 라이벌'인 부산상고와 경남상고가 야구시합을 할 때면 당시 노 대통령이 경남상고 응원단을 향해 "서울대 상대에 수석합격한 이성태를 알고 있나"라고 외치며 약을 올렸다는 이야기까지 들린다.

노 대통령의 지나친(?) 신뢰 덕분에 오히려 이 총재는 한국은행 총재 선임 당시 노 대통령과의 동문 관계가 걸림돌로 작용할지 모른다는 우려까지 받았다. 박 승 전 총재의 임기만료가 다가올 당시 이 내정자는 일찍부터 최고의 후임 총재감으로 꼽혔다. 원리원칙에 충실한 선비형, 깐깐한 안정 우선론자로 한은의 독립성과 통화정책의 중립성을 지키는데 최고의 적임자라는 것이 한은 안팎의 중론이었다.

또 한은 노조가 직원 1,200여 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후임 총재 후보에 대한 선호도 설문조사 결과 이 총재는 전체 직원 45.6%의 지지를 받아 1위에 오르기도 했다. 그러나 금융계 인사들은 '부산상고 출신이라는 점이 역차별 요인이 되지 않을까' 염려하는 분위기가 팽배했다. 이 총재는 최근 노 대통령의 경기 하강 우려 표명에도 금리인상을 단행하며 소신 있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동안 부산상고 출신들은 주로 금융계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실업계 고등학교의 특성이 크게 작용한 탓이다. 1960 ̄70년대 부산상고를 졸업한 뒤 은행 등 금융권에 취직하는 것은 저소득층 자제들의 대표적 입신양명 코스였다. 부산상고 졸업생들은 부산.경남 금융권과 기업체 경리분야 책임자로 속속 뻗어나갔다.

권경수 전 서울은행 상무(33회), 최연종 전 한국은행 부총재(43회), 안시환 전 삼성생명 사장(45회), 유평렬 일은증권 고문(48회) 등은 원로급 부산상고 출신 금융계 인사다. 작고한 고태진 전 축구협회장(26회)이 조흥은행 행장으로 있을 무렵에는 조흥은행은 물론 상업.제일.서울은행 등 4대 시중은행장이 모두 부산상고 출신으로 채워진 적도 있었다. 한국의 돈 흐름을 부산상고 출신들이 좌지우지하던 시절이 있었다는 말이다.

요즘도 시중은행에는 부산상고 출신들의 친목모임인 '백은회(白銀會)'가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은행원들 사이에 백은회를 모르는 사람은 드물 정도인데, 한때는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부산상고의 상징나무가 백양목으로, 백은회라는 이름은 바로 여기서 유래한 것이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 대졸자와 해외유학파 등 고급인력이 대거 금융권에 유입되면서 부산상고는 은행장 등의 금융기관장을 배출하는 일이 드물어졌다. 그런데 노무현 정부가 들어선 뒤 상황이 달라졌다. 노 대통령 취임 전인 2002년까지 한 명뿐이던 금융기관장급 인사는 현재 4명으로 늘었다.

이성태 한국은행 총재, 김장수 전국은행연합회 부회장, 이장호 부산은행장, 김지완 현대증권 사장 등이 줄줄이 정상의 자리에 올랐다. 이로 인해 금융권에서는 '하버드상고'라는 말이 생겨났다. 부산상고 출신들이 금융권의 요직에 대거 약진하는 현상을 빗댄 말이다.

한때 4대 시중은행장 자리 석권하기도

김옥평 전 한미은행 부행장(54회), 이수희 증권예탁원 감사(55회), 김충곤 와코비아은행 서울지점장(56회) 등도 두각을 나타내는 부산상고 출신 금융인이다. 이 외에도 노대통령이 당선자 시절 친분을 언론에 소개한 바 있는 이충정 SC제일은행 상무(53회)는 2004년 주택금융마케팅부 업무추진역에서 정부 및 국공기업을 주고객으로 하는 기관영업부 상무로 전격 승진한 데 이어 현재는 소매영업지원부 담당 임원을 맡고 있다.

