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4)3년 각고의 흑자올림픽|기적을 낳은 일꾼들(상)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1면

88서울올림픽은 역대 올림픽대회 중 가장 성공을 거둔 대회로 평가되고있다.
참가국이나 선수단 규모에서 사상최대를 기록했을 뿐 아니라 시설·안전·행사·경기진행 등이 거의 완벽했던데다 84년 LA올림픽을 능가하는 흑자를 나타냄으로써 세계각국으로부터 선망의 대상이 되고 있다.
81년 올림픽유치가 결정되자 국내·외로부터 무척 회의적인 반응을 받았던 서울올림픽이 이처럼 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것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각오로 뼈를 깎는 노력을 기울인 사람들의 노력이 있었기 때문.
초창기의 최대 난제는 86아시안게임과 88올림픽의 마스터플랜.
81년 11월 김용식씨를 초대위원장으로 한 서울올림픽 조직위원회(SLOOC)가 출범하고 총리실 산하에 정부지원 실무위원회가 설치되었으나 SLOOC의 방황에다 각 기관간 유기적인 협조부족으로 마스터플랜에 대한 기초적인 작업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이에 따라 정부는 82년 3월 체육부를 발족시켰고 초대장관에 노태우(노태우) 현 대통령이 취임하면서 기초작업이 본격화되었다.
국제체육국의 지원총괄과로 마스터플랜 작성의 임무가 떨어지자 조영승(현 국제국장) 과장을 비롯한 15명의 엘리트 과원들과 전문위원 김예식씨(현 국민체육진흥공단 기획조정국장)가 팀이 되어 마스터플랜을 위한 밤샘작업에 비로소 박차를 가했다.
36개 정부기관과 13개 시·도, SLOOC, 체육회 등 51개 기관으로부터 양 대회에 관한 분야별 계획서를 받은 지원총괄과는 총 소요예산이 무려 14조원에 이르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당시 정부의 1년 예산이 11조5천억원. 각 기관은 차제에 해묵은 숙원사업을 모두 해결하자는 심산으로 마구잡이 계획을 입안했던 것이다.
조 과장과 김 전문위원은 보안을 위해 시내 모 호텔에서 한달 동안 숙식하며 비밀작업을 벌여 국가 5개년 계획에 들어있는 사업과 불요불급한 사업을 우선적으로 제외, 1조4천억원으로 줄였으며 다시 민자유치가 가능한 사업을 배제함으로써 8천8백82억원(직접사업 6천66억·간접사업 2백82억)의 최종예산을 짰다.
이들이 한 달 동안 마스터플랜을 작성하는데는 8절지가 4t트럭 1대 분이나 소요되었다.
마스터플랜은 총괄. 행사·시설·환경·개발·공동 등 6개 부문 6백25개의 사업으로 분류, 일목 요연하게 작성되었으며 8월10일 대통령에게 보고되어 확정되었다.
마스터플랜의 완성에 이어 가장 중요한 재원확보를 위해 SLOOC는 83년 사업단을 발족시켜 초대단장에 체신부장관을 지낸 고 이재설씨를 선임했으나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한 채 1년만에 대우 그룹사장으로 미국에 유학 중이던 젊은 사업가 박세영씨(서우그룹 회장)를 전격 스카우트했다.
박 단장(후에 사업담당 사무차장)은 초기에 사업단을 4국으로 분리, 1국장 이동균씨(현 동화은행 상무, 기념주화·아파트·TV방영권 담당), 2국장 김충환씨(현 경제기획원 국장, 휘장·기념품 담당), 3국장 김명기씨(광고·복권담당), 4국장 김경호씨(현 공단사업 본부장, 입장권담당)로 사상 최대 사업의 추진을 위한 태세를 갖췄다.
그러나 사업분야에 문외한이었던 이들 공무원 출신들은 제대로 방향을 잡지 못한 채 우왕좌왕, 사업실적이 부진했고 박 차장마저 물의 속에 사퇴해 86년부터 TV방영권을 제외한 전 사업이 김경호 국장에게로 넘어갔다. 김 국장은 이때부터 경제관료 답지 않게 뛰어난 사업수완을 발휘, 기대 이상의 엄청난 실적을 올림으로써 흑자올림픽의 전기를 만들었다. 당초 SLOOC는 전체 수입중 50%인 3천4백여억원을 TV중계료로 충당할 계획이었으나 실적이 극히 부진(2천2백47억원), 결국 다른 사업으로 이를 충당해야만 했다.
김 국장을 비롯한 사업국 직원들의 3년간에 걸친 각고의 노력으로 휘장 및 기념품이 1천4백억원, 기념주화가 1천4백60억원, 복권이 1천1백80억원, 광고 및 기타가 2백90억원 등 4천3백억원을 기록함으로써 당초 2천2백50억원 목표의 2배에 가까운 실적을 올렸다.
특히 사업수입 중 30%가 넘는 1천3백여억원을 해외에서 올렸는데 김 국장은 이를 위해 1년의 절반 이상을 해외에서 보내며 세계적 기업인 코닥·코카콜라·덴쓰 등 외국기업들과 줄다리기 협상을 벌여야만했다.
김 국장이 3년 동안 해외여행을 한 것은 50여회로 지구를 14바퀴나 돈 거리였다.
이와 같은 준비작업의 각고를 결실로 이끈 일꾼 중 두드러진 인물은 올림픽 하이라이트인 개·폐회식을 훌륭하게 기획·연출한 이기하씨(공단기념사업 국장).
이 국장은 2년 반 동안의 준비로 인류의 화합과 전진 속에 한국의 전통문화를 조화시킴으로써 역대 올림픽 사상 가장 훌륭한 개·폐회식을 치러냈다. <임병대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