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재신임' 정국] 탄핵 카드 뺀 최병렬 대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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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병렬 한나라당 대표가 14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대표연설을 앞두고 동료 의원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안성식 기자]

한나라당 최병렬(崔秉烈)대표는 노무현(盧武鉉)대통령이 재신임을 묻겠다고 나오자 다소 흔들리는 모습을 보였다. 선뜻 국민투표를 하자고 나섰지만 여론이 盧대통령 재신임 쪽으로 쏠리고, 盧대통령은 연내 국민투표 실시 제안으로 속적속결식으로 밀어붙이자 崔대표는 수세에 몰렸다.

당내에선 "대표가 저쪽의 전략에 말려들었다"는 등의 지적을 받았다. 그런 崔대표가 14일 전세를 뒤집기 위한 반격에 나섰다. 그는 국회 교섭단체 연설에서 최도술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의 비리 의혹에 盧대통령이 관련됐을 수 있다는 점을 짙게 풍겼다.

崔대표는 "盧대통령이 崔씨 비리 사실을 숨기려다 검찰의 수사로 감당할 수 없는 상황이 올 것 같으니까 재신임 카드를 꺼낸 것 아니냐"며 "측근 한명이 대통령 몰래 뇌물 10억원을 받았다고 해서 대통령 자리의 진퇴를 걸었다는 말이냐"고 물었다. 그러면서 "대통령직의 진퇴를 물어야 할 만큼 심각한 崔씨의 비리 내용이 무엇인지 밝혀라"고 요구했다.

재신임 국민투표는 그걸 규명하고 난 뒤의 얘기라고 했다. "대통령이 계속 입을 다물고, 검찰 수사가 미진할 경우 특검을 통해서라도 崔씨 비리와 대통령의 관련 여부를 밝혀낼 것"이라는 으름장도 놨다. "측근 비리가 盧대통령과 관련이 있다면 그것은 재신임 문제가 아니라 탄핵 대상"이라고 못박으며 탄핵소추 가능성까지 열어놓았다.

崔대표의 연설엔 더 이상 盧대통령에게 끌려가지 않고 국면을 전환하겠다는 뜻이 담겨 있다. 국민투표 수용 여부에 대한 판단은 최도술씨 비리 규명 이후로 넘기고, 당분간 崔씨 사건을 캐는 데 집중함으로써 수세를 공세로 바꾸겠다는 것이다. 특검 카드를 내놓은 것도 그 때문이다.

崔대표는 특검을 거치고 나면 국민투표는 의미가 없어질 것이란 생각을 하고 있다고 한다. 특검으로 崔씨 비리를 캐면 盧대통령을 탄핵으로 몰고 갈 수 있다고 판단하는 것이다. 崔대표가 연설 후 기자들과 만나 "대통령이 관련됐다는 얘기를 듣고 있다"고 말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설사 탄핵 대신 국민투표로 가더라도 崔씨의 비리를 규명한 후엔 승산이 있다는 게 崔대표의 계산이다. 그는 기자들에게 "권위있는 여론조사 기관에 따르면 현재 여론이 6대4이지만 투표율 등을 고려하면 5대5라고 하더라"며 "얼마든지 불신임할 수 있다"고 말했다. 崔대표는 이날 연설 원고에 '盧대통령이 재신임을 받을 경우 나는 정계를 은퇴할 것이며, 우리 당 의원들은 의원직을 사퇴할 것'이란 내용을 넣으려고 했다.

盧대통령이 모든 걸 건 만큼 崔대표와 한나라당도 배수의 진을 치고 나선다는 의지를 나타내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뜻을 관철하지 못하고 지도력에 상처를 입었다. 의원총회에서 "盧대통령에 대해 경솔하다고 했는데 우리도 그런 소릴 듣겠다" "우리까지 국민을 협박하자는 말이냐"는 등의 반발이 쏟아졌기 때문이다.

이상일 기자<leesi@joongang.co.kr>
사진=안성식 기자 <anses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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