국민은행의 김정민 부행장(55회) 또한 2002년 역삼동지점장에서 검사팀장을 거쳐 2004년 인사담당 부행장으로 승진한 데 이어 현재는 업무지원그룹담당 임원으로 재직 중이다. 김 부행장은 김대평 금융감독원 부원장보(56회 )와 함께 노무현 대통령의 대선자금 문제에 연루돼 검찰 조사를 받는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국민은행에서는 김 부행장에 이어 이경호(60회) 동부산지역본부장, 팽진선(61회) 동부지역본부장, 최행현(62회) 신용카드마케팅본부장 등이 부산상고 출신이다. 우리은행에서는 선환규 주택금융단장(56회)과 변윤오(58회).천정우(62회) 본부장이 부산상고 인맥을 형성하고 있다.

신한은행의 부산상고 인맥은 부산지역본부를 중심으로 형성돼 있는데, 최고참인 최진익(55회) 본부장을 필두로 전영문(58회) 개인고객그룹영업본부장, 손주열(61회) 기업고객그룹본부장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 밖에 최근에는 부산상고 출신이자 노 대통령의 처남인 우리은행의 권기문(60회) 전 주택금융사업단 부장이 임원급인 우리금융 사회공헌사무국장으로 승진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금융계에서 부산상고 출신들의 부상은 이에 그치지 않는다. 최근에 금융권의 주목을 받는 인물은 김수룡(57회) 도이체방크코리아 회장. 김 회장은 최근 이강원 전 사장의 사임으로 신임 사장을 뽑는 한국투자공사(KIC)의 유력한 차기 사장으로 급격히 부상하고 있다. 노 대통령의 부산상고 1년 후배이기도 한 그는 노 정부 출범 초기 대통령자문위원회인 동북아위원회에서 외자유치 업무를 도왔다. 최근에는 요제프 아커만 도이체방크 회장 방한 때 노 대통령과의 면담을 성사시켜 눈길을 끌기도 했다.

부산상고의 막강한 금융계 인맥은 종종 시빗거리를 낳기도 한다. 지난 3월 있었던 부산은행장 선임 때의 부산상고 기수 간 대결은 이를 바로 보여준다. 당시 부산은행장 후보에는 이장호 부행장(52회)과 임채현 부행장(53회), 이상용 전 한국은행 감사 등이 추천됐다. 세 사람 중 두 사람은 부산상고 출신이며, 이 전 감사는 부산고 출신. 이 부행장은 노 대통령의 고교 1년 선배며 임채현 부행장은 노 대통령과 동기다. 이들은 막판까지 치열한 경합을 벌인 끝에 이장호 부행장이 은행장으로 선임됐고, 임채현 부행장은 몇 달 뒤 부산은행 자회사인 부은선물 사장에 올랐다.

공교롭게도 부산상고 출신 두 사람만 CEO 자리를 나눠 가진 셈이 돼 결국 금융계에서 "부산상고가 다 해먹는다"는 볼멘소리가 나오기에 이르렀다. 부산은행장에 앞서 은행연합회 부회장에 선임된 김장수 전 한국기업평가 감사(51회) 역시 노 대통령의 부산상고 선배였다는 사실도 이런 시각을 부추겼다.

금융권 유행어 '부산상고는 하버드상고'

물론 부산상고 동문들은 이런 지적에 고개를 젓는다. "될 만한 사람들이 때를 만나 날개를 펼치는 것뿐"이라는 반론이다. 제2금융권에 재직 중인 부산상고 출신의 S임원은 이장호 부산은행장을 예로 들었다.

"이 행장은 임원 시절 부산시의 금고를 부산은행에 유치한 일등공신입니다. 시 금고는 그때까지 30년 이상 우리은행에서 맡아 운영했죠. 지방은행이 대형 시중은행의 철옹성을 무너뜨리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는 설명하지 않아도 알 것입니다. 더구나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지방자치단체 사이에서는 지역 은행을 못 미더워하는 분위가 역력했어요."

S임원에 따르면 이 행장은 부산은행의 시 금고 유치가 지방자치의 디딤돌이 될 것이라고 설파해 우호적 지역 여론을 조성하는 한편 저명인사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는 '스킨십' 전략을 병행했다고 한다. 그의 끈질긴 노력 끝에 부산은행은 시 금고 유치에 성공했고, 확실한 자립 기반을 잡았다는 것이다. S임원은 이렇게 반문했다.

