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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5만 되면 찾아오는 불청객에 … 대학들은 괴롭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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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연세대 컴퓨터과학과 4학년생인 정대원씨가 13일 교문 앞에서 8·15 행사 반대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13일 오후 연세대 교정. '○○노동조합' '△△연합회' 등의 이름을 붙인 차량 10여 대가 캠퍼스를 누비고 있었다. 이들 차량은 '8.15 통일축전'을 준비하기 위해 이날 오전부터 교내에 들어왔다. 연세대 측이 경비 직원 20여 명을 동원해 막아 보려 했지만 속수무책이었다. 현장에 있던 경찰도 별다른 조치가 없었다.

이날 한총련 소속 대학생들과 통일연대 등 외부 단체 인사 3000여 명은 대학 측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통일문화 한마당' 등 예정된 행사를 강행했다. 대학 관계자는 "무작정 대형 차량으로 정문을 밀고 들어와 어쩔 도리가 없었다"고 말했다.

대학가가 '불청객'들의 시위로 몸살을 앓고 있다. 특히 8.15 광복절을 앞두고 연세대 관계자들은 바짝 긴장한 상태다. 통일연대가 14~15일 이 대학 교정에서 1만5000여 명이 모인 가운데 '8.15 통일축전' 행사를 열 계획이기 때문이다.

◆ 외부 단체 집회에 강력 반발하는 연세대=외부 단체가 막무가내로 학내에서 집회를 여는 것에 대한 일반 학생들의 반발은 상당하다. 특히 통일축전 행사가 예정된 연세대 홈페이지 게시판 등에 이를 비난하는 글이 쏟아지고 있다. 한 학생은 "공권력이 나서서 시위대가 교정에 들어와 난투극을 일으키는 일이 없도록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최근 연세대에선 외부 단체의 학내 진입에 반대하는 '연세인 권리장전 학생대책위원회'가 조직됐다. 윤한울 전 총학생회장은 "전단지를 돌리거나 1인 시위를 벌여 행사 강행에 맞설 것"이라고 밝혔다.

외부 단체와 학생들이 마찰을 빚기도 한다. 연세대 공대 대학원생 이모(28)씨는 이날 오후 통일연대 소속 관계자들이 교내 가로수에 게시물을 붙이는 것을 보고 "왜 남의 학교 나무를 마음대로 훼손하느냐"고 제지하다가 멱살잡이 직전까지 갔다. 이씨는 "캠퍼스에서 이렇게 난장판을 치고도 아무 제재를 받지 않는 곳은 전 세계에서 우리나라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연세대 비상대책위원회는 이날 성명서를 내고 "교육시설들을 불법적으로 사용하는 일을 즉각 중단하고 학교에서 철수하라"고 요구했다. 이미 교수평의회도 성명서를 내고 통일축전 행사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학교 측은 예정대로 통일축전 행사를 강행할 경우 단전.단수 등의 조치를 취한다는 방침이다.

그러나 지난해 외부 단체의 8.15 행사를 반대했던 연세대 총학생회는 올해 한총련 계열 후보가 당선되면서 이번 행사 지지 입장으로 돌아섰다. 총학생회 관계자는 "학교 측이 대중가수 콘서트 등 오히려 면학 분위기를 방해하는 외부 행사에는 학교 시설을 잘 내주면서 이번 행사는 왜 반대하는지 알 수 없다"고 말했다.

◆ 미지근한 사후 처리가 화 불러=최근 몇 년간 대학가에선 외부 단체의 학내 집회가 '퇴짜'를 맞는 경우가 늘고 있다. 2004년 11월 전국공무원노조는 서울대에서 파업 전야제를 벌이려다 대학 측의 비협조로 연세대.한양대.건국대로 잇따라 장소를 옮기기도 했다. 하지만 여전히 외부 단체의 대학 집회는 끊이지 않고 있다. 최근에만 ▶3월 화물연대의 부산대 문화제 ▶4월 한총련 등의 서울산업대 전국대학생대회 전야제 ▶5월 전농.한총련 등의 홍익대 무단 점거 등이 이어졌다. 최근 서울대에선 보건의료노조원들이 심야집회를 벌이다가 소음에 항의하던 비운동권 총학생회 간부를 폭행해 물의를 빚기도 했다.

이를 놓고 대학 측의 미지근한 사후 처리에도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외부 단체가 교내에 들어올 때마다 학교 측은 강력 대응 방침을 밝히지만 실제로는 유야무야 끝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경찰 관계자는 "대학 측이 무단 교내 집회 때문에 발생한 피해를 집계해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한다면 외부 단체가 함부로 대학에 들어가 집회를 여는 행태는 크게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정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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