"발로 뛰며 부산 연고 기업들에서 수천억 원대 프로젝트를 유치한 것이 부산상고 인맥 덕분이라고 할 수는 있겠죠. 하지만 그게 먹힌다면 적어도 부산은행장 자리에는 그 분 만한 적임자가 없다는 방증 아닌가요?"

실제로 이 행장 취임 후 부산은행은 부산지역의 우량 대기업은 물론 서울로 이전한 부산 연고 업체들까지 신규 거래처로 유치할 수 있었다. 상반기 말 기준으로 불과 3개월 만에 부산은행의 수신은 약 1조1,000억 원, 여신은 7,800억 원 불어났다.

이 행장은 부산상고를 거쳐 1965년 최고의 인기 직장이었던 한국은행에 입사해 은행권에 첫발을 내디뎠다. 한국은행에서 외환업무를 맡다 외환은행으로 자리를 옮겨 약 6년간 몸담았다. 부산은행과 인연을 맺게 된 것은 과거 한국은행에서 함께 일하던 박태주 전 부산은행장이 그에게 스카우트 제의를 하면서부터다. 당시 부산은행 상무였던 박 전 행장은 외환업무 개시를 앞둔 부산은행에서 개척자로서 마음껏 꿈을 펼쳐 보라며 스카우트를 제의했다.

이 행장은 부산상고 동문인 강병철 롯데 자이언츠 야구단 감독(52회)과 지금도 자주 만나는 절친한 사이다. 송장식 동원수산 사장(52회)과도 가까워 최근 해적에 납치됐던 동원호 선원들이 풀려났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기쁜 마음에 "그동안 마음고생 많았다"며 위로의 전화를 했다고 한다.

기업 쪽을 들여다봐도 부산상고 출신은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다만 오너보다 CEO나 참모급 인사가 더 많이 포진하고 있다. 그렇다고 부산상고 출신 중 자수성가한 인물이 드물다는 말은 아니다. 삼성이나 LG처럼 대그룹 반열에 오르지 못했을 뿐 중견기업 오너 중에는 부산상고 출신이 상당수 있다. 대표적 인물이 상장을 추진 중인 두원중공업의 김찬두 회장(39회). 자동차 에어컨 부품이 주력인 두원중공업은 기계부품 분야에서는 대기업 못지않은 기술력을 인정받는 회사다.

김 회장은 부산상고 졸업 후 한남고속버스(현 광주고속).한국야쿠르트 등에서 일하다 1974년 한국디젤공업을 설립해 창업의 길로 나섰다. 공고가 아닌 상고 출신인 그가 자동차부품회사를 세운 것이다. 김 회장의 후배인 한 부산상고 동문은 이렇게 회고한다.

"당시에는 다들 제정신이 아니라고 했죠. '공돌이' 출신도 아니면서 기계 만드는 일을 어떻게 하느냐며 동문들이 나서서 뜯어말리기도 했는데, 김 회장의 의지가 워낙 확고했어요. 동문들 만나면 '일마들아, 앞으로 한 집에 차 한 대씩 있는 시절이 올 끼다. 두고 보그래이' 그러더군요."

김 회장의 예상은 적중했다. 1980년대 한국 자동차의 수출시대가 열리고, 현대.대우 등 자동차 제조업체의 외형이 확대되면서 자연스럽게 부품업체도 호황을 맞았다. 덕분에 김 회장은 1989년 대동중공업(현 두원중공업)을 인수하는 등 점차 기업 규모를 키워나갈 수 있었다. 현재 두원그룹은 두원정공.두원중공업.(주)두원.두원공조 등의 계열사를 거느린 중견기업으로 성장했다. 두원중공업은 대한항공.한화.두산인프라코어 등과 함께 최근 발사된 아리랑 2호 위성의 부품 개발에 참여해 화제를 뿌리기도 했다.

재계에는 오너보다 CEO급 많아

부산상고를 대표하는 CEO급 재계 인사로는 역시 이학수 삼성 전략기획실장을 꼽을 수 있다. 이 본부장은 노 대통령의 한 회 선배다., 이 본부장 외에도 52회 졸업생으로 CEO로 성공한 인물이 적지 않다. 송장식 동원수산 대표와 양천구 남성해운항공 대표가 이 본부장과 동기다.

4.19가 나던 1960년에 부산상고에 입학한 50회 졸업생들의 활약도 활발하다. 오의명 아티우드 사장, 오의조 아티프랜 대표, 김대수 월드전자 사장, 김성학 이오전자 사장, 차영호 대성산업 대표 등이 50회를 대표하는 재계 인사다. 장상건 동국산업 회장(41회), 신문석 농심 부회장(42회), 김영재 한국후지필름 대표(42회), 배광우 DHL코리아 회장(43회), 오용한 롯데월드 대표(45회) 등도 재계에서 이름을 날리는 부산상고 동문이다.

이밖에도 신근철 신라해운 대표(54회), 김종열 우모콜렉션 부사장(54회), 이남두 두산중공업 사장 (55회), 문병욱 썬앤문그룹 회장(57회), 최주식 로지피아 사장(58회) 김남진 호성기업 대표(60회), 윤진무 하이코통상 사장(63회) 등이 신흥 재력가로 성장하는 부산상고 출신 인사들이다.

이들 중 이남두 두산중공업 사장은 두산그룹 형제들 간의 분쟁으로 검찰 수사가 진행되던 지난 2월 두산중공업 CEO로 투입돼 눈길을 끌었다. 한국중공업 출신인 이 사장은 1976년 한국중공업에 입사한 후 두산엔진 부사장, 두산엔진 사장을 역임하는 등 중공업분야에서 경력을 쌓은 인물이지만, 시기가 시기이니만큼 구구한 억측에 시달려야 했다.

40대 초중반 졸업생 중에서는 조운호 전 웅진식품 부회장(68회)이 가장 인지도가 높은 인물로 꼽힌다. 1990년 웅진그룹에 입사해 38세 때인 1999년 사장에 오른 조 전 부회장은 '아침햇살' '초록매실'을 히트시키며 음료계에 신토불이 바람을 일으킨 주인공. 특히 2002년 강금실 당시 법무법인 지평 대표 등과 함께 세계경제포럼(WEF)의 '아시아 차세대 지도자 18인' 가운데 한 명으로 선정되는 등 큰 주목을 받았다.

조 전 부회장 외에도 재계에는 때를 기다리는 부산상고 출신 실력자가 많다. 대기업만 들여다봐도 부산상고를 졸업한 임원급 인사가 많이 발견된다. 삼성에서는 상무급에 세 명의 졸업생이 포진해 있다. 삼성 전략기획실에는 차영수 상무가 눈에 띈다. 1983년 삼성물산에 입사한 그는 2000년 삼성전자 국제금융그룹장으로 발탁돼 주목받기 시작했다. 2년 뒤에는 삼성전자 IR담당 상무로 승진하더니 결국 삼성의 핵심 브레인인 구조조정본부에 합류했다. 또 삼성에서는 류 인 삼성전자 컴퓨터시스템사업부 상무보와 정창길 삼성물산 건축사업본부 상무 등이 부산상고 출신이다.

이밖에 조송래 현대차 멕시코공장 법인장과 박유상 현대미포조선 인사총무이사, 허정권 (주)한진 경영재무담당 상무 등이 부산상고를 나와 재계에 몸담은 '젊은 피'들이다.

정치적 입김에 다소 시달리는 공기업에서는 더욱 쉽게 부산상고 출신을 찾아볼 수 있다. 황두열 한국석유공사 사장(49회) 외에도 김지엽 대한석탄공사 사장(45회), 한행수 대한주택공사 사장(50회)이 부산상고를 졸업했고, 경제 관련 부처 중에서는 오정희 감사원 사무총장(54회), 성윤갑 관세청장(56)도 동문이다. 이들 중 한행수 사장은 삼성중공업 건설부문 대표를 지낸 기업인 출신이며, 김지엽 사장은 석탄공사를 떠난 지 9년 만인 2004년 1월 금의환향해 눈길을 끌었다.

정일환_월간중앙 기자 (whan